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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리킴 Mar 11. 2021

핀란드에도 시월드가 있을까?

딸 같은 착한 며느리와 엄마 같은 착한 시어머니의 모순


 핀란드 남편을 둔 나는 핀란드 시월드를 경험할 기회가 없었다. 시어머님과 인연을 맺은 지 20년이 거의 다 되어가지만, 아직 한 번도 갈등을 일으킨 적이 없다. 참아서 갈등이 없었다는 게 아니다. 다퉈본 적도 미워해 본 적도 없었다는 얘기다. 물론 시어머님이 나를 미워했는데 내가 눈치를 못 챘을 수는 있겠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겉으로만 보이는 게 아닐 수 있으니. 시부모와의 고부갈등을 겪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핀란드 특유 '상대방의 시간과 공간을 존중하는 문화'의 영향이 크다.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다는 말이 있듯이 시어머님은 어떤 기대도 하시지 않는다. 나 역시 시어머님께 무언가를 해주시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그저 있는 그대로를 인정해주시고 사랑해주신다. 어엿한 성인 둘이 만나 결혼을 했고 가정을 이뤄 그들만의 가족을 이뤘다. 때문에 '그들만의 세상'으로 간주하고 존중해 주며 아들과 며느리의 부부생활이라는 테두리를 넘어오시지 않는다. 육아, 부부관계에 대해 일절 한마디도 하지 않으신다.      


 어느 날 어머님이 비장하게 미안해하시며 어렵게 말을 꺼내신다.


'I'm so sorry but it's time to pass your 'star shine' to Lucas.
I can't help. terribly sorry.
며느라, 미안하지만 네 스타 샤인을 이젠 루카스에게 옮겨줘야 할 것 같아. 나도 어쩔 수 없다. 정말 미안하구나!'


남편과 사귀었을 적부터 어머님은 나를 '스타 샤인'이라고 부르셨다. 별처럼 밝게 빛난다고 스타 샤인이란다. 처음엔 'my starshine'이라 불러주시는 게 쑥스러웠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기분이 좋았다. 이젠 그 스타 샤인 사랑을 손주에게 인계하겠다는 의미 셨다. 손자를 더 사랑할 수밖에 없으니 너무 서운해 말라는 어머님 식 공표이다. 어머님의 사랑과 존중은 나를 진짜 착한 며느리가 되고 싶게끔 했다. 남편과 헤어졌을 때 어머님이 생전 처음으로 남편에게 '바보스러운 짓'을 했다고 하셨단다. 남편과 내가 다시 만나고 핀란드에 방문했을 때 어머님은 세련된 투피스 정장을 우아하게 차려입으시고 출구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두 손에는 이제까지 내가 본 장미 중 가장 싱싱하고 봉우리가 큰 빨간 장미꽃 한 송이를 꼭 잡고 계셨다. 집에 도착하니 요리를 좋아하시는 아버님께서 오랜 시간을 공들여 천천히 요리한 염소고기 찜을 내놓으셨다. 이렇게 마음을 써서 나를 사랑으로 대해주시는데 어떻게 내가 시부모님께 잘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시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남편과 나는 좀 더 자주 시어머님을 식사에 초대한다. 방해하는 것이 싫다고 거절도 많이 하신다. 그래서 두어 달에 한 번쯤이 불편함을 안 느끼시는 적당한 기간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점심이나 저녁 식사 초대에 오시면 바쁜데 시간을 내주고 음식을 준비해주는데 너무 고맙다고 하시며 진짜 '식사만' 드시고 금방 가신다. 디저트나 커피도 마다하고 식사 중 나눈 짧은 수다를 서로 즐기고 식사가 끝나면 바로 가신다. 그러니 식사 초대에 전혀 부담이 없다. 우리 집 열쇠를 드렸고, 차로 3분 거리에 있는 어머님은 그냥 오셔도 된다고 해도 전화를 꼭 주시고 '지금 가도 괜찮겠니?'라고 묻고 방문하신다. 그 횟수도 지극히 적다. 한 달에 한 번, 많아야 두 번이다. 손주가 보고 싶으시기 때문이다. 그 마음을 알고 나서는 아이를 픽업해 나도 전화를 드리고 어머님 댁에 일주일에 한두 번씩 꼭 데려간다.   


