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소설
‘혼자 보내는 크리스마스라는 건 이런 기분이었구나…. 외롭네, 젠장'
동네에 깔린 하얀 눈이 가로등 불빛 때문에 주황색으로 물든 밤 11시. 크리스마스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디저트를 먹으며 J는 생각했다.
몇 년 째일까? 크리스마스라는 날을 혼자 보내게 된 지가. 솔직히 이제는 구글 포토를 뒤져보거나 하지 않는 이상 기억이 나질 않는다. 매 년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던 이가 있었다. 연인이 아니라면 친구라도. 연말의 큰 이벤트를 따사롭게 보내기 위해 모여들었던 순간들은 지금 떠올려도 좋은 추억들이다.
하지만 이제 J는 그 누구와도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지 않는다. J가 마지막 연애를 마치고, 고등학교 동창 무리와 거리를 두면서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무엇으로 인해 이런 사태가 벌어졌을까? 탓을 할 거리들은 많지만 사실 어느 것 하나 딱 집어 ‘이 녀석이 범인이다!’하고 외칠만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 마치 고장 난 컴퓨터를 두고, 이 고장의 원인이 냉각팬에 쌓인 먼지 때문인지, 습기 때문에 쇼트가 난 전자 부품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바이러스, 혹은 써멀구리스(컴퓨터 CPU의 냉각을 돕는 열 전도제)가 말라붙어 과열이 났기 때문인지를 한 번에 판별할 수 없듯이 말이다.
J에게 있어 사람 관계라는 것은 항상 어려운 문제였다. 2년 전 MBTI라는 것이 유행할 때, 한 번 테스트를 해봤더니 INTJ가 나왔다. 그 당시에는 MBTI라는 것에 큰 관심은 없었기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었다. 도리어 프로그래머인 본인의 직업과 어울리는 면이 있다고 생각하며 만족하기도 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그를 떠난 이 시점에서 다시 생각해 보니 무언가 의미부여가 되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마치 그놈의 4글자가 본인의 인간관계가 망한 원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수많은 MBTI 관련 컨텐츠들에서 INTJ라는 성향은 솔직히 좋은 취급을 못 받는다. 거의 사람이 아니라 인조인간, 컴퓨터, 혹은 사람으로 쳐줘도 감정이 마비된 소시오패스 같은 느낌으로 묘사되곤 한다. 공감 능력이 떨어지고,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뭐시기 저시기 구시렁 구시렁…. J는 솔직히 이런 평가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타고난 자기 성향인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바꿀 수 있는 것이겠냐만은, 본인도 도매급으로 묶여 이상한 취급받는 느낌이라 불쾌하다. 마치 예전 혈액형별 성격론이 유행할 때 유독 B형만 악명 높았던 것처럼 말이다(그때도 J는 B형이라 불필요하게 경계받았다).
그런 영상들을 볼 때마다, J는 속으로 억울함을 외친다. ‘나 이래 봬도 영화 코코 마지막 장면 보고 수십 분 동안 눈물이 멈추지 않던 사람인데, 고양이나 강아지, 아기 등 귀여운 것을 보면 절로 미소가 띄워지는 사람인데, 희로애락을 다 갖춘 평범한 사람일 뿐인데 왜 그렇게들 차갑게 보는 거냐고!’
많은 인간관계들을 스스로 잘라낼 때, J는 본인이 그래도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을 본인 취향에 맞추려고 가스라이팅 하는 여자친구도 싫었고, 항상 자신을 을처럼 취급하는듯한 고등학교 동창 무리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가까운 이들과 거리를 두게 되면 심심하고 허전해지겠지만, 그렇다고 계속 업신여김을 당할 생각 또한 없었다. 가깝다는 이유로 선을 넘고 영역을 침범해 오는 느낌은 불쾌했고, J는 결국 외로움을 선택했다.
단절된 관계에 대한 후폭풍은 생각보다 빠르게 찾아왔다. 놀이공원을 가려고 했더니 여자친구가 없었고, 스키장을 가려했더니 친구들이 없었다. 물론 친하게 지내는 친구 무리가 고등학교 동창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뭐랄까. 사람들마다 취향은 다르고 특정 취미생활을 할 때 그걸 같이 즐기는 그룹은 매번 다르기 마련이니까.
‘아, 혹시 사람을 이런 기준으로 분류 짓는 것 자체가 INTJ 스러운 걸까? 아니, 또 MBTI랑 연결 짓고 있잖아, 젠장 유튜브 영상이 내 머릿속을 버려놨어’
그렇게 J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하면서 고민해 보지만, 명쾌한 답변 따윈 나오지 않는다.
