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결혼생활
행복한 결혼 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서로 얼마나 잘 맞는가 보다
다른점을 어떻게 극복해 나가냐이다.
_레프 톨스토이
아무리 금실이 좋은 부부라 하더라도 안 싸우고 살 수는 없다. 다른 환경에서 20년을 넘게 살아온 사람이 함께 생활하는 것이 마냥 행복할 수 없는 게 당연하다. 하물며 남편과 나는 다른 나라에서 자랐으니 언젠가는 터질 일이었다. 보통 부부싸움의 원인은 결혼 전에는 생각할 필요가 없었던 경제적 배분, 가사 분담, 가정 내 대 소사를 챙겨야 하고 생각의 차이로 발생한다. 특히 요새는 맞벌이 부부가 많아 시간적 여유는 없는 상황에서 서로 이견을 조율할 시간마저 모자라다. 부부 세 쌍 중 한 쌍은 하루 대화 시간이 30분도 채 되지 안된다고 하니 함께 보내는 여가는커녕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매우 적을 테다. 서로 지친 상태에서 얼굴을 보게 되면 대화보다는 그동안 쌓인 불만을 토로하고 결국은 싸움으로 번지는 경우가 많다.
결혼 전 연애 기간 동안 했던 밀당을(밀고 당기기) 기억하는가? 영어로도 'Playing hard to get'이라는 말로 관심이 있으면서 괜히 까다롭게 구는 척이라는 말로도 표현할 수 있다. 일본에서 건너온 '츤데레'같은 개념도 완전히 같은 상황을 의미하진 않지만 쓰기에 따라서는 밀당스킬로 보지 못할 것도 없다. 츤데레란, 겉으로는 좋아하면서도 츤츤 (쌀쌀맞게 구는 식의 행동) 거리며 매정하게 대하지만 사실은 데레데레 (좋아하고 부끄러워하는 태도 등)함도 갖추고 있는 인물'을 뜻한다.
난 진정한 밀당은 결혼 후 부부로 살면서 살벌하고 적나라하게 펼쳐진다고 생각한다. 연애하던 때와 비교를 해본다면 강도가 남다르긴 하다. 밀다가 자빠지고, 당기다가 나가떨어지는 실전 부부 밀당의 세계, 잘못 하다간 서로 정반대 방향으로 튕겨 나가 우주 끝까지 날아가 버리기도 한다. 영영 찾아올 수 없는 블랙홀 (이혼)로 빠지는 경우다. 현실 부부싸움에서 웃자고 한 말에 죽자고 달려드는 쌍심지와 치열한 신경전은 기본 장착 기능이다. 허니 허니하던 허니문 시기가 지나면 장착했던 꿀물이 바닥나고 밀당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여느 드라마 못지않게 클라이맥스를 마구 몰아둔 현실 부부싸움의 링으로 올라간다. 딩딩딩딩 !
남편과 나는 5년 연애를 하며 한 번도 싸움을 한 적이 없다. 함께 시간을 즐겁게 보내고 또 각자 자기의 공간으로 돌아가 일상을 보냈기 때문이다. 직장 때문에 난 런던, 홍콩, 서울 등 여러 도시에서 살았지만, 남편은 (당시 남자친구) 몇 주 혹은 몇 달을 와서 함께 지냈다. 떨어져 있다가 오랜만에 함께 보내는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다. 도시마다 찾아놓은 로컬맛집을 데려가고, 주변 도시들을 여행 다녔다. 싸울 거리가 없었다. 우리 둘에겐 맛있는 음식, 와인 그리고 여행이 가장 큰 공통분모였다. 정신없이 유명한 곳을 찾아 돌아다니기보단 로컬 사람들이 아끼는 장소들을 가서 내 일상을 나누고, 풍경이 좋은 곳을 발견하면 잡아둔 계획을 없애고 아름다운 풍경을 함께 보며 여유롭게 산책했다. 지나간 기억을 떠올리고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갔다. 그런데 결혼식을 올린 후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5년 연애 후 우린 시빌 메리지( Civil Marriage, 법적으로 웨딩 주례사가 있고 증인 2명 참석하는 결혼)를 먼저 했고 2년이 넘고 나서 결혼식을 올렸다. 시빌 메리지를 한 후에도 싸움한 적이 없다. 근데 결혼식을 올리고 나니 3개월 동안 매일 전쟁 같은 싸움이 시작되었다.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고도의 신경전 밀당이 시작되었다.
