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쉘 위 댄스
나는 모범생이었다. 시키는 일을 잘했다. 공부도 잘했고, 청소도 잘했고, 운동도 잘했다. 일류 대학을 나와 대기업에 들어갔고, 핵심부서에서 빠르게 승진해 동기들보다 높은 자리에 올라갔다. 집도 장만했고, 이쁜 딸과 헌신적인 아내도 있다. 세상은 더할 나위 없이 잘 굴러가는 것 같았다.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누구도 정확하게 말해준 적은 없었지만, 나는 훌륭한 삶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뺄 것 없는 삶은 아무것도 채울 수가 없었다.
나는 공허했다. 배부른 생각이라고 생각했다. 복에 겨운 소리라며 뿌리치려 노력했다. 하지만, 나는 이 허기를 피할 수 없었다. 아내는 ‘지나치게 성실하다’고 반농담을 하며 웃었지만, 나는 그런 내가 무서웠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 무기력함은 더해져만 갔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지하철이 잠시 멈춘 사이 창 밖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여인을 보았다. 커튼을 열고 밖을 바라보는 그녀에게서 흐르지 않는 눈물을 보았다. 하늘에 덩그러니 던져진 시선을 통해 답답한 그녀의 마음을 얼핏 알 것만 같았다. 어두컴컴한 하늘에 그녀는 별처럼 빛났지만, 그 빛은 곧 떨어져 사라질 것만 같았다.
며칠 후. 나는 끝내 참지 못하고 지하철에서 내려 그녀를 향해 다가가갔다. ‘견학은 무료’라고 적혀 있던 댄스교습소 앞에서 나는 머뭇거리다가 교습생으로 보이는 여성에게 떠밀려 안으로 들어섰다. 가까운 거리에서 본 그녀는 눈부셨다.
이것을 시작으로 나는 본격적으로 댄스를 배웠다. 어지러운 스텝은 마치 내 마음을 보는 것 같았다. 꼬이고, 넘어지고, 발을 밟고. 모든 것이 서툴렀고, 이리저리 헤맸다. 익숙했던 나의 일상은 어색하게 변했고, 그 어색함에 점점 익숙해질수록 나는 살아서 꿈틀거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모범생답게 댄스를 모범적으로 배웠다. 땀 흘려 배우는 것이 얼마만이었던가. 흠뻑 젖은 와이셔츠가 나는 자랑스러웠다. 하루 이틀 무심하게 흘러가던 시간은 내 세포 곳곳에 한 알 한 알 맺혀 나를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게 했다.
어쩌면 삶은 평생 자신의 맘을 엿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몰랐다. 춤에 대한 열정이 어떻게 나왔는지도 알 수 없다. 나는 그녀를 몰래 엿보다가 나의 마음까지 엿보게 된 것 같았다. 그녀를 따르듯 내 마음을 따랐고, 나는 비로소 내 마음을 뛰게 할 무언가를 찾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춤을 위해 태어났지만, 나는 춤을 통해 다시 태어났다. 댄스 파트너를 잃고, 대회에서 실격하면서 절망 속에서 헤매던 그녀는 나의 춤에 대한 열정과 정성을 쏟는 모습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나를 춤으로 이끈 것이 무엇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나는 내가 하고자 하는 것에 최선을 다했고 후회가 없었다. 나는 이제 춤을 추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내 마음을 엿보는 것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 안에 무엇이 보이든지 나는 모범생답게 최선을 다하리라 다짐하면서.
Shall we dance?
with own your rhyth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