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주 만에 잊혔던 첫 책, 두 번째는 '이것'을 택했다

3곳의 책 출간 제안 앞에서 내가 냉정하게 물었던 5가지 질문

by 줄리킴

AI의 등장으로 누구나 책을 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정작 '작가'로 살아남는 일은 더욱 고단해졌다. 출판사는 더 까다로워졌고, 독자는 더 신중해졌다.


수요보다 공급이 넘쳐나는 시장. 읽는 사람보다 쓰는 사람이 더 많아진 2026년의 출판 시장은 어느 때보다 보수적이었다. 그런 냉혹함을 알기에, 내 앞에 놓인 선택은 설렘보다 무게감으로 다가왔다.


최종적으로 3곳에서 출간 제안이 왔다. 기뻐야 할 순간이었고 실제로도 그랬지만, 그 기쁨은 유통기한이 짧았다. 곧바로 다른 생각이 밀려왔다. '선택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선택이 틀릴 수도 있다'는 불안이었다.


2025년 12월 31일 A사와의 화상 미팅을 시작으로, 1월 초 B사와의 만남, 그리고 중순까지 이어진 C사와의 계약 조건 조율. 4년의 공백을 깨고 다시 두 번째 책을 내는 내게 선택지가 주어졌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었지만, 나는 그 감사함 뒤에 숨은 전략적 판단을 놓칠 수 없었다.


나는 먼저 4년 전, 첫 책을 낼 때의 나를 복기했다.







4년 전의 실수: 지인 찬스라는 화력의 한계


당시 내 책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는 6주간 베스트셀러 순위에 머물렀다. 누군가는 대단치 않게 여길지 모르나, 28년째 한국을 떠나 외국에서만 살며 인맥이 좁은 내게는 기적 같은 사건이었다.


비즈니스 컨설팅 및 코칭 고객들, 3,000여 명의 SNS 팔로워, 그리고 10권씩 책을 사준 고마운 지인들. 이른바 '지인 찬스'로 만든 화력이었다. 부끄러워 사달라고 부탁하지도 못했는데 알아서 구매해 준 그 마음들이 눈물겹게 고마웠다.


그러나 딱 한 달이었다. 작가 개인의 에너지가 소진되자 책은 거짓말처럼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서울 대형 서점 매대에 깔리는 영광을 누리고도, 나는 그 동력을 이어가는 법을 몰라 골든타임을 허망하게 흘려보냈다.

나름 노력은 했지만 ‘처음’은 언제나 혼란스럽고 어렵다.


이번 두 번째 책은 달라야 했다. 단순히 종이에 인쇄된 글이 아니라, 시장에서 살아남는 '생존력'을 갖춰야 했다. 나는 더 냉정하고 전략적인 눈으로 파트너를 찾기 시작했다.






출판사를 선택하는 기준이 생긴 이유


첫 책 때는 특별한 기준이 없었다. "함께 하겠다"는 연락 한 통이 그저 감사해 다른 것을 따질 여유가 없었다. 이곳이면 되겠다하는 ‘감’에 기댔다. 다행히 첫 책은 좋은 인연을 만났지만, 그 이후 나는 수많은 작가의 출간 과정을 지켜보며 생각이 바뀌었다.


첫 책을 완성해 가는 과정에서, 이미 그 길을 먼저 걸어간 작가님에게 북코칭을 받았다. 북코치님은 내게 3개월간 12명의 예비 작가를 도와달라는 제안을 하셨다. 3개월의 북코칭 기간이 끝났지만 그 어느 누구도 완고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대로 멈추게 된다면 아무도 작가로 등단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나 역시 첫 책을 쓰는 처지였지만, 북코치님의 응원의 말씀에 나의 기획력과 구조화 능력을 믿어보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책을 쓰기 위해 모인 후 7개월이 지나서야 나를 포함해 총 5명의 작가가 탄생했다.


흰 스크린의 커서만 바라보며 떨던 이들이 책을 내고, 어떤 출판사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작가의 인생을 바꾸는 것을 지켜보며 깨달았다. 출판사의 역할이 좋은 책을 만드는 것 이상의 의미를 품고 있다는 것을.








계약 전에 반드시 확인해야 할 한 가지



본격적인 기준을 말하기 전, 반드시 체크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출간 예정일'이다.


대형 출판사는 라인업이 밀려 1년 이상 걸리기도 하지만, 중소 규모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내가 유료로 북코칭했던 한 작가는 에디터의 '온도'가 좋다는 이유로 1년 반 뒤에 책을 내겠다는 출판사를 택했다.


결과는 출간 무산이었다. 약속을 어긴 출판사에 실망한 그는 결국 작가의 길 자체를 포기했다.

( *참고로 더 이상 북코칭은 하지 않는다.)


출판사 선택은 계약서 한 장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경우에는 한 사람의 작가 인생을 바꾸기도 한다.


출간 예정일, 반드시 확인하라.

그것이 모든 기준보다 먼저다.






출판사를 고르는 5가지 기준


누군가는 뭘 그렇게 따지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초행길을 걷는 작가더라도 기준이 있다는 것은 중요하다. 자신이 책을 쓰는 목적을 명확히 알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측정하지 못하는 것은 관리할 수 도 없다.


출판사의 기준을 가진다는 것은 목적에 부합하는 서로의 파트너를 찾는 일이다. 결혼에 비유하자면 긴 여정을 같이할 손발이 맞는 곳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기준 1. 에디터의 신뢰도와 코드


계약은 출판사와 하지만, 실제로 책을 만드는 것은 에디터와 함께다. 에디터가 내 원고를 얼마나 깊이 읽었는지, 내 글의 결을 이해하는지, 그리고 나와 대화가 되는지. 이것이 모든 기준의 출발점이다.