남편과 나 사이 싸움의 원인은 항상 같았다. 가사일 분담과 청소였다. 남편도 나도 일을 하고 있었고 피곤해서 집에 돌아오면 에너지는 바닥이다. 집안일 할 생각을 하면 에너지가 있어도 없다고 말하고 싶었다. 밥을 먹자마자 깔끔히 치워야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나와 식후에는 무조건 소파에서 먼저 쉬는 남편과 매일 저녁 싸움을 했다. 치우자는 나와 쉬자는 그, 우리 주도권 싸움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우린 '웬수'가 되었고 외다리에서 만나는 싸움을 매일 저녁 했다. 문제 해결도 못 했고, 화해도 하지 못한 채로 씩씩거리며 잠이 들고 아침에 일어난다고 화가 풀려 있지 않았으니 저녁에 얼굴을 봐도 사이가 좋을 리가 없다. 3개월 동안 별의별 게 눈에 걸렸다. 남편이 깔끔한 성격이고 둘 다 깨끗한 것을 좋아했지만 치우는 시기에 대한 싸움을 멈출 줄 몰랐다. 울며 겨자 먹기로 참다가 내가 하거나, 며칠 쌓인 더러운 부엌을 보며 남편이 속이 터져서 하거나였다. '누가 더러움을 더 잘 참는가?' 하는 내기로 변모했다.
그런 사람이 있다. '이겨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 지면 큰일 나는 줄 아는 마음'. 남편과 내가 딱 그랬다. '먹고 나면 바로 치워야 하는 것이 맞다. 아침에 난장판인 식탁을 보면 하루 시작이 엉망이다'와 '먹고 나면 쉬다가 치워도 된다, 못 치우면 다음 날 치우면 된다'의 싸움이 붙었다. 둘 중 하나는 포기를 해야 끝날 싸움일 텐데 그도 나도 질 기세가 없다. 하도 싸워서 싸우는 게 신물이 났다. 3개월의 싸움. 함께 있는 게 이렇게 힘들고 불행한 거라면 차라리 헤어지는 게 낫겠다 싶을 정도로 지쳤다. 지난 5년 싸움 한 번 안 하고 어떻게 살았나 기적 같은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안 맞으면 이혼할 생각으로 결혼했으니 갈라서도 아쉬울 것이 없다고까지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혼하는 거야!' 마음을 먹고 엄마·아빠한테 전화했다. '엄마, 아빠, 저 이혼할래요. 별것도 아닌 것에 매일 싸우는 것도 지치고 이건 아닌 것 같아요'라며 하소연을 했다.
엄마, 아빠는 차분히 내 하소연을 다 들어주셨다. '어쩌니', '속상했겠구나', '그렇구나' 추임새를 넣어주시며 열변을 토하는 딸의 이야기를 전부 들어주셨다. 팔팔 끓던 수증기가 다 빠지고 나니 마음이 차분해졌다. 그리곤 엄만 세모와 네모 이야기를 해주셨다.
" 이렇게 생각해보렴. 너는 세모고, 남편은 네모라고. 둘 다 모서리도 있고 뾰족한 부분도 다르고 모양도 달라. 지금 세모랑 네모가 서로 부딪혀서 동그라미를 만드는 중인 거야. 부부는 둘 다 동글동글해져야 함께 잘 굴러가거든. 그러니까 지금 부딪히는 건 자연스러운 일인 거야. 대신 서로를 너무 깊숙이 찌르면 안 돼. 깊이 찔러 상처를 주면 둘 중 하나가 멈춰버리거든. 그럼 결정을 해야겠지. 같이 멈춰서 기다려줄 것이냐, 아님. 혼자 갈 것이냐. 어떻게 하고 싶어?".
