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는 남편과 썸 탄다

19년 된 부부의 썸 타기 3가지 기술

by 줄리킴

19년째 남편과 썸 타고 있다. 썸 타는 결혼 생활로 우리는 여전히 서로를 향해 꽁냥꽁냥 한다. 결혼 전 어느 누구도 내게 결혼하고 나서도 '이 사람인가 아닌가 고민한다는 것'에 대해 얘기해주지 않았다. 결혼을 하고 나서야 그 고민을 많은 사람들이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혼한 부부야 말로 서로를 향해 계속 간을 본다. 잦은 부부싸움을 할 때, 서로에게 너무 익숙해졌다고 생각할 때, 볼꼴 못볼꼴을 다 보고 나서 '나를 여전히 사랑하는 것일까? 사랑하지 않을까?' 고민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부부 사이에 썸을 탄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별일이 되어야 한다. 우리 부부가 썸 타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것은 바로 남편의 손편지와 꽃이다. 그의 손편지는 잊을 만하면 내 홈오피스 책상에, 커피 머신 앞에, 식사 테이블 위에 올라와 있다. 어떤 날에는 내 노트 안에서 까꿍! 하고 빼꼼히 얼굴을 내민다. 손편지를 볼 때마다 내 입엔 미소가 순식간에 번진다.


손편지에는 남편과 나, 아들 이렇게 셋이 그림으로 자주 등장한다. 어떤 때는 "I am the happiest hubster in the whole wild world. 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편이지!" 같은 짧은 메시지가 있거나 그의 사랑이 담뿍 담긴 장 편지가 있다. 그의 글에는 내가 'my angel' 혹은 'my sexy angel'로 나온다. 안다. 이 글을 읽으면 당신의 손과 발이 오그라들 것을. 하지만 하나도 미안하지 않다. 난 그의 그런 주책이 너무나 사랑스럽고 고맙다. 이젠 아주 자연스럽게 넙죽 받을 수 있다. 장담컨대 난 '아줌마'보다는 내 남자에게 '섹시 엔젤'로 보이고 싶다. 그러니 한 점의 부끄러움도 없다. '뭐 어때! 내 남편이 그렇다면 그런 거 쥐! 남들이 뭐라 생각하든 상관없다고!' 부끄러움은 당신의 몫인 걸로 하자.


난 꽃을 좋아한다. 특히 꽃다발을 선호한다. 불행히도 나는 거룩한 식물들을 죽이는 똥 손이다. 일조량이 높은 스페인에서도 선인장을 죽이는 검은손이다. 일조량이 모자란 핀란드에서는 식물들이 나를 보면 떨고 있음을 느낀다. 내 손길을 강하게 거부한다. 하야, 난 식물의 안녕을 위해 꽃다발에 정착했다. 그 사실을 잘 아는 남편은 꽃다발을 사준다. 어떤 날을 자기 손에 들고 오고, 어떤 날은 배달을 시킨다. 또 어떤 날은 아들 손에 쥐어 같이 들어온다. 여름이면 들꽃을 따다 주기도 한다.


남편과 나 사이, 우리의 썸은 현재도 진행형이다. 그리고 썸 타는 것을 절대로 그만둘 생각이 없다. 계속 남편과 썸타며 함께 나이 들어가고 싶다. 남편과 함께 산책하러 나가면 노부부가 두 손을 꼭 잡고 산책 모습을 종종 발견한다. 우린 동시에 서로를 바라보며 '우리도 꼭 저렇게 나이 들자!' 한다. 내겐 그런 노부부가 제일 힙하다. 20년 이상 함께한 부부 이혼 비율이 10명 중 4명꼴로 발생하는 요즘 세상에서 남편과 내 눈엔 서로를 챙겨주는 노부부의 모습이 가장 힙하다. 40년 이상을 여전히 사랑하고 다정히 손을 잡으며 걷는 모습만큼 멋진 모습이 없다. 이것이야 말로 내가 추구하는 부부사랑 플렉스다.


