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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만 했다.

[영화] 노매드랜드

by 랩기표 labkypy

어떠한 희망도 찾을 수 없는 상황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앉아서 눈물을 훔치는 것밖에 없었다. 정상적인 생활이라고 부를 만한 것들은 내게 사치였다. 한동안 당연시 여겼던 것들로부터 멀어지는 일은 분명 슬픔과 아픔을 동반했지만 그 고통을 감내하고 이겨내야만 나는 완전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견뎠다.


불을 집어삼킨 몸은 타올랐고, 뜨거움을 견디지 못해 커억커억 헛구역질을 했다. 메타인지라는 그럴싸한 단어를 써 내려가며 나를 보듬고 다듬어 보려 했지만, 감히 손댈 수 없는 비극은 더욱 나를 구석으로 몰아넣고 주먹을 들어 올려 위협을 가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 경제사정은 더욱 각박해졌고 나는 집을 처분하고 벤을 샀다. 중고로 산 벤은 여기저기 녹이 슬었지만, 나는 괜찮다고 자위했다. 먹고 잘 수 있도록 개조를 했다. 갑작스럽게 두 세계를 잃은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두려웠다. 두려웠지만, 나는 길을 나섰다.


어차피 인생은 노매드 아닌가. 나는 여행을 좋아했던 어릴 적 기억을 상기하며 운명처럼 여행자로서의 삶을 받아들였다. 머물 곳이 없는 것이 아니라 집이 없을 뿐이었다. 내가 가는 곳이 곧 길이자 목적지였고 안식처였다.


나와 같은 사람들을 하나둘 만나며 일종의 위로를 얻었다. 우리는 삶에 있어 목적보다는 위로와 확신이 필요했다. 깨지기 쉬운 세상을 봉합해줄 수 있는 본드 같은 인연이 필요했다.


파트타임직을 전전하며 돈을 벌었고 덕분에 생활은 안정적이었다. 필요한 만큼 벌 수 있었다. 나이 50이 넘은 여자에게 허락된 일과 보상에 감사했다. 아이들을 가르쳤던 교사 커리어가 유리하게 작용했다.


시간이 갈수록 새로운 일상에 얇은 보호막이 생겼고, 나름의 가치관과 철학이 들어섰다. 그로부터 나는 스스로를 보호했다. 또 다른 이들도 각자 벤, 트럭, 캠핑카에 깃발을 내걸고 작은 세계를 구축했다.


노매드랜드.


우린 그렇게 언제 어디서라도 스스로 삶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나약한 개인으로 살며 자유를 만끽하는 삶. 누구라도 마찬가지였다. 그대들은 안정된 직장과 주거지를 확보했다며 안도하겠지만, 과연 그것이 영원불멸한 것인가. 삶은 언제나 뒤죽박죽이었다. 나는 불만을 가지 않았다. 타인이 절대 이해할 수 없을 행복에 대한 자부심은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다시 벤은 끄르륵 움직인다.


클로이 자오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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