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
희도는 펜싱을 좋아했다. 그녀가 펜싱을 처음 접한 것은 아버지를 따라 프랑스에 머물게 되었을 때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딸이 머나먼 타국에서 외로울 것 같아서 펜싱이라도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그녀를 펜싱장에 데리고 갔다. 희도는 펜싱이 즐거웠다. 크고 작은 대회에서 상을 탔다. 주변 사람들의 칭찬은 이어졌다. 그녀는 칭찬에 익숙해질수록 더욱 칭찬을 갈구했다. 그것이 원동력이 되어 그녀는 고된 훈련을 잘 소화했다.
어느 날 희도는 아빠에게 물었다. “아빠, 사람들이 나보고 신동이래. 신동은 칭찬이지?”
아빠는 웃으며 답했다. “그래 희도야, 좋은 말이야. 근데 칭찬에 너무 익숙해지면 안 돼. 펜싱이 지금은 즐겁다고 해도 나중에 하기 싫어질 때가 있을 거야. 그때 펜싱이 좋은지 칭찬이 좋은지 잘 생각해.”
희도는 그때 아버지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수가 없었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알아들었다는 표현을 하는 것이 아버지를 기분 좋게 하는 행동인 동시에 다시 칭찬받을 일이라는 것은 알았다.
시간이 흐르고 희도는 국가대표가 되어 금메달을 땄다. 국가대표가 되는 길은 험난했다. 수많은 실패와 멸시를 이겨내며 꿋꿋하게 웃음을 잃지 않아야 했다. 어느 날 희도는 펜싱을 그만두어야 하는 건지, 나에게 재능이 없는 것인지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그때 희도는 아버지 말을 떠올렸고, 칭찬보다 펜싱 그 자체가 좋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하나 더. “실력은 계단처럼 느는 것이다”는 말이 움츠린 어깨를 펼 수 있도록 해주었다.
펜싱을 왜 좋아하는지 누군가에게 설명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이미 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엄마와의 관계는 냉랭했기 때문에 속마음을 터놓을 데가 없었다.
어두운 밤, 달빛이 조용히 땅으로 흘러내리고, 공기는 한 여름 낮의 온기를 여전히 품고 있었다. 희도는 텅 빈 운동장을 가로질러 홀로 펜싱 연습장에 들어섰다. 그녀는 칼을 들어 앞으로 내질렀다. 그리고 기합을 넣었다. 기합을 넣으며 그녀는 펜싱이 무엇인지 왜 그토록 내게 소중한지 스스로 물었다.
하지만 알 수가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왜 펜싱이 좋은지 자세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도저히 불가했다. 머리 위에서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와 관중들의 함성. 칼을 든 상대와 나 사이에 흐르는 긴장감. 그리고 승리의 쾌감. 투구를 벗으면 목을 타고 등 뒤로 흘러 들어가는 땀방울. 이 모든 것이 그녀는 좋을 뿐, 펜싱이라는 실체, 펜싱이라는 현상, 펜싱이라는 단어에 구체적인 의미를 부여하기란 불가능했다. 왜 하필 펜싱일까라는 운명에 대한 의심이 들뿐이었다.
그래서 희도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잘하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곁에서 자신을 지켜주는 백이진을 사랑하기로 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잘하는 것은 사랑하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