아빠는 "너도 회사 갔다가 오면 지치고 힘들 텐데 같이 쉬어보는 건 어때?"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날 저녁, 3개월 만에 처음으로 저녁 식사를 하고 소파에 같이 앉았다. 남편은 눈이 휘 동그래지며 나를 봤다. 난 의미심장한 말만 던졌다. '난 세모고 넌 네모래. TV에 뭐 재미있는 거 없어?' 갸우뚱하던 남편은 '응, 오늘 자기가 좋아할 만한 영화 하더라.‘
남편이 바꾸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내가 바뀌는 게 더 문제해결을 하는데 빠르다는 걸 알게 되었다. 더불어 그 날 이후 소소하지만 큰 갈등으로 번지는 문제를 줄이기 위해 우린 '시스템'을 하나 만들었다. '가위, 바위, 보'라는 체계. 식사하고 나서 가위바위보로 지는 사람이 설거지하는 방식이다. 대신 언제 하느냐는 건드리지 않기로 합의했다. 다음날까지 미뤄질 경우는 아침 식사 설거지까지 함께 하는 거로 결정했다. 경쟁심 강한 우리 둘 다 가위바위보로 설거지 연속 10번 하기 내기도 했다. 남편이 설거지 50번 덤터기를 썼을 때 나의 환호는 포효에 가까웠다. 우린 다시는 가사 분담으로 싸우지 않았다. '웬수'를 외나무다리에서 가위바위보로 만나는 일이 즐거웠다. 참, 웬수는 사이가 나쁜 원한 관계에 있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끈끈한 사이를 가진 싸이에게 '웬수'라고 얘기한다.
결혼 후 5~6년째는 싸우는 주제가 확실히 달랐다. 집안일이나 가사 분담에 대한 시스템을 잡고 나니 반복되었던 싸움이 없어졌다. 대신 부부로서 함께하면서 부부 이외에 서로가 충분한 시간을 들이지 못한 것들에 대한 부재가 슬슬 일상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결혼 전에는 자주 다녔던 친한 친구들과의 여행, 달랐던 취미 생활 같은 것 말이다. 남편으로서 부인으로서 서로에게 채워줄 수 없는 중요한 부분들이다. 내적으로 공허함이 생기기도 하고 갈망하고 있는 것을 채우지 못했기 때문에 나오는 것들이었다. 제한된 휴가를 쪼개서 함께 보내기도 하고, 가정 내 대소사를 위해서도 쓰다 보면 '나와 친구'를 위한 시간이나 '취미 시간'은 쏙 빠지고 없다. 나도 친구랑 시간을 못 보내니 너도 친구랑 보내는 시간을 갖지 말라는 구속의 굴레를 씌웠다. 또 다른 문제로는 좋아서 결혼했는데 바로 그 좋았던 것들이 싫어지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우린 과감히 함께 가던 휴가를 포기했다. 대신 긴 주말여행으로 바꿨다. 그리고 서로에게 1년 중 '20일 자유 시간'을 주기로 했다. 이 시간은 각자가 자기 친구들과 여행을 갈 수도 있고, 혼자 여행을 갈 수도 있다. 서로에게서 자유로울 '나'만을 위한 시간을 주는 것이다. 자신의 시간을 갖는데 허락을 주고받는 게 아니라 당연한 권리이자 서로를 응원하는 시간으로 삼았다. 남편이 2주가 넘는 여행을 가면 자동으로 나 혼자만의 시간이 생긴다. 결국은 남편의 20일, 나의 20일이 합해져 40일이라는 혼자 있을 시간이 생긴다. 너무 익숙해져서 지겨울 때쯤에는 떨어져 있음으로써 그 익숙함이 마음의 편안함을 가져오고 행복임을 다시 보게 된다. 서로에게 멀어져 있을 때, 자기반성 혹은 자기 성찰의 시간이 깊어진다. 멀리서 봤을 때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남편이 23살, 내가 24살 때 만났다. 내가 38살이 되었을 때 아이를 갖기로 마음먹었다. 14년을 함께하며 서로의 못난 모습을 인정하고 포용해주는 마음도 14년 동안 함께 컸다. 서로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못하는 것, 잘하는 것, 힘들고 어려워하는 것, 쉽게 해낼 수 있는 것을 이해해 주려 노력한다. 잔소리 같은 이야기를 들어도 그 안에 숨어있는 깊은 의미도 걸러낼 줄 알았다. 가끔 싸움이 나도 이젠 '잘' 싸울 수 있다. 왜 그런 마음을 가졌는지 이해하는 데 수월해졌다. 이젠 싸울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를 갖고 출산을 하고 나니 또 다른 세상이 열렸다.
