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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를 만드는 건 집착일까 실력일까

[영화] 더 페이버릿

by 랩기표 labkypy

1702년 영국에 앤 여왕이 즉위한다. 입헌군주제가 도입된 명예혁명(1688년) 이후 시끌벅적한 정세 속에서 그녀는 스페인 왕위 계승 문제로 국제 전쟁에 참여하게 된다. 그 책임자로 말버러 공작을 임명하고, 그의 부인인 사라 처칠은 궁정 내 여성 최고 계급을 획득하고 앤 여왕 곁에서 보위하게 된다.


여왕 앤과 그의 친구 사라는 한 몸이었다. 비만과 통풍으로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했던 여왕을 대신해 사라는 국정을 도맡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비게일이 나타난다. 가난했지만 친절했던 아비게일은 누구보다 권력과 명예에 대한 욕구가 강했다. 추락한 계급과 위상을 되찾고 그것을 넘어 최상의 자리에 올라가기 위해서 아비게일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심성이 착한 여왕 앤은 아비게일의 행동에 감격한다. 위장된 친절과 정성은 상대방의 호감을 극한으로 끌어올린다. 가까웠기에 더욱 부담스럽기도 했던 사라는 결국 여왕으로부터 버림받는다. 그녀가 추구했던 정치적 목표는 남편이 총사령관으로 있던 프랑스와의 전쟁이 적과의 동침으로 마무리되면서 거품이 된다. 그 자리에 아비게일의 야욕이 자리 잡는다. 성공은 능력보다 집착에 더 가까웠다.


사라는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는다. 이후 그녀는 깨닫는다. 확고한 믿음과 명료한 자의식이 때때로 자만으로 표출되어 타인의 감정을 깨뜨릴 수 있다고. 만약 그 상대방이 여왕처럼 자신의 삶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사람일 때, 이토록 큰 위기를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기분 나쁜 진실보다 중요한 것은 따뜻한 공감이었다.


사라는 쫓겨나고 아비게일은 여왕의 발 밑에 붙어 권력의 달콤함을 맛본다. 하지만 결국 아비게일의 거짓된 진심이 드러나게 되지만 주변에 아무도 없게 된 여왕은 그녀와 불편한 동거를 할 수밖에 없게 된다.


영화 내내 여왕의 환심을 사기 위한 두 여자의 욕망이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는 것을 보며 맘을 졸였다. 아비게일의 도를 넘은 행동에 욕이 나오거나 사라가 상대를 얕잡아 보는 거만함에 쓴웃음이 났다. 귀족정치의 추태는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그에 반해 계급사회의 불평등은 여전히 현실 속 문제를 가져다 온 것 같아 씁쓸했다.


영화는 아이러니하게 이 모든 것을 너무나 아름답게 그려내기에 동화처럼 보였다. 또한 중간중간 광각렌즈에 잡히는 화면들은 보이지 않는 제3자에 의해서 관찰되는 듯한 느낌이 들어 신선했다.


이 영화는 역사라는 기둥에 픽션을 덧씌워 만들어진 집과 같다. 그 안에서 무엇을 놓고 꾸밀지는 관객의 몫이다.


기록된 바에 따르면, 사라 처칠은 왕궁에서 쫓겨난 뒤 뉴턴에게 ‘주식으로 망한 위대한 과학자’란 칭호를 달게 해 준 남해회사 주식과 부동산으로 큰돈을 벌어 더 잘 살게 된다. 앤 여왕이 죽고 조지 1세가 즉위하자 남편 말버러와 함께 다시 궁에 들어간다. 그의 후세가 바로 윈스턴 처칠이니, 이것이야 말로 전화위복이라는 말이 어울린다. 반면, 아비게일은 시골로 쫓겨나 늙어 죽는다.


사라가 쫓겨나기 전 아비게일에게 했던 대사가 떠오른다.


“난 게임의 목적이 너와 달라”


집착은 작은 성공을 달성하게 할 수 있겠지만, 실력을 키우는 것은 위기를 새로운 기회로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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