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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자신감이다?

by 진하린

INTJ라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그냥 나라는 사람 자체가 그저 지독한 팩트충이라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가진 것 이상으로 허세를 부리지 못하는 편이다.

이말인 즉슨, 나라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자신감의 총량은 스스로가 갖고 있는 것(능력, 재산, 외모 등)을 넘어서지 못한 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10대 때부터 듣던 말 중 가장 어색한 말이 '남자는 자신감이다'였다. 나라는 사람에게 적용하기 가장 힘든 말 중 하나. 스스로를 세뇌시키고 개조하려고 수없이 노력해봤지만 결국 성공해본 적 없는 것. 그 말이 바로 저 말이었다.






만에 하나 어쩌면 나는 나를 과소평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자신감을 충분히 가져도 되는 사람임에도 내가 평가하는 나 자신이 너무 못나 보이기 때문에 용기를 내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살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그런 얘기도 꽤 들어봤고 말이다.

그러나 내가 정말 두려 워하는 것은, 내가 평가한 것보다 내 능력이 부족한 나머지 결국 허세뿐인 멍청이가 되는 일이다. 바닥을 드러내보이는 것이 정말 두렵다. 그래서 허세를 부릴 바에는 그저 조용히 내 할일을 하는 것이 더 마음 편하다.


그리고, 사람들이 왜 굳이 '남자'는 자신감이라고 표현하는 것인지도 이해하기 힘들다.

사람들은 항상 평등함을 부르짖지만, 모순적이게도 성 역할에 매몰되어있다. 나는 게임 캐릭터를 만들 때처럼 태어나기 전에 성별을 선택할 권한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굳이 사회가 정해놓은 성 역할을 존중하고 싶은 마음이 딱히 없다. 그저 사회가 원하기에 '남성성'을 연기하려 노력하지만, 내가 남에게 성역할을 강요하지 않는 만큼이나, 남들도 내게 그 역할을 강요하지 않기를 바라는 편이다.


나이가 들면서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에 순응하여 행동하는 것이 내 에너지를 아낄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수염도 길러보고, 터프한 스포츠도 시도했다. 그 중 몇 개는 지금도 즐기면서 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남성이라는 성별이 '응당' 그렇게 행동해야만 한다는 것에는 딱히 납득하고 사는건 아니다.


솔직히 나는 어릴 때부터 섬세한 성격이었고, 친구들 축구하러 나갈 때 공기놀이를 즐기던지, 그림을 그리던지 하는 게 더 마음이 편했다. 지금도 컴퓨터 앞에 앉아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게 편하다. 물론 지금은 스포츠도 꽤 즐기지만, 빵을 구울 때나, 뜨개질을 할 때, 고양이를 쓰다듬을 때 마음이 편해지는 사람이기도 하다.

아무튼 나는 성역할이 정해놓은 범주를 적당히 벗어나서 사는 자유분방한 인간이고, 단지 내가 남자라는 이유로 '자신감'을 충만하게 가져야된다고 강요당하는 것 또한 싫다.






아무튼 내가 자신감이 없고 의기소침해있을 때마다, 사람들은 '남자가 왜 그러냐', '네가 가진게 별로 없어도 일단 자신감을 내비쳐야 사람들이 본다'라고 말할 때마다, 사람의 본성이 허세에 속아넘어갈만큼 단순하다는 것을 이제 알만큼 아는 나이임에도 반감이 드는 게 사실이다.

내가 정말로 그 허세를 연기할 수 있다면, 어쩌면 지금 갖고있는 능력 이상의 것을 누렸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정말이지 내 연기력은 형편없고, 내 '남자로서의 자신감'을 드러낼 일은 딱히 앞으로도 있을지 모르겠다.


뭐, 그러니까 이 나이 먹도록 연애도 못하고 있겠지만서도...



아무튼 자신감이 내가 원하는 만큼 뿜뿜했으면 좋겠지만, 도저히 내가 납득하는 이상의 근자감을 끌어낼 수 없는 너드 태생의 푸념이라 생각해 주시라.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감이 안 생기는데 뭐 어쩌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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