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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것

by 랩기표 labkypy

보이는 것은 일부일 뿐이다. 어쩌면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은 보이지 않는 것들이 만들어낸 환상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들이야말로 실제로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것일 수도 있다. 눈에 보이는 활동은 보이지 않는 근육의 움직임과 생리학적 화학작용의 결과다. 또한 우리는 빛이 전달한 시각 정보를 인지함으로써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할 뿐이다. 그리하여 선지자들은 이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궁금증을 품고 끊임없이 연구해왔다. 그들은 세상이 어떻게 움직이고,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를 설명하려 했고, 그 이론을 바탕으로 과학기술은 발전해왔다.


결국, 보이지 않는 원리를 이해할수록 우리는 보이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다. 올해의 노벨상 수상 분야가 이를 잘 보여준다. 하나는 양자역학, 또 하나는 면역세포의 자가면역(조절 T 세포) 연구였다. 즉, 인간은 보이지 않는 세계를 탐구함으로써 자신이 속한 현실을 재구성해온 것이다.


자본주의 시스템도 이와 다르지 않다. 자본주의란 자본이 이윤을 통해 스스로 증식하는 구조다.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힘은 부가가치이며, 돈이 되는 일에는 ‘의미’가 부여된다. 사람들은 그 의미를 좇아 행동하기 시작한다. 노동은 비교적 안정적이며 즉각적인 대가를 얻을 수 있는 안전한 자산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동에 투자한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노동의 안정 대신, 시간이 돈의 가치를 갉아먹는 세상에서 그 흐름을 역이용해 증식하는 자본에 주목한다. 또 어떤 이들은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기업에 투자한다. 그 출발점은 노동의 결실일 수도, 물려받은 자산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보이지 않게 증식된 자본은 실제 생활에 깊숙히 파고들어 대출, 지분 등의 명목으로 삶을 지배한다.


자본의 본질은 형체보다 신뢰에 있다. 형체가 없기에 사람들의 관심, 인정, 신뢰가 곧 생명이다. 사람들이 사회 불안과 인플레이션을 느끼면 돈보다 실물 자산을 선호하게 된다. 반대로 사회가 안정되고 미래에 대한 신뢰가 높아지면 자본은 폭발적으로 성장한다. 여유가 있는 사람들, 혹은 이에 대한 통찰이 깊은 사람들은 이런 변동성에 흔들리지 않는다. 그들은 서퍼처럼 물때를 기다리고, 파도가 오면 오히려 즐긴다. 세상은 망하지 않을테니.


결국 세상은 보이지 않는 것에 의해 움직인다. 형체 없는 자본의 특성이 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우리는 그것을 실체가 있는 것으로 착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환상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 판 안에서, 노동과 자본의 개념에 스스로를 맞추며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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