'You would look so hot in white hair, babe. 자기 머리카락 색이 하얗게 되면 엄청 이쁘겠는걸!' 하는 코멘트도 잊지 않고 해 준다. 그리곤 난 그 얘기를 들으면서 '진짜 이쁜 할머니로 늙을 거야!'라는 다짐을 한다. 남편에게 같은 이야기를 해줄 수는 없다. 그는 아버님의 유전을 받아 30대 초반부터 이미 하얀 머리가 나서 내가 'sexy silver fox, 쒝쉬한 은발 여우'라고 자랑을 하고 다니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의 일상 애정행각이 유지되기까지 많은 일이 있었지만, 우리 부부의 썸 타기 기술 3가지를 소개해볼까 한다.



19년 된 부부의 썸 타기 3가지 기술




하나, 방목 사랑


결혼 전, 남편과 나는 서로 매우 독립적인 사람이었다. 각자의 자유를 존중했고, 자신만의 공간이 꼭 필요했던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결혼 후 같은 집에 살다 보니 의례적으로 동행하는 일이 많았다. 같은 집을 나서고 같이 집에 들어오는 경우가 흔했다. 회사를 가는 시간을 빼고는 어디든 함께 하는 것이 자연스레 버릇되었다. 결혼생활이 안정되고 나 없이 어디를 가거나, 나 빼고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일들이 생기면 괜스레 샘이 나기도 했다. 왠지 모를 소외감도 느꼈다. '어라? 나 원래 이런 사람 아니었는데?' 그 마음이 낯설었다.


친구들을 만나러 나가서 다음 날 아침이 되어도 들어오지 않는 때가 있었다. 부어라 마셔라 하는 친구들이랑 자주 만나면서 그의 외박은 잦아졌다. 몇몇 친구들의 술버릇이 싫었던 나는 자진해서 빠졌던 터였다. 그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전화할 생각을 못 했다고 했다. 사실 난 저녁에 집에 안 들어오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전화를 안 하는 것도 괜찮았다. 딱 한 가지,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메시지 하나 없이 옆자리에 없는 남편이 걱정돼서 죽을 지경이었다. 혹시라도 마드리드 시내에서 도둑질하는 놈을 발견했다 싸움이 난 것은 아닌지, 술 취해서 길바닥 어딘가 짜부라져 있는 건 아닌지, 오만가지 이상한 상상을 하면서 걱정과 근심이 생겼고, 곧 분노가 잇따랐다. 부부로서 서로에게 예의를 지키지 않는 행동이라 판단하며 괘씸죄도 적용이 되었다.


흥건하게 술에 취해 기분 좋게 갈지자를 그리며 집에 들어서는 남편을 보고 난 도끼눈을 하고 취조했다. 화라도 풀어내겠다는 심정이었다. '너, 또 통술 마시는 그 친구 만났지? 얼마나 들여 마셨으면 인사불성이 되어서 들어와? 손가락은 부러졌데? 늦게 들어온다고 메시지 하나 못 보내냐! 인간아?' 야들야들한 Honey, Baby 하는 호칭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타인으로, 인간 대 인간으로 분노에 방망이질을 했다. 그래 봤자 다~아, 내 손해였다. '술 취한 놈'님은 기억을 못 한다.


몇 차례의 똑같은 패턴으로 싸우던 나는 마음을 비우기로 했다. 생각지도 못한 이 술버릇을 어떻게 고쳐야 할지 몰랐다. ' An eye for an eye. 눈에는 눈, 입에는 입! 똑같이 해줄 테다'하고 맞불 작전도 써봤다. 소용없었다. 밤새워 마신 술로 내 몸과 간은 욱신욱신 아팠다. 샤워를 바로 하지도 못하고 집으로 가는 택시 속에서는 속이 메스꺼워서 몇 번이나 토를 삼켰는지 모른다. 집에 들어와 보니 남편은 태평하게 자고 있다. '내가 안 들어온 거 아는지 모르는지…. 그렇게 숙면을 한다 이거지?'. 속에서 열불이 났다. 보복의 결과는 실패였다.


