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을 찾아라(1/2)

픽션입니다

by 랩기표 labkypy


"여기 맞습니다."

"그래서 뭐 어떻게 하라고요. 내 혼자서는 결정을 못한다니깐요."

"아니, 급해서 그렇다니깐요. 사람 병신 되는 거 보고 싶어서 그래요?!"

"아, 이 답답한 사람아. 몇 번을 말을 해. 함부로 사람을 보내거나 방송을 할 수 없다니깐. 부녀회에서 난리가 나. 나도 을이야 을! 뭐 어떻게 하라고."


부녀회장이라는 사람에게 몇 번이나 연락을 했지만 통화가 되지 않았다. 나는 답답한 마음에 계속해서 닦달하며 제발 한번만 더 연락해보라고 사정을 하였으나 경비원은 바쁘신 용무에 귀찮게 해서는 안 된다는 말로써 책임을 다한 듯한 태도를 보였다. 몇 번을 전화했으니 연락이 올 것이다. 삼십 분이 지난 후 다시 한 번 해보면 충분하지 않냐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었다.


"연락처 좀 알려주세요!"

"개인정보라서 안 된다고요. 사정은 알겠는데, 그게 쉽지가 않습..."

경비원은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일어서더니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오는 차에 대고 경례를 붙이고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선생님. 진짜 급합니다. 동생이 손가락을 잃을 수도 있어요."

"아.. 이거 참... 난감하네... 그게... 우리 아파트 주민께서 구입을 하셨다는 것도 확실한 게 아니잖아요."

"아닙니다. 확실합니다. 오늘 저기 앞에서만 장사를 했어요. 아시잖아요. 매주 화요일마다 저기 앞에서 장사하잖아요. 그리고 이 주변에 아파트가 여기밖에 없잖아요."


황금 같은 1분 1초가 그에게는 하찮게 느껴지는 것 같아서 점점 화가 나기 시작했다. 시간은 점점 흘렀고, 의사가 말했던 6시간 중에 벌써 3시간이 지났다. 빌어도 보고 윽박도 지르며 다투고 있을 때, 갑자기 자주 우리 가게에 들리셨던 아주머니께서 무슨 일인가 하며 경비실 안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고기 장수 청년 아니세요? 무슨 일 있어요?"


+

동생과 내가 생선장사를 시작한 것은 1년 전이었다. 변변치 않은 형편에 어렵게 대학을 졸업을 했지만 취업하기는 더 어려웠다. 작은 회사에서 최종 합격 소식을 전해와 들어가 보려고도 했었지만, 첫 직장이 중요하다는 주변의 권유로 인해서 결국 취준생이 되었다. 이후 거시적 문제인 취업과 미시적 문제인 생활비를 함께 고민하게 되었다. 이상과 현실. 나의 삶은 이 두 굴레에서 빙글빙글 맴도는 기분이었다. 나를 일으켜 세운 ‘리얼리스트여 가슴 속에 불가능을 품어라’는 체 게바라의 격언은 점점 빛을 잃고 희미해져 갔다.


친구 중 하나가 어머니를 도와 수산시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취업을 하는 바람에 그만두게 되었다며 내게 진지하게 그 일을 제안을 했다. 시급이 높다는 소리보다는 상인들과 어울리면서 면접에도 크게 도움이 되었다는 소리에 적당한 명분을 찾은 것처럼 나는 다음 날부터 출근을 했다.


일은 금방 배워나갔다. 생선 대가리를 자르고, 비늘을 벗기고, 내장을 뺀 다음에 물에 씻어 소금에 절이고는 냉장고에 보관하기 좋게 포장하는 것이었다. 어느새 손이 무의식적으로 저절로 춤을 추기 시작했을 때, 사석에 만난 친구들은 비린내가 가시지 않는다고 농담 삼아 코를 잡았다. 그리고 여자 친구의 친구들과 함께하는 자리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의심의 눈초리와 마주쳤을 때, 그들이 나의 직업을 다르게 알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계산을 하면서도 왠지 여자 친구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났고 매일 새벽 우리 가게에서 생선을 사 가던 손님께서 갑자기 장사를 못하게 되었다며 나에게 자신의 포터를 인수해 일을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1년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생선가게 직원이 아니라 취준생이라는 사실이 묘하게 안정감을 주던 시기였다. 일종의 변태과정이었고 그 사실을 주기적으로 인지하는 것은 희망의 끈을 잡고 있는 것과 같았다. 아저씨께 이런 말씀을 드릴까 하는 차에


"요즘 청년 창업이 열풍이잖아. 제4차 혁명시대에 홍씨도 기존의 산업을 새롭게 한 번 재정의할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왜 생선가게가 시장 안에서만 있어야 하나."


이 업계에서 자기처럼 아파트 단지 등지에서 거래할 수 있는 튼튼한 네트워크를 갖추기가 쉽지 않다는 말은 매운탕 끓여 드시라며 줬던 생선 대가리 같은 덤으로 들렸다. 나는 같은 이유로 동생을 설득했고, 그동안 모았던 돈을 계약금으로 주고 잔금은 벌어서 갚는다는 조건으로 칼을 옆에 차고 포터를 운전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청년 둘이 열심히 일하는 모습에 다들 반가워하는 분위기였다. 매출은 점점 오르고 포터 짐칸 옆면에 달린 생선가게 이름도 꽤 알려졌다. 월화수목금은 그렇게 아파트 단지를 돌면서 장사를 했고 주말이 되면 틈틈이 친구 어머니 가게에 손을 빌려주고 있었다.


(2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