   물론 핀란드인과 결혼한 주변 지인들을 보면 너무 예의를 차리는 것이 아닌가 혹은 거리감이 너무 크게 느껴진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가족이 되어서까지 남처럼 대하는 것이 아니냐며 심적인 고통을 토로하는 친구들도 꽤 있다.  한국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다. 감정표현이 자유로운 라틴계열 나라에서 온 친구들은 미치고 팔짝 뛰겠다며 핀란드인은 감정이 메말랐다고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 친구도 많다. 외국살이를 하며 끊임없이 싸워야 하는 외로움이 힘겹고 내 마음 편히 기댈 곳이 없다는 투정일 수도 들릴 수도 있겠다. 시댁에서라도 그런 마음을 달래길 바랬는데 핀란드 시댁에서는 그럴 수가 없다고 불평을 하는 사람도 많다. 그래도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합쳐진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니까 사람 사는 맛이 좀 있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말한다. 선을 그어놓고 넘어오면 안 된다고 딱 잘라버리는 것 같다는 마음을 나도 충분히 공감한다. 하지만 난 그게 더 좋다. 내 감정의 허용치를 알려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23년을 외국에 살면서 배운 것은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미련을 살포시 내려놓는것이다. 그리고 얻은 것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해본다. 시월드를 겪지 않음으로써 감정 고갈을 강요받지 않는다는 것. 적정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내게 자유가 주어진다는 것.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것. 그저 핀란드 시댁의 세상과 내 세상은 살아가는 방식이 다를 뿐이고, 적응할 수 있을 만큼의 거리가 내겐 딱이다.




한국형 시월드, 며느라기는 무슨 뜻? 


 카카오 TV 오리지널 드라마 '며느라기'가 있다. '며느라기'는 한국 사회에 뿌리 깊게 박힌 '가부장제 문화'를 배경으로 평범한 '며느리'가 시월드에 입성하면서 겪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담은 드라마다. 1화가 첫날에 110만 뷰를 돌파하는 등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 활발한 리뷰와 토론이 벌어지고 있을 정도 인기를 얻은 드라마다. 드라마 자체도 재미있지만 난 사실 시청자 반응을 더 재밌게 봤다. 드라마 내용은 평범한 새내기 부부 '민사린(박하선 분)'과 '무구 영(권율 분)'이 시어머니와 시아버지, 동서와 시누이 사이에서 겪는 현실적인 결혼생활 이야기다. 드라마 이전에 이미 2017년 5월부터 2018년 1월까지 SNS를 통해 수신지 작가가 연재한 웹툰 <며느라기> 많은 인기를 얻었다. 2017년 '오늘의 우리 만화 상', 2018년 '올해의 성 평등 문화상'을 수상하며 큰 사랑을 받은 작품이다.     





<며느라기> (글 그림 수신지. SNS 연재)

  


'며느라기' 사춘기, 갱년기처럼 며느리가 되면 겪게 되는 '며느라기'라는 시기가 있다. 작가가 말하는 며느라기의 정의는 '시댁 식구한테 귀염 받고 싶고 칭찬받고 싶은 그런 시기로 보통 1, 2년이면 끝나는  사람에 따라 10 넘게 걸리기도 하고,  끝나기도 한다고 한다.' 1, 2년만 해도  힘이 쭉쭉 빠지는 시간인데  끝난다고 생각하면  며느라기가 얼마나 고통일까 상상만 해도 숨이 막힌다. 모르긴 몰라도 '사위라기'를 겪는 사람들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누구나 그렇듯이 결혼하고 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좋은 며느리', ‘좋은 사위’ 되고자 애를 쓴다. 나의 나쁜 모습보다는 좋은 모습으로 새로운 가족에 최선을 다한다. '며느라기' 이야기로 우리를   들여다보자. 민사린은 결혼한  얼마 지나지 않아 며느라기의 당연한 본분으로 인식되었던 일들이 부당하다는 것을 인지하게 된다. 시집살이엔 시어머니와 미운 시누이가 절대 빠지지 않고 여자들끼리의 미묘한 관계 갈등과 신경전 속에 남편과 시아버지는 어정쩡한 상태가 된다. 결혼한 여성들이 대부분 겪게 되는 사소한 것들에서 받는  받음,   없는 부당함과 대놓고 하는 부당함  솔직하게 그려내줬다.      


 이 드라마가 통쾌한 이유는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는 며느리'를 보여 주지 않고 '반격할 줄 아는 며느리'가 나와 주기 때문이다. '며느라기'에서 단연 내 맘을 사로잡은 인물은 거침없는 사이다 발언을 쏟아내는 첫째 며느리다. 캐릭터는 보는 것만으로 속이 뽕! 하니 뚫려 시원하다. 한국의 시월드를 가끔 친구들을 통해 들어봤지만, 실제 경험을 해보지 못한 나는 드라마를 보면서 대리 경험을 하는 것 같다. 주인공 민사린이 겪는 일상 속에서의 그 미묘한 감정선이 너무 이해가 된다. 동시에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것이 '착한 며느리가' 되기 위한 노력이 과연 누구를 위한 노력인가 의문을 갖게 된다.      