‘솔직히, 내 잘못은 아니잖아. K는 나보고 몽상가라고 욕했다고! 내가 하는 일은 마치 소꿉놀이라도 되는 것처럼 취급하면서, 인디게임 따위 만든다고 고생하는 너 뒷바라지하는 부모님께 죄송스럽지 않냐는 모욕적인 말까지 했어. 그 단계에서 내가 끊고 나오지 못했으면 더러운 꼴만 더 봤을 거야’
합리화. J는 본인의 선택에 대한 합리화가 필요했다. 그렇지 않다면, 외로움에 시달린 끝에 단절을 선택한 자기 자신을 후회하며 결정을 번복하려 들겠지. ‘ 내가 잘못한 건 없다. 그저 거머리 같이 자존감을 빨아먹는 인간들을 지워버렸을 뿐이야. 스스로를 너무 괴롭히지 말자’라며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찌꺼기처럼 남아있는 의문점들은 늘 J를 괴롭혔다. ‘설마 내가 이상한 건가?’라는 의문점 말이다.
여자친구와 헤어질 때, 또 고등학교 동창 무리에서 떠날 때, 그들이 자신을 비난하는 소리들을 떠올렸다. 인간관계에서 절대로 선을 넘지 않으려는 모습이 마음에 장벽을 세운 것 같아서 가까이하기 어렵다고, 모두에게 친절하지만 누구에게도 살갑지 않다고, 대놓고 계산적으로 굴지는 않지만 손해 보려 하지 않는 것 같다고, 그래서 마치 기계가 인간을 흉내 내는 불쾌한 골짜기 같은 것이 느껴진다고 했다.
그들의 비난을 하나하나 따져보면, 사람은 착한데 매력이 없다든지, 싸우는데 화도 내지 않는 게 자기 혼자만 진심인 것처럼 느껴지게 해서 소름 끼친다든지. 분명 J가 도덕적으로 잘못된 행동을 했다거나, 선을 넘는 과격한 언사를 했다거나 하는 것에 대한 불만들이 아니었다. 폐를 끼친 것도 아닌데, 무엇이 그리 싫었을까?
그러나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J 스스로 결론지을 방법은 없다. 결국 J는 INTJ인간이고, 로봇 같은 사람이니까. 다른 이들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다만, 결론을 낼 수 없는 지금 상황에서는 내가 옳고 그들이 틀렸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래야 괴로움이 덜할 테니까.
J는 관계가 단절된 그들과의 연락을 모조리 차단했다. 그가 매정하고 매몰찬 사람이라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미련이 남은 자신이 연락을 먼저 할 까봐, 마음을 굳게 먹지 못하여 취한 행동이었다. ‘솔직히 이건 대학생 때나 하던 건데’ 그는 본인이 하는 짓이 유치한 짓임을 자각하고는 실소를 터뜨렸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버티기가 힘들다.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던 그들이 생각나는걸.
J는 크리스마스를 맞이할 때마다, 집에 돌아가면서 케잌을 산다. 조각케잌 따위가 아닌 홀케잌을 하나 통째로 산다. 마치 매번 크리스마스마다 파티를 열던 그날로 돌아가려는 것처럼. 그리고는 영화를 보면서 야금야금 퍼먹는다. 이번에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A.i를 본다.
20년이 지났어도 명작은 명작이다. 그때는 그저 인간이 되고 싶은 어린이 모습의 로봇 데이비드가 사랑을 갈구하는 모습 그 자체에만 집중했지만, 지금은 본인을 데이비드에게 투영한다. ‘나는 분명 사람으로 태어났는데, 마치 로봇처럼 겉돌고 있구나’, ‘피노키오에서처럼 인간이 되고 싶은 소망을 이뤄줄 푸른 요정이 진짜 있긴 하나?’, ‘나를 나 자체로 사랑해 줄 인간이 있기는 한 걸까?’ 이런저런 생각이 J의 머릿속에 눈처럼 소복이 쌓여간다.
달달한 케잌을 먹으며 입을 적시면, 쓸쓸함의 쓴맛은 잠시동안 자취를 감춘다. 따듯한 방, 주황빛으로 물든 창 밖 풍경, 스필버그의 가족 영화, 따뜻한 코코아, 그리고 까슬거리는 니트. 비록 J는 홀로 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크리스마스의 질감을 선명하게 느낀다. 함께하지 못하기에 외롭고 시리지만, 혼자이기에 느낄 수 있는 감각이 또 있기 마련인 것이다.
그리고, 덕분에 친구가 보낸 카톡 음성도 더욱 선명하게 들렸다.
J는 이 고요한 분위기를 깨는 무례한 소리에 살짝 짜증을 낸 뒤, 핸드폰을 찾아 H가 보낸 메시지를 확인한다.
‘내년에 내 여친 친구랑 자리 한 번 잡아볼 테니까, 살 좀 빼놔’
J는 카톡의 내용을 보면서 피식 웃는다. 내일부터는 한 동안 단 걸 끊고, 푸른 요정을 만날 준비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