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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과 창작, 그 경계에서 찾은 진실

창작자의 마음도 복사가 될까?

by 줄리킴

런던 패션위크에서 돌아온 날 밤, 나는 호텔 방에서 흥분된 마음으로 스케치북을 펼쳤다. 버버리가 완성시킨 트렌치코트의 시간을 초월한 우아함,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반항적 펑크 정신, 템스강변에서 마주친 한 여성의 빈티지 믹스매치까지. 모든 것이 내 안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로 재탄생하고 있었다.


패션 디자이너로 20년 가까이 살면서 깨달은 가장 중요한 진실이 있다. 창작이란 결국 무수한 모방의 레이어 위에서 피어나는 꽃과 같다는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모방'은 터부시되는 금기어가 되어버렸다. 특히 AI 시대에 접어들면서 더욱 그렇다.



지브리의 눈물, 그리고 AI의 딜레마


2025년 봄, 전 세계를 뒤흔든 사건이 하나 있었다. OpenAI의 CEO 샘 알트만이 자신의 프로필 사진을 스튜디오 지브리 스타일로 바꾸면서 시작된 '지브리화' 열풍.

ChatGPT의 새로운 이미지 생성 기능이 미야자키 하야오의 독특한 애니메이션 스타일을 완벽에 가깝게 모방할 수 있다는 것이 알려지자, 전 세계 사람들이 너도나도 자신의 사진을 지브리 스타일로 변환하기 시작했다.


Screenshot 2025-05-29 170755.png 샘 알트만 (OpenAI)의 지브리화풍 프로필 사진

하지만 이 '재미있는' 트렌드 뒤에는 씁쓸한 아이러니가 숨어있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미 2016년부터 AI에 대해 "혐오스럽다", "생명에 대한 모독"이라며 강력한 반대 입장을 표명해 온 인물이었다. 그런 그의 평생 작품이 그의 동의 없이 AI 학습 데이터로 사용되어, 그가 그토록 혐오한다던 기술로 무한 복제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사람들의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다. "창작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도둑질"이라는 분노와 "기술의 민주화"라는 환호가 동시에 터져 나왔다. 과연 누가 옳은 걸까?



인간의 학습 vs AI의 학습: 정말 다른가?


그런데 잠깐, 나 역시 런던에서 돌아온 그 밤에 한 일이 정확히 '학습'이 아니었던가? 수백 년간 축적된 패션의 역사를, 거장들의 작품을, 거리의 문화를 내 '뇌'라는 하드웨어에 입력하고 재조합해서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낸 것 말이다.


여기서 첫 번째 질문이 제기된다. 과연 인간의 학습과 AI의 학습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가 있을까?


전통적 관점은 명확하다. 인간은 단순히 데이터를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통해 기존 것을 해석하고 변형한다는 것이다. 런던에서 본 트렌치코트가 내게는 엄마가 비 오는 날 입던 베이지색 코트와 뒤섞이고, 첫 직장에서의 설렘과 겹쳐지며 완전히 다른 의미를 만든다.


하지만 반대편의 목소리도 들어보자. AI 옹호론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발명했을 때도 필경사들이 반대했다. 사진이 발명됐을 때도 화가들이 예술의 종말이라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더 많은 사람이 창작에 참여할 기회가 열렸지 않았나?"


지브리 스타일 저작권 논란이 거세지자 샘 알트만은 "AI 콘텐츠 제작의 민주화가 사회에 큰 순이익이라고 생각한다"며 "30년 전만 해도 캠코더와 VHS 테이프가 필요했지만, 지금은 스마트폰과 아이디어만 있으면 누구나 의미 있는 콘텐츠를 공유할 수 있다"라고 기술 발전의 접근성 향상을 강조했다.



패션업계의 현실: 이미 벌어지고 있는 '합법적 베끼기'


그들의 말에 일리가 있다. 내가 20년간 지켜본 패션업계 역시 끊임없는 모방의 연속이었으니까. Zara가 럭셔리 브랜드를 베끼고, 작은 브랜드들이 Zara를 베끼고, 인플루언서들이 또 그것을 베끼는 순환 구조.


Tuesday Bassen이라는 작은 디자이너가 Zara의 도용을 고발했을 때, Zara 측의 답변은 충격적이면서도 솔직했다. "당신의 작품은 충분히 유명하지 않아서 베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을 것이다." 이는 현실의 민낯을 보여준다. 이미 패션업계는 '합법적 베끼기'의 생태계 위에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저작권법은 의도적으로 패션 디자인을 보호 대상에서 제외했다. 옷은 '실용품'이기 때문에 예술 작품과는 다르다는 논리였다. 그 결과 연매출 189억 달러(26조 원)의 거대 기업 Zara가 작은 디자이너들의 아이디어를 마음껏 '차용'할 수 있게 되었다.


나이지리아 디자이너 Elyon Adebe가 중국의 Shein에서 자신이 330달러에 판매하던 핸드메이드 크로셰 스웨터를 17달러에 발견했을 때의 절망감을 상상해 보라. 다행히 그 케이스는 SNS 이슈로 제품이 삭제되었지만, 정작 창작자는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했다.


