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낮 기운에 힘입어 아이들과 밖으로 나갔다.
놀이터 구석구석 원을 그리며 도는 아이들 무리에 첫째 아이는 없었다.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화장실 옆 모래터에서 첫째를 발견했다. 등이 굽은 첫째 아이 머리 위에서 날파리들이 윙윙 몰려들었다.
내 학창 시절 등이 굽은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가 학기 초부터 우리 반이었는지 방학 중 전학을 왔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아이는 이름으로 불리기보다 흉흉한 소문으로 반 친구들 입에 오르락 내렸다. 시시때때로 그 아이를 둘러싼 내용들은 황당하게 바뀌었지만, 그 누구도 앞뒤 안 맞는 말들을 지적하지 않았다.
그 아이가 떠오른 것은 한 사람의 인생을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한 푸른 나무재단 김종기 님 때문이었다. 그는 학교 폭력으로 투신한 아들을 위해, 아들과 같은 또 다른 피해 학생들이 생기지 않도록 재단을 만든 사람이었다.
‘학교 폭력’이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았던 1995년, 이 사건을 계기로 학교 폭력을 경험한 피해 학생의 부모들이 힘을 모았다. 그들은 학교 폭력에 관한 법, 정책, 대안을 제정하기 위해 열심히 두 발로 뛰었다녔다고 한다.
방송을 시청한 후, 푸른 나무재단에 매달 후원금을 지정했다. 잠깐이지만 나는 그 아이와 함께 했었다.
겨울방학을 한 달 앞두고 담임선생님은 각자 좋아하는 친구와 짝꿍을 하라고 했다. 그 말에 친구가 많은 아이들은 침이 꼴깍꼴깍 넘어갔지만 친구가 적은 아이들은 침이 바짝바짝 말라가는 상황이었다. 당시 나는 유치원 때부터 알아온 친구가 있어 마음이 여유로웠다. 하지만 그 친구는 내게 다가오지 않았다. 나는 턱을 괴고 배짱 좋게 친구를 기다리지도, 먼저 친구한테 다가가 “나랑 짝꿍 하자.”는 말도 하지 못했다.
하교 시간이 되어서도 짝꿍을 만들지 못해 실내화를 벗는 복도에서 서성거리는데 A가 다가왔다. A는 절친 B와 싸웠다며 나랑 짝꿍을 하고 싶어 했다. 그러지 않으면 소문이 안 좋은 아이와 짝꿍을 해야 한다고 했다. 내가 짝을 찾지 못해 마음이 달그락거리고 있을 때, 반 아이들은 그 아이의 짝에 관심이 있었던 것이다. 이토록 교실은 작지만 냉정한 곳이었다. 그날 밤 희미하게 기도했다.
‘A와 B가 화해하지 않게 해 주세요.’
친했다고 생각한 친구에게 느끼는 서운함도 친하지도 않은 A와 앉아야 하는 무안함도 무의미했다. 그저 내일 아침 웅성대는 교실에서 누군가와 앉아 있으면 되는 거였다. 다음 날 A는 B와 앉았다. 나는 그 아이와 함께 앉았다. 그 아이와 짝꿍인 된 것보다 내가 받는 우정의 몫이 초라해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졸업 사진을 찍는 늦가을, 그 아이를 향한 입말이 더 차가워지고 있었다. 반 아이들은 반팔 티를 입고 온 그 아이를 보며 큰소리로 말했다.
“11월에 여름옷을 입었어. 쟤는 고아라니?”
그 아이는 동급생 무리에서 열 걸음 뒤에서 사진을 찍었다. 운동장 구령대 앞에서 6학년 전체 사진 촬영이 있는 날이었다. 다들 그 아이가 혼자 서 있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6학년 담당 선생님, 6 학년 전교생, 사진 기사님까지...
훗날 졸업앨범에서 등이 굽은 아이가 아랫입술을 앙 다문 채 사진에 찍힌 것을 보았다. 사진에서 멀리 아주 멀리 있었던 그 아이한테 고백했다.
‘나도 엉망진창이었어. 나도 혼자였어. 내가 공부를 잘했거나, 멋쟁이였다면 네 옆에 있었을 텐데.. 나도 친구 무리에 있었을 뿐 졸업사진의 배경 같은 존재였어.’
겨우내 그저 등하교를 마치고 집에 들어오던 날. 녹색 페인트를 칠한 대문에서 하얀 강아지를 안은 그 아이가 내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내일 이사를 가는데 강아지를 데리고 갈 수가 없다 했다.
‘너 어디로 이사 가는데?’
‘우리 집은 어떻게 안 거야?’
‘나한테 왜 강아지를 맡기는 거야?’
‘그럼 너 내일부터 교실에 없는 거야?’
궁금한 것을 물어보지 못했다. 우리 집 한옥 마당에 그 친구와 함께 있음이 어색해 강아지를 덜컥 받아 들고서 네 걸음 떨어졌다. 얇은 점퍼를 목 끝까지 올린 친구의 얼굴을 정면으로 보았다. 퀭하고 마른 얼굴에 눈이 커서 놀랐던 것 같다.
‘너 이쁘구나.’ 말이 나올뻔했다.
강아지 행방은 어떻게 되었더라? 하얀 페인트를 칠한 것처럼 아무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 아이는 왜 내게 그런 부탁을 했을까?
우리가 교실에 나란히 앉아 인사를 했을까? 필기구가 없던 그 아이한테 연필을 나눠주다 내 집 주소를 적어 주었을까?
하굣길에 우연히 만나 군것질을 했을까?
그 시절을 눈감고 헤아려도 이렇다 할 장면이 한 톨도 기억나지 않았다.
기억에도 어떤 명도와 질감이 있는 건지 교실에서 그 아이와 어떻게 지냈는지 기억이 없다는 것. 그 무심함에 스스로가 멈칫거린다. 한 번은 그 아이를 만나 이야기하고 싶다.
‘안녕? 너한테 잘 가라는 인사를 못해서 미안해.’
첫째 아이가 놀이터 덤불 속에 들어가 작은 민들레 앞에서 쪼그려 앉았다. 입을 모아 호 불어 본다. 입 근육이 약한 아이 입김에 민들레 홀씨는 아무 변동이 없다. 엄마한테 와달라는 눈빛을 보낸다. 아이한테 갈려는 순간 문자 알림이 울렸다.
푸른 별 000님, 마음을 담아 보내주신 소중한 후원금이 입금되었습니다. 따스한 봄바람 같은 도움의 손길을 내어주신 000님, 감사합니다. 후원자님의 일상에도 행 복이 가득하시길 소망합니다. -푸른 나무재단 드림
따스한 봄바람 같은 도움의 손길이라고 했다. 나는 여전히 누군가를 도와주기에는 부 족하지만 김종기 님의 말에 흔들렸다.
“아들과 같은 비극이 또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자신의 자신에서 최선의 행동을 해야 했다.”
아이 주변에 다정한 반 친구, 선생님이 있어주길 바라면서도 정작 나는 따뜻한 사람이 되지 못했다. 엄마가 되어서야, 학교폭력에 시달리던 그 아이와 느린 내 아이를 떠올리며 가없이 밀려오는 불안을 꿰맨다. 나는 조심스레 그 친구 이름을 부른다.
작게 소리 내어본 소리가 이름 없는 아이들을 향해 나아간다. 나는 믿어본다. 봄바람 같은 마음들이 모이면 이름 없는 아이들의 굽은 등이 곧게 펴지리라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