대신 하나는 확실히 알았다. 밖에서 그러고 오는 것만으로도 이미 벌을 받는구나 하는 것이었다. 내가 굳이 속을 끓일 필요가 없겠구나 싶었다. 그때부터였다. 남편을 방목하기로 한 것이. 예전 연애할 때처럼 서로의 자유를 인정해주기로 했다. 남편이 친구들과 술을 마시러 가고, 늦게 들어오거나 외박을 해도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다. 걱정도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저녁에 푹 잠잤다. 아침에 남편을 봤을 때도 잔소리도 접었다. 술 마신 다음 날 오렌지 주스를 찾는 남편에게 오렌지 주스까지 사다 줄 아량은 없었지만 적어도 건들지 않기로 했다. 몇 주가 지나 본인 자신도 더는 그런 술자리가 힘들다는 것을 몸으로 깨닫고 스스로 멈췄다. 남편은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한 가지 확실히 배웠다.
'내 사람의 자유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였다.


꼭 쥐고 있어야 내 것이 되는 것은 진짜 내 사람이 아니다. 내놓았는데도 내 곁에 있는 그 사람이 진짜 내 사람이다. 무슨 결정을 하든 우린 서로에게 '허가'를 하거나 '혜택'을 주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의견을 말하고 그렇게 행한다. 우리 둘 사이 정말 큰 문제가 될 거리가 아니라면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고 동의하지 않더라도 막아서지 않는다. 서로 잡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 풀어주는 관계, 신뢰가 바탕이 된 방목 사랑을 배웠다. 서로를 믿고 풀어주면 풀어줄수록 진짜 내 사람이 된다. 풀어줘서 떠날 사람 같으면 진작에 보내주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했기에 이런 결정이 가능했는지도 모르겠다. 서로가 원해서 서로에게 내 사람이 되어줘야 한다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마음이 변해 내 사람을 바꿀 자유도 있다. 그 마음이 들지 않도록 서로 노력하는 방법밖에 없다.




둘, 아이보다 짝꿍이 먼저


아이를 낳고 남편과 육아 전쟁을 치르고 있을 시기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하는 내게 엄마는 한 마디를 해주셨다. 그 말은 내 결혼생활에 있어 큰 주축이 되어준 말이다.


"아이보다도 짝꿍이 먼저다." 엄마가 해주신 이 말은 출산 후 다시 생각하는 부부생활의 축을 잡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엄마가 덧붙여서 하신 말씀은 "아이는 네 품을 떠나지만, 네 짝꿍은 아이가 떠난 후에도 함께 있을 사람이란다. 그래서 아이보다 짝꿍이 먼저여야 한다. 아이한테만 관심을 100% 주면 안 된단다. 아이는 아이 자체로 봐주고, 남편은 네 반쪽이다." 엄마의 말씀을 들은 순간부터 난 내 남편을 바라보는 눈과 마음의 자세가 달라졌다.


아이의 밥을 챙겨줄 때 한껏 색상이며 모양이며 이쁘게 최선을 다해 줬다. 하지만 남편의 식사는 아이를 위해 이쁘게 만들고 남은 재료로 모양이 엉망이 된 음식을 올렸었다. 엄마 말씀을 들은 후부터는 내가 식사를 차려야 할 차례가 오면 남편의 식사를 더 정갈하고 깔끔하게 차렸다. 신혼 때도 안 해본 하트 모양으로 반찬을 놔둬 보기도 했다. 배시시 웃으며 기분 좋게 밥을 먹는 남편을 보니 나도 기분이 좋다. '그래, 내 짝꿍은 내가 챙겨야지! 암, 그렇고말고.' 아이가 있어도 그를 잊지 않았다는 것을 매일 알려줬다. 아이가 우리 삶의 No·1이 되어버렸던 일상에서, 남편의 원래 자리를 되돌려 줬다. 내 마음 1순위 자리.


아무리 바빠도 우린 1달에 1번 단둘이 데이트를 한다. 이날만큼은 우리 단둘을 위한 수다 시간이다. 둘 다 이쁘게 멋지게 차려입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갈 때도 있고, 잠옷 차림으로 소파에서 너부러져 스낵 봉투를 나눠 들고 영화를 보기도 한다. 앞으로도 쭉 내 짝꿍은 내가 챙길 거다.



