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악연
응급실로 전신 화상을 입은 남자가 실려 왔다.
의사 주연은 주저 없이 응급 처치를 시작했다.
그녀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마침내, 그를 살려냈다.
환자의 이름을 확인한 순간,
주연은 얼어붙었다.
그 남자는 재영이었다.
어릴 적,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무너뜨린 가해자였다.
주연은 늘 재영을 떠올리며 악몽에 시달렸다.
어릴 적 상처는 사라지지 않았다.
눈앞에 전신화상을 입고 누은 그를 보며 그녀는 결심했다.
이 악연을 끊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고.
주연은 마음속으로 살의를 품었다.
의사로서의 삶을 포기하더라도,
그를 직접 제거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실행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그리고 기묘하게도,
재영은 다른 경로로 죽음을 맞이했다.
마치 운명처럼,
피할 수 없는 심판처럼...
재영은 패륜아였다.
욕망에 이끌려 아무렇게나 살아왔다.
사채에 쫓겨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 그는,
끝내 아버지의 사망보험금을 노렸다.
청부살인까지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악은 또 다른 악을 불렀다.
살인청부는 남을 속여 돈벌이를 했던 범준을 불러들였다.
그들의 살인계획은 완벽하지 않았다.
현장엔 목격자가 있었고,
죽음의 문턱에서 그의 아버지는 여전히 숨을 쉬고 있었다.
그 실패는 거대한 균열이 되어,
결국 재영을 비롯한 악연의 무리를 집어삼키는 구멍이 되었다.
인간은 누구나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그 관계는 삶의 모양을 바꾼다.
대표적으로 필요 이상의 관계는 피로를 부르고,
작은 인연도 성심을 다하면 기쁨을 만든다.
우리는 관계 속에서 자신을 비춘다.
남을 대하는 태도는 곧 내 정체성이다.
"내가 하지 싫은 일은 남에게도 하지 말라"거나
"대접 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하라"는 말은,
우리가 누군가를 대하는 방식은 결국,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거울인 동시에
운명을 결정하는 나침반이기 때문이다.
넷플릭스 시리즈 <악연>은 그 질문을 던진다.
재영이라는 한 사람의 악행이,
어떻게 관계를 망가뜨리고,
결국 자신을 무너뜨리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주연을 통해 또 하나의 질문을 남긴다.
악연은 스스로 끊어낼 수 있는가.
그 끈을 끊는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가.
용서인가, 복수인가. 아니라면 과연 그 방법은 무엇인가.
<악연>은 이 질문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답하지 않는다.
다만, 마지막에 이렇게 말한다.
선행은 주변을 살리고 결국 자신을 다시 일으킨다.
악행은 주변을 무너뜨리고 그 무너진 구멍 속으로
자기 자신을 밀어 넣는다.
모든 것은 관계에서 시작된다.
우리가 맺는 인연의 끝은,
결국 우리 자신을 향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