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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미처 몰랐던 속박으로부터의 해방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by 랩기표 labkypy

나는 해방되고 싶은 것이 있을까.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그만큼 나를 얽매고 있는 것들에 익숙해져 있어 ‘해방’이라는 단어로 그것들과 대치하는 것이 불필요했을지도 모른다. “화는 나지 않지만” 불만으로 가득 찬 삶은 터져버린 김밥 옆구리처럼 어중간해졌다. 맛은 그대로지만 보기에 좋지 않은 것. 살고는 있지만 죽은 것처럼 보이는 것. 그럴싸하게 보이는 것들에 지쳐가다가 ‘나라고 별 수 있겠어, 다들 이렇게 사는 거지’라는 이불을 돌돌 말고 잠이 드는 일상.



창희는 어쩌다 장의사가 되었다. 나는 그 장면이 구 씨가 돈가방을 들고 미정이를 찾아가는 장면보다 더 좋았다. 창희는 언제나 불만이 많았다. 화도 많았다. 그가 보는 세상은 항상 뒤틀려 있었다. 옆에서 쓸데없는 말을 조잘대는 직장 상사는 세상 모든 불만 중 가장 만만하게 씹을 거리였다. 곧 편의점 회사를 그만둔다. 어차피 하고 싶던 일도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창희 스스로 원해서 한 일은 하나도 없었다. 원해서 태어나지도 않았고, 원해서 경기도에서 한 시간 반 동안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면서 출퇴근을 한 것도 아니었다. 편의점주의 고민상담을 한 시간 넘게 듣고 싶지도 않았고 황금 같은 주말을 땡볕에서 밭일을 하며 보내고 싶지도 않았다. 서울 사는 애인 앞에서 움츠러들어 괜히 화를 내며 헤어지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게 온통 하고 싶지 않은 일들에 둘러싸여 있던 그는 결국 장례지도사가 된다.



유일하게 좋아서 하던 것이 서울을 그린 산수화를 보는 것이었는데, 그것을 제대로 배워보고 싶어 평생교육원에 갔다. 그런데, 교실을 잘못 들어간 것이었다. 이걸 어쩌나. 나가야겠다고 생각하던 그는 갑자기 자신이 한 말이 떠오른다.



“형, 나랑 둘이 있자. 나 이거 팔자 같다.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어머니 전부 내가 다 보내드렸잖아… 근데 여기 내가 있어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었거든… 내가 세명 보내봐서 아는데, 갈 때 엄청 편해진다. 얼굴이 그래. 그러니깐 형도 겁먹지 말고 편하게 가. 가볍게.”



창희는 좋아하던 여인의 옛 남자 친구의 마지막을 지켰던 순간을 기억하며, 자리를 고쳐 앉는다.



그리고 진심으로 웃는다.



우리가 좋아하는 것에 진심을 다할 때, 그것이 어떤 식으로든 내가 있어야 할 곳으로 데려다 줄지도 모른다.



내가 미처 몰랐던 속박으로부터 해방이 될지도 모른다.



만세.



염창희 파이팅.




작가 이야기 | 박해영 작가의 ‘나의 아저씨’ 후속작. 인터뷰​ 보기가 싶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놀라운 분인 듯. 놀랍다는 표현은 다의적임. “우린 같이 뭔가 해소를 해야한다. 그래서 글을 쓴다.” “제가 논리와 의도를 가지고 글을 쓰지 않는다. 직관으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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