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유난히 전광판에 표시된 버스가 오지 않았다.
언어 수업이 끝나면 인라인 스케이트 수업이 이어졌다. 내 어깨에는 인라인 가방 두 개와 책가방 한 개가 바위처럼 눌러앉아 있었다.
정류장 온열의자에서 첫째는 바나나를 먹었다. 손에 든 바나나에서 눅눅한 즙이 흘러 손바닥과 바지에 질게 묻었다. 물티슈도 없었고, 담아 둘 비닐도 없었다. 7022번 버스는 전광판에서 ‘2분’을 가리키다 이내 ‘도착 지연’으로 바뀌었다. 아이가 짓무른 바나나 껍질을 내 검은 패딩 위에 툭 올려놓았다. 과육이 눌리며 누런 자국이 번졌다. 검은색이라 얼룩이 더 도드라졌다. 짜증이 확 치밀었다. 나는 아이의 허벅지를 찰싹 때렸다.
“바나나 껍질을 엄마한테 주면 어떻게 해?”
아이는 화들짝 놀라더니, 반항하듯 바나나 껍질을 주워 바닥에 툭 던졌다. 나는 아이의 등을 한 번 더 찰싹 때렸다.
“아이를 때리면 안 돼요.”
온열의자에 나란히 앉은 노부부였다. 두 사람 모두 보풀이 일어난 회색 목도리를 둘렀다.
‘안 돼요’가 귓가를 얇게 베듯 스쳤다. 얼굴이 화끈해졌다. 나는 끝음을 조금 세워 말했다.
“제가 알아서 키워요.”
정류장 옆 노점에서는 기름 두른 판에서 지지는 호떡 냄새가 퍼졌다. 큰 마트 입구에서는 “배 두 개 오천, 당도 보장!” 하는 외침이 간헐적으로 터졌다. 바람이 불 때마다 가로수 밑 낙엽이 한 번 모였다가 금세 흩어졌다. 이 정겨운 풍경에 내 목소리는 어울리지 않았다.
어디선가 읽었다. 사람들을 두 무리로 나눠 한쪽에는 여유가 있다고 말하고, 다른 쪽에는 늦었다고 재촉했더니, 급한 쪽이 길가의 쓰러진 이를 보고도 지나쳤다는 이야기. 바쁠수록 우리는 선해지기 어렵고, 선함은 여유에서 나온다고 했다.
의자 밑에서 열이 오르는데도, 여유는 끝내 앉지 못했다. 언어 수업은 40분에 7만 원이었고, 지각을 해도 보충 수업은 없었다. 지각이 잦으면 겨우 자리 잡은 언어 선생님 수업에서 배제되기도 했다.
버스는 계속 지연됐다. 나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노부부가 일어섰다. 할아버지가 먼저 옆 사람의 팔을 살짝 받쳐 세웠다. 할머니는 목도리 끝을 한 번 쓸고 내 쪽을 잠깐 보았다. 두 사람은 손을 맞잡았다.
나는 그들을 향해 반쯤 몸을 일으켰다가 다시 앉았다. 입 안에서 ‘죄송합니다’가 몇 번 굴렀다가 멎었다.
그날 밤, 불을 끄고 누워도 쉽게 잠들지 못했다. 첫째 아이의 허벅지와 엉덩이에 조용히 손을 얹었다. 손바닥의 열만큼 엄마의 미안함이 닿았을까? 창밖에서는 겨울바람이 길게 불었다.
그 실험의 장면이 다시 떠올랐다. 어떤 학생은 가던 길을 멈춰 쓰러진 사람을 살폈고, 어떤 학생은 모른 척했다. 둘을 가른 건 선의나 악의가 아니라 ‘여유’였다.
다음 주, 가방에 작은 비닐과 물티슈를 넣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떡집에서 갓 찐 떡을 사서 반찬통에 담았다.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떡은 온열의자에 앉아 먹으면 작은 위로가 될 것 같았다.
아이들 시간표 메모지에 ‘여유 10분’을 붙였다. 버스 정류장에 10분 먼저 도착하자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다. 아이의 끝말잇기를 하고, 흘린 떡고물을 털어 줄 수 있었다. ‘괜찮아.’ ‘천천히 가자.’ 저번주에는 떠올리지 못한 말들이었다.
그 겨울 내내, 버스 정류장을 지날 때면 나는 잠깐 온열의자를 바라봤다. 그날의 장면이 손끝에 남은 온기처럼 천천히 되살아났다.
노부부를 다시 만나면, 고개를 숙여 말하고싶다.
“그날은 제가 죄송했습니다.”
두 분의 겨울이 오래 따뜻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