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침묵 뒤에 숨어 웅크리다

[영화] 화양연화

by 랩기표 labkypy

1962년 홍콩.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탄생하고 수많은 자본가, 사업자 그리고 언론인 등 소위 인민의 적으로 불리던 자들은 홍콩으로 이주한다. 영화는 홍콩으로 막 이주해 같은 날 옆집으로 이사 온 언론인의 남자와 사업가의 아내를 주인공으로 한다. 그와 같은 이들을 지옥으로 떨어뜨린 문화대혁명이 시작된 1966년까지 이야기는 4년을 거쳐 이어진다.


침묵


아내와 남편이 서로의 남편과 아내의 사랑이 되어 버린 그들은 침묵한다. 침묵은 삶을 의혹과 의문으로 가득 찬 혼돈 속으로 빠뜨린다. 그들은 침묵하는 동시에 누군가의 남편과 아내로서 설명하기 힘든 묘한 감정을 상대방을 향해 키운다. 서로는 침묵하는 상대방으로부터 그 감정이 정확히 무엇인지, 나와 같은지 알 수 없다. 그들은 또다시 침묵 뒤에 숨어 웅크리며 떨리는 감정이 두려움인지 설렘인지 알 수 없어 자꾸만 고개를 숙인다.


텅 빈 배우자의 자리를 외도 대상자의 배우자로 채우는 아슬아슬함. ”우리는 그들과는 다르다”는 어색한 정의감. 시간이 지날수록 동병상련의 감정이 순애로 번지는 당혹감.


남자는 아내를 포기하고 새로운 관계를 이어나가고자 한다. 오히려 아내를 보냄으로써 새로운 여인이 찾아와 그의 뮤즈가 되어 글을 쓸 수 있게 해 주었다. 잊고 지냈던 꿈이었다. 신기하게도 그 꿈이 침묵 속에서 요란하게 밀려왔다. 하지만, 남자가 다가가려 할수록 여자는 더욱 멀어지려 한다. 여자는 낭만이 사라진 사랑에 습관적으로 머물고자 한다. 결국 돌아온 남편과 그곳을 떠나며 그녀가 선택한 것은 아이를 갖는 것이었다.


남자는 아내와 여자를 모두 잃고 절망하지만 이 또한 침묵한다. 어떠한 소리도 내지 않고 마음속 깊은 곳에 꽁꽁 매단다. 그러다 겨우 캄보디아 유적지 어느 구석에 몰래 그 침묵의 소리를 밀어 넣고 흙으로 막아내는 데 성공할 뿐이다. 그의 소리는 영원히 고도의 벽 안에서 머물며 계속 침묵할 것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상실을 채우기 위한 성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