미팅 이메일 한 통에서도 에디터의 코드는 드러난다. 템플릿 같은 문장인지, 원고를 실제로 읽은 흔적이 있는지. 앞서 언급했던 에디터의 첫 이메일처럼 — "본찰력이라는 단어가 단순히 멋을 내기 위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 이런 문장 하나가 신뢰의 출발점이 된다.


에디터는 내 글의 첫 번째 독자이자, 책이 완성될 때까지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하는 사람이다. 그 사람과 내가 같은 방향을 보고 있는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기준 2. 계약 조건 — 선인세와 인세율


선인세는 출판사가 이 책에 얼마나 확신을 갖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숫자다. 인세율은 책이 팔릴수록 작가에게 돌아오는 몫이다. 둘 다 협상 가능한 영역이다. 처음 제시된 조건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첫 책을 낼 때는 이것을 몰랐다. 제시된 조건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두 번째 책을 준비하면서 비로소 알게 됐다. 계약 조건은 대화의 시작점이지, 끝이 아니다.


선인세가 없더라도 인세율이 높거나, 초판 부수가 많거나, 마케팅 투자를 약속하는 방식으로 조건이 구성될 수도 있다. 숫자 하나만 보지 말고 전체 그림을 봐야 한다.




기준 3. 마케팅 역량


좋은 책도 독자를 만나지 못하면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출판사가 책을 어떻게 세상에 내보낼 것인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PR사와 협업하는 출판사라면 책의 노출 범위가 달라진다. 서점 MD 관계, 미디어 피칭 역량, SNS 채널 운영 방식까지. 내 책이 나온 이후의 그림을 함께 그려줄 수 있는 곳인지를 봐야 한다.


특히 나같이 해외 거주 작가라면 이 기준이 더욱 중요하다. 내가 직접 뛸 수 없는 자리를 출판사가 채워줄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작가가 아무것도 않하고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기준 4. 출판사의 비전과 방향성


내 책이 이 출판사의 라인업에서 어울리는가. 비슷한 결의 책을 낸 적이 있는가. 최근 출간 목록을 보면 출판사가 어떤 독자를 향하고 있는지가 보인다.


출판사 홈페이지, 블로그, 에디터의 SNS까지 들여다보면 그 출판사의 철학이 보인다. 내 책이 어색한 자리에 놓이길 원하지 않았다. 내 책을 가장 잘 이해하는 독자에게 가닿을 수 있는 곳이어야 했다.


이 기준은 거절을 받을 때도 유용하다. 결이 맞지 않는 출판사의 거절은 실패가 아니다. 애초에 맞지 않는 자리였던 것이다.



기준 5. 직감 — Gut Feeling


마지막 기준은 설명하기 가장 어렵지만, 결국 가장 강하게 작동하는 것이다.


모든 조건이 비슷하다면, 결국 이 사람과 함께 책을 만드는 과정이 즐거울 것 같은가. 이 출판사와 나란히 서면 내 책이 더 좋아질 것 같은가. 그 느낌.


논리로는 설명이 안 되지만, 작가라면 안다. 원고를 쓸 때 어떤 문장이 살아있고 어떤 문장이 죽어있는지 느끼는 것처럼 — 파트너를 고를 때도 그 감각은 작동한다.


다만 한 가지. 직감은 조건을 확인한 이후에 쓰는 것이다. 조건을 보기 전에 직감으로 먼저 고르면, 앞서 말한 고객분처럼 "더 잘 맞는 것 같다"는 느낌이 냉정한 판단을 흐릴 수 있다. 직감은 마지막 한 끗을 결정할 때 쓰는 도구다.





선택의 순간


나는 세 곳 중 결국 그 직감이 가장 강하게 말하는 곳을 선택했다. 에디터의 코드가 맞았고, PR사 파트너십이 있었고, 계약 조건도 납득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 내 날카로운 글을 감싸줄 수 있는, 내가 가지지 못한 부드러움을 가진 곳이었다.


2월 초, 메일함에 계약서 초안이 도착했다. 이제 '작가 지망생'의 설렘은 내려놓기로 했다. 이 종이에 도장을 찍는 순간, 우리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리는 비즈니스 파트너가 된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 직전, 잠시 멈췄다. 4년 전 첫 책을 낼 때와 같은 자리였다. 하지만 그때와 달리 이번엔 기준이 있었다. 감정이 아니라 판단으로 고른 자리였다.


물론 정답은 아직 모른다. 책이 나와야 알 수 있다.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신했다. 이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다만 이번 선택은 4년 전처럼 운에 맡기는 도박이 아니다. 지난 실패를 분석하고 시장의 변화를 읽으며 내린 전략적 판단이다. 이 책이 더 많은 독자의 삶에 닿아 실질적인 변화를 일으키길 바라는 간절하고도 전략적인 진심을 담는다.






출판사 선정 체크리스트


계약 전, 이 다섯 가지를 반드시 확인해보자.


1. 출간 예정일이 현실적인가? (중소 출판사 기준 1년 이내)

2. 에디터가 내 원고를 실제로 읽었는가? 그 코드가 맞는가?

3. 마케팅 역량이 있는가? 출간된 책들의 판매실적은 ?

4. 계약 조건은 만족하는가? 처음 제시된 조건이 전부가 아니다.

5. 이 출판사의 최근 출간 목록이 내 책과 결이 맞는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 이 모든 것을 확인한 후에도 여전히 망설여진다면, 그때 직감에게 물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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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화에서는 '계약서 조율'과 독소조항 확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첫번째 책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http://www.yes24.com/Product/Goods/10236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