셋, 잔소리는 사랑의 또 다른 이름



남편은 유달리 잔소리가 많아지는 때가 있다. 예를 들어, 눈이나 비가 많이 오는 날 내가 차를 끌고 나가는 때, 사우나를 하러 들어갈 때마다 똑같이 '선반 의자 가운데 밟아'라는 말 등, 무한 반복한다. 그 소리가 지긋지긋하게 느껴지는 때가 있었다. '그렇게 똑같은 말을 몇 년 동안 매번 들을 때마다 어떻게 된 게 본인은 질리지도 않나?' 싶다. 내가 기분 좋은 날은 'Okay, hon. I will. 응, 알았어~자기야'라고 대답한다. 어떤 날은 듣기 싫었지만, 그냥 마음을 누르고 'yeap, 응' 짧게 대답하거나 'I know that. 알고 있어'라고 대답한다. 그래도 기분 나쁨을 표 내지 않고 사뿐히 눌러줬으니 나름 잘 한 날이다. 문제는 기분이 그저 그런 날에 똑같은 얘기를 또 들으면 나의 뾰족함이 나타난다. 'How many times are you going to repeat that? 언제까지 똑같은 말을 되풀이할 건데?' 눈에서 레이저 광선이 나와 남편을 쏜다. 내 말의 냉랭함과 뜨거운 광선을 감지한 남편은 다행히도 입을 열지 않는다. 참 현명한 선택을 했다.


어느 날, 작정하고 남편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사우나를 갈 때마다 선반 의자 가운데를 밟으라고 얘기를 하는지, 핀란드에 비나 눈이 오는 날이 얼마나 많은데 왜 그리 잔소리를 해야만 하는지 물었다. 내가 못 미더워서 그런 것인지, 아님 불감증인지 도대체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그의 대답은 내 마음에 하트를 붙여줬다.


"그야, 눈이나 비가 올 때 자동차 사고가 자주 나니까. 핀란드에서는 사우나에서 뜨거운 온기에 샤워 후에 사우나 받침 의자에 발을 잘못 디뎌서 죽는 사람이 많아. 나한테는 네가 안전한 게 제일 중요해. 그래서 걱정이 되었어. 네가 안전하게 돌아왔으면 해서 그런 거야. 너 없는 세상은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아."

그 이후로 나는 남편이 하는 안전에 대한 잔소리가 사랑임을 알았다. 그리곤 무슨 말을 하든 '어쩌고 저쩌고'를 필터링을 할 수 있었다. 내 머릿속에 번역기를 돌리는 것이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로 들렸다.


썸은 표현해야 지속된다



남편의 손편지와 꽃은 여전히 내 삶에서 생각지도 못할 때 짠~하고 나타난다. 티격태격한 다음 날에, 지극히 평범한 어느 날 나타나기도 한다. 사소한 것에 신경을 써주는 세심함, 적절한 타이밍에 맞춰 선물이 아닌 것처럼 준다. 내 마음이 편하지 않다는 걸 신경 써주고 기억해주고 있다 느낀다. 손편지는 내가 특별한 사람임을 잊지 않게 해 줄 뿐만 아니라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는 시그널을 같은 것이다. 정기적으로 반복적으로 관심의 표현을 보여주기에 이 사람이 내 사람이다 확신할 수 있다. 꽃을 가꾸지 못하지만, 꽃을 좋아하는 내 마음을 헤아려 꽃다발을 직접 들고 오기도 배달을 시키기도 하는 그의 진심 어린 이해와 사랑의 표현이다.


결혼을 하고 나서 내가 남편과 썸을 타는 이유는 부부일수록 더 많은 표현과 대화가 없으면 그 관계는 유지되기 힘들다는 것이 주변 사람들의 이혼을 통해 발견했다. 상대가 느끼지도 못하는 썸은 오래가지 못한다. 부부관계도 마찬가지다. 너무 과도하지 않게, 너무 소극적이지 않게 그 중간지점을 유지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표현이 없는 관심과 사랑은 썸 타는 관계에서 상대방을 헷갈리게 만든다. 썸을 그만 타겠다는 의미다. 표현을 해야 썸이 지속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남편과 썸을 탄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핀란드에도 시월드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