 영상마다 몇백 개의 댓글들이 달리는데 작품 내용뿐만 아니라 결혼제도에 대한 갑론을박이 대단하다. "효도는 자식들에게 받아라, 시부모들아", "언제부터 착한 며느리가 '시댁 일꾼'이란 뜻이 됐냐", "결혼을 한 것인지 시녀를 들인 것인지", "종년으로 시집간 건 아닌데 배려는 쌍방이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비혼 쐬기, 땅땅땅!", "공중파에서 했으면 좋겠어요. 꼰대 시부모들 보게 “, "남편에게 던져주고 싶은 드라마".      

세상에 요즘도 저런 시어머니가 있냐고, 그렇게 과장된 시월드는 없다고. 지금은 과거와 달라졌고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치부한다. 친구들 얘기를 들어보면 그게 시대가 바뀌었다고 시월드가 사라진 것 같진 않다. 예전처럼 대놓고 그러는 시부모들은 없을 수 있다. 드러내 놓고 '몰상식한' 말을 꺼내지는 않지만, 시부모들도 자신의 불만족을 고단수로 왠지 모를 불편함과 언짢음을 준다.      


 이 드라마를 보며 내가 느끼는 것은 며느리 혹은 예비 며느리가 받는 취급이 단연 시월드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라 사회 전반적인 곳곳에 퍼져있다는 것이다. 남자 친구네 저녁 초대를 받아 부모님을 만나러 간다는 회사 동료가 밥을 먹고 나서 설거지는 자신이 해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는 모습에 다른 동료는 '너 가사도우미 면접 보러 가냐?"라고 던지는 일침은 시원하면서도 안타깝다. 이 건 내 경험상으로 다른 나라에서 겪어보지 못한 한국 고유의 '착한 며느리', '착한 여자'를 강조하는 사회의 높은 기대에서 나온 문화라고 생각한다. 혹은 외국에서 오랫동안 산 이민 세대라고 하더라도 한국인의 가족과 연이 닿을 때 생기는 높은 기대는 여전히 많이 발생한다. 한국 밖에서 보면 '착한 사위'는 강조하지 않으면서 유달리 '착한 며느리'만 요구하는지 참 이상하다.     



<며느라기> (글 그림 수신지. SNS 연재)


딸 같은 '착한 며느리'는 모순 아닌가요?


 도대체 '착한 며느리'는 어떤 며느리를 말하는 걸까? 시어머니에게 점수를 따기 위해 생신상을 차려주며 시댁의 갖가지 독박 노동을 감수하는 며느리? 그런 노동에 노심초사하는 사회가 여성에게 당연한 듯 부고하고 있는 그 시선은 또 어떤가? 심지어 친정엄마조차 자신의 딸이 사부인에게 잘 보이는 것을 걱정한다. 그래야 자신의 면을 살리는 일이라고 말한다. '사부인 생신상은 잘 차려 드렸니? 네가 잘못하면 다 엄마 흉 되는 거 알지? 우리 사린이야 말 안 해도 잘하겠지만 예의 바르게 공손히 잘하고 출근 잘해라'. 차별적인 독박 노동을 강요한 시어머니도, 친정엄마도 심지어 남편까지 그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남편이 아내에게 '고맙다'라는 말 한마디 없이 아내의 노력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착함을 요구하면 그 뒷 일이 감당될까 싶다. '이 사람과 결혼을 잘한 것일까?' 하는 의구심이 폭풍 몰아치듯이 들어오고 결혼의 후회를 느끼면 하나부터 열까지 하는 이유 불문하고 남편이 엄청 미워진다는 사실을 남편들은 알까?     


 내가 보는 '착하다'는 말 한마디는 독박 노동을 떠안아야 당연하다 여기는 현실과 여성으로서 그것을 담당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회적인 무언의 압박이 공포스럽다. 엄마와 며느리의 노동이 '착하다'는 의미로 당연히 받아들이는 무구 영, 사린의 남편은 그 부조리함을 깨닫지 못한다. 가장 가까이에 더 큰 적이 있는 것이다. 각 회 20분 남짓의 숏폼으로 만들어진 '며느라기'는 군더더기 없이, 지극히 소소하고 일상적인 사건들 속에 숨겨진 디테일한 며느리의 미세먼지처럼 잘 보이지 않는 차별 요소를 꼭꼭 끄집어낸다. 압축적으로 담아낸 대사들과 민사린의 불편해지는 표정들로 가부장제 틀의 관점을 여실히 들어내고 소외된 며느리들의 세계를 잘 잡아냈다.      