나이지리안 브랜드 Elexiay.png 나이지리아 브랜드 Elexiay가 인스타그램에 공유한 포스트



책과 도서관, 그리고 작가가 받지 못하는 로열티


출판의 세계도 다르지 않다. 한 작가가 수년간 공들여 쓴 소설이 도서관에서 천 번, 만 번 대출되어도 그 작가가 받는 것은 처음 도서관이 구매했을 때의 한 권 값뿐이다. 33개국에서는 공공대출권(Public Lending Right) 제도를 통해 도서관 대출 시에도 작가에게 일정한 로열티를 지급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이런 제도가 없다.


영국에서는 대출 한 번당 작가에게 약 10센트(137원)를 지급하며, 연간 최대 8,500달러(1,168만 원)까지 받을 수 있다. 덴마크, 캐나다, 호주 등도 비슷한 제도를 운영한다.



'태양 아래 새것은 없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


성경 전도서 1장 9절의 "What has been will be again, what has been done will be done again; there is nothing new under the sun(무엇이든지 있었던 것이 다시 있겠고 행한 것을 다시 행하리니 태양 아래에는 새것이 없다)"라는 구절이 있다. 정말 모든 창작은 기존 것들의 재조합일까?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워런 드 라 루, 알레산드로 볼타, 험프리 데이비, 조셉 스완 등이 그보다 먼저 전기 조명 장치를 만들어냈다. 에디슨의 진짜 기여는 이를 실용화하고 상업화한 것이었다.


트렌치코트도 마찬가지다. 1820년 토머스 핸콕과 찰스 맥킨토시가 만든 방수 외투가 기원이고, 버버리는 이를 완성시킨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좋은 모방'과 '나쁜 모방'을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이 있을까?



규모와 속도, 그리고 존중의 문제


차이가 있다면 '규모'와 '속도', 그리고 무엇보다 '태도'일 것이다.


인간이 모방할 때는 시간과 노력이 든다. 내가 버버리의 코트를 보고 영감을 받아 비슷한 디자인을 만든다 해도, 그 과정에서 수많은 변형과 개인적 해석이 들어간다. 또한 물리적 한계로 인해 대량생산은 어렵다.


하지만 AI는 수백만 장의 이미지를 학습해서 몇 초 만에 기존 작품과 구분하기 어려운 결과물을 무한정 생산할 수 있다. 지브리의 경우처럼 특정 작가의 스타일을 완벽에 가깝게 모방해서 원작자도 구분하기 어려운 수준의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태도다. 내가 런던에서 영감을 받아 새로운 디자인을 만들 때, 나는 그 영감의 출처를 인정한다. 버버리에게서 배웠다고 말하고, 그 전통을 이어받으면서도 나만의 해석을 더한다고 설명한다. 무엇보다 나는 버버리를 대체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위대함을 인정하면서 나만의 독특함을 찾아간다.


AI 기업들은 어떨까? 수백만 작가들의 작품을 학습 데이터로 사용하면서도 그 작가들에게 동의를 구하지도, 대가를 지불하지도 않는다. 더 나아가 원작자를 능가하는 속도와 규모로 비슷한 작품을 생산해서 시장에서 경쟁하려 한다.


우리 사회도 변해야 한다. 공공대출권 제도 도입, 창작자 직접 지원 문화 확산이 시급하다. 기업들도 "합법적이니까 괜찮다"는 논리에서 벗어나 상생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창작자에게 가장 큰 상처는 경제적 손실보다도 존재의 부정이다. 자신의 고유한 목소리가 익명의 데이터 덩어리로 취급당할 때, 창작에 대한 의욕 자체가 꺾여버린다. 실제로 많은 아티스트들이 AI로 인한 정체성 혼란과 우울감을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기술의 발전을 막을 수는 없다는 것을. 중요한 것은 그 변화의 과정에서 창작자들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가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하지만 희망은 있다. 기술 자체는 중립적이다. 어도비는 자체 제작하거나 라이선스를 받은 이미지만으로 AI를 훈련시키는 'Adobe Firefly'를 개발했고, 셔터스톡은 기여자들에게 AI 학습 사용료를 지불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런 사례들은 기술과 창작자의 권리가 양립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결론: 진정한 창작의 의미


20년의 패션업계 경험을 통해 깨달은 것이 있다. 모방과 창작의 경계는 기술적 차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가짐의 차이에 있다는 점이다. 같은 모방이라도 원작자를 존중하고 인정하며 그들과 함께 성장하려는 모방이 있고, 원작자를 배제하고 대체하려는 모방이 있다. 전자는 문화를 풍요롭게 하지만, 후자는 창작 생태계 자체를 파괴한다.


진정한 창작이란 과거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존중하면서 미래로 나아가는 것이다.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을 맞아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것이다. 저작권은 창작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화적 미래를 위한 것이라는 점이다. 창작자가 안심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을 때, 우리는 더 다양하고 풍요로운 문화를 향유할 수 있다.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AI가 아무리 정교해져도, 이 원칙만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창작자에 대한 존중과 상생의 정신.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지켜나가야 할 가장 소중한 가치이며, 모방과 창작 사이의 진정한 경계선인 것이다.


런던에서의 그 밤처럼, 우리 모두는 과거의 거장들로부터 영감을 받는다. 하지만 그 영감을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우리의 인격을 결정한다. 존중과 감사의 마음으로 받은 영감을 자신만의 색깔로 승화시킬 때, 비로소 진정한 창작이 시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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