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얼굴을 하고 술을 마시며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가 찻길을 건너 반대편 횡단보도 앞까지 넘어왔다. 그 소리에 나의 고개는 돌아갔고 익숙한 누군가가 그 무리에 함께 있는 것을 보았다.
야 그게 뭐 대단한 거라고.
어쨌든 좋은 일이잖아.
하며 주고받는 소리들이 정겹다. 내가 그곳에 앉게 된 것은 아는 얼굴이 있어 억지로 끼어든 것은 아니었다. 그냥 그렇게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길을 건너려고 하고 있을 때 그 녀석이 술에 취한 큰 목소리로 나를 불러 세웠기 때문이다.
어디가노.로 시작되어 그냥 몇 마디 나누었다가 술이나 한 잔 하고 가라는 말에 끌려 어느새 몇 잔 꿀꺽 넘기게 된 것이었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천진난만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반면에 입구 유리창에 비친 나의 얼굴은 어둡게만 느껴졌고, 아무도 몰래 씨익 한 번 웃는 연습을 하는 도중에 날카롭게 질문이 들어왔다.
수근씨는 오늘 좋았어요?
네, 뭐 괜찮았던 것 같은데...뭐 잘 모르겠습니다.
화장실 변기 위에 붙어 있던 누군가 나에게 기분을 물어볼 때면 그냥 좋다고 말하면 좋은 하루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학습된 개처럼 문득 떠 올랐지만, 입에서는 다른 말이 나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어울리지 않는 이 술자리 불청객의 찌푸린 듯한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 모양이다. 괜히 머쓱해서 술을 얼른 넘기려고 했는데, 아 왜 또 혼자 마시려고 하세요. 저랑 같이 한 잔 해요라는 위로의 소리가 술잔 위에 얹혔다. 나는 황공하옵니다라는 제스처로 한 손을 더 포개서 술잔을 부딪혔고 나머지 사람들의 대화는 더욱 크게 귀에 타고 흘렀다.
야 그러니깐 누가 거기서 일등 할 줄 알았겠노. 진짜 대단하다. 이 새끼들이 뭐 한 건 할 줄 알았다니깐. 마 그냥 어디 가도 무(먹어) 줄 주 알았다. 마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업나. 원래 음악은 헝그리 정신 아니가. 헝그리. 씨바 뭐 그렇다고. 한 잔 더 하자.
여튼 쓰레기 같은 것들 이라니깐. 뭐 떼 물(먹을)게 없어서 씨바 가난한 뮤지션들의 돈을 떼묵노. 뭐 음원 정산하면 몇 십원 남네 뭐네 하는 것들 그 이유가 다 내 묵꼬 남은 찌끄래기나 챙기 무라. 뭐 이런 것 때문에 생긴 거 아니가.
어느 방송국에서 열렸던 인디 경연 프로그램에서 우승한 밴드의 축하자리였지만, 결국은 그들의 가난한 신세, 어쩌면 우리의 잘못이 아닌 그들의 잘못으로 엉망이 되어버린 20대 후반의 빛나는 청춘들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옆에서 웃는 조연 역할에 충실하기도 하고, 한 몫 거들어 같잖은 지식을 붙여 이건 몰랐지 하는 생각으로 떠들기도 했다. 우리 모두는 더 이상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거리에 망망대해 가운데 떠 있는 작은 고깃배처럼 불을 밝히며 밤의 끝을 잡고 있었다. 시간은 어느새 새벽 두 시가 넘었고, 나는 내일 출근이 걱정이 되어 자리를 뜰까 하고 고민을 하고 있는 그때,
우리 한 잔 더 할까요.
라고 그녀가 제안했다. 오늘은 기타를 두고 와서 노래하지 못해 아쉽다고 연신 되풀이하던 그녀는 비틀거리는 몸과 달리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자신이 잘 아는 곳으로 가자고 제안했다. 들은 채 만채 사람들은 계속 떠들기 시작했고, 나는 은근히 그 2차를 기다리며 흘러가는 시간을 안타깝게만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나의 지친 몸과 영혼은 더이상의 자유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녀는 엎드려 자는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슬쩍 일어나 그녀 곁으로 가 다음에 보자고 인사를 하려는 순간, 그녀가 울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순간 멍하니 서있다가 아무도 받아주지 않는 인사를 속으로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