 다시 한번 우리 사회에 여전히 남아있는 '관습'에 대한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 이제는 '며느리'에게 강조하는 집에 들어앉아 아이를 돌봐야 한다는 문화가 예전보다는 사라졌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을 겪고, 들을 것 같지 않은 말들을 들어가며 '며느라기'시기를 보내는 분들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드라마에 나오듯 실제로 이런 일이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기보다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에서 여전히 남아있는 가부장제도의 관습, 변질된 유교 사상을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여성들이 여성으로 살면서 일상적으로 겪는 다양한 차별이라는 점에서는 '며느라기'와 '82년생 김지영'은 같은 주제를 다룬다. 여전히 '며느리'로 겪는 '여성'으로 겪는 어려움과 제한선은 사회 전체뿐만이 아니라 매일 살아가는 일상에 뿌리 박혀 있다.     


 반면 며느리도 사위도 달라진 핵가족 문화를 피부로 느끼면서 살아가는 시부모님을 이해해야 한다. 과거 가부장적인 환경에서 살았고 현재의 아들과 며느리, 딸과 사위의 현대적인 가치관을 이해하기 어렵다. 가족의 연대감의 중요성을 듣고 자란 세대인데 현대 사회는 유달리 가족 유대감이 현저히 악화하였다. 젊어서는 엄한 시어머니 아래서 숨죽이며 지냈고 나이 들어서는 똑똑한 며느리에게 치여 사는 '샌드위치 세대'로 전락했다. 푸념을 조금 과하게 하다 보면 며느리와 아들은 부부싸움을 하고 친정으로 간다. 결국, 자신 때문에 이혼이라도 할까 봐 걱정되어 사돈댁에 몸소 모시러 가는 현상도 번번이 있다. 고부 관계는 한 방향이 아니라 양방향이다. 샌드위치로 살아오신 억울한 시부모님들이 겪어야 할 세태에, 예전보다 더 많은 책임을 지고 가는 힘든 며느리와 사위에게 서로를 측은하게 여겨주는 마음이 있다면 갈등이 지금보다 훨씬 줄어들 것이다. 내 가치관이 존중받기 바란다면 상대방의 가치관을 먼저 존중해 주었을 때 존중과 배려의 힘이 비로소 빛이 난다.     






결혼은  장기 해외 가족여행, 시부모는 현지 가이드


  시부모님들을 통해 어떤 시부모가 되고 싶은지 배운다. 내 아이가 자라 누군가의 사위가 되고, 내가 며느리를 얻게 된다면 그분들처럼 내 자식과 남의 자식에 대한 마음을 비우고, 배려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사랑은 대화와 표현으로 상대방이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끼게 해줘야 한다는 것을. 사위도 며느리도 귀한 남의 자식이다. 손바닥에 놓고 주무르고 싶다는 마음, 지지고 볶으며 사는 게 가족이라는 생각을 먼저 비워야 한다. 그냥 아들과 함께 사는 남의 소중한 딸이자 한 여자로, 딸과 함께 사는 남의 소중한 아들이자 한 남자, 한 인격체로 배려하고 그들의 삶의 선택을 존중해 줄 것이다. 설사 그들의 행동이나 말이 내 마음에 차지 않더라도 그건 온전히 내가 해결해야 할 내 몫이다. 이래라저래라 붙들고 타박하거나 불평하는 것은 오히려 부부 사이만 멀어지게 할 뿐이다. 자식의 행복을 바란다면 자식이 선택한 사람과 스스로 행복을 만들고 느낄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존중해줘야 한다.     


 인생을 여행에 비교한다. 결혼은 나와 다른 가족이 만나 오랫동안 하는 장기 해외 가족여행 같다. 시댁을 가면 다른 나라를 방문하는 것과 같다. 언어도, 관습도, 문화도 틀리다. 시부모는 현지 가이드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을 한다. 낯선 나라에서 현지 가이드와 마찰을 일으키면서 낙오되거나 혼자 짐을 싸서 집에 돌아갈 길을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현지 가이드와 어떤 관계를 유지하는 게 좋을지 현명한 선택은 당신 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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