나의 가장 사랑스러운 부분을 꺼내 주는 사람이 남편/아내라면, 나의 가장 악한 부분을 꺼내 주는 사람 역시 남편/아내이다. 내 한 몸 안에 사는 천사와 악마의 만남은 하루가 멀다고 왔다 갔다. 천당과 지옥을 하루에도 열두 번 왔다 갔다 했다. 출산 후 기력이 바닥난 몸과 마음이었지만, 영혼까지 끌어모아 블랙 매직을 서로에게 쏘아댔다.
둘 다 부모가 된다는 게 처음이니 서로 헤맸다. 핀란드와 스페인에서 자라며 여러 나라에서 산 남편과 한국에서 자라고 10개국에서 공부하고 일해온 나의 양육에 대한 개념 차이는 매우 컸다. 싸움의 가장 큰 화두는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 혹은 '나는 피해자고 너는 가해자'였다. 각자가 아는 육아의 배경지식이 많지도 않으면서 보고 들은 것에 상대를 판단하고 '누가 맞느냐?' 싸움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어설픈 엄마 아빠가 어설픈 육아 전쟁을 했다. 출산 후 밤새 모유를 하느라 잠이 항상 모자라고, 호르몬이 난동하던 때라 평소보다도 더 감정 조절이 어려웠다. 남편의 이해와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다.
난 이 힘겨운 시기를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밖으로 자주 산책하러 나감으로써 넘길 수 있었다. 집에만 있을수록 어른다운 대화 한마디 못하는 나는 뇌가 콩알만 해 지는 것 같았다. 아이는 이뻤지만, 육아는 죽을 것 같이 힘들었다. 주말 역시 남편이 하루는 쉬고, 그다음 날은 내가 하루를 쉬는 형식으로 서로에게 아이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날, 서로에게 쉬는 날을 선물해줬다.
쉼이 들어오니, 남편과 아내가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는 사람'임을 먼저 인정해주는 마음도 생긴다. 생각이 다르다고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완벽한 사람으로 포장하려 하지 말고 자신 역시 부족한 점이 많다는 것을 더 보여주고 도움을 요청할 때 서로를 향한 마음이 열린다.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라는 생각으로 시작한다면 서로에 대한 감정 에너지 고갈을 유도할 뿐이다. 문제 해결을 위한 서로의 교차지점을 함께 찾는 게 아니라 '내가 피해자인 이유'를 증명해야 하기 위해 모든 에너지를 소비하기 때문이다. 상대방은 그 이유가 틀렸다고 방어 혹은 공격태세로 전환한다. 전제부터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똑같은 이유로 싸움이 반복된다는 걸 볼 수 있어서 첨만 다행이었다.
부부는 일심동체가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부부는 때에 따라 이심일체, 일심이체가 되어야 한다. 따로이면서도 함께인 관계, 함께이면서도 따로인 관계일 때 더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할 수 있다. 문화, 환경, 종교, 교육, 부모가 다른 두 사람이 각자의 세상에서 살다가 함께 만나 다른 생각과 시선을 갖고 있다. 그렇기에 '이심' 두 개의 다른 마음이 된다. 하지만 부부로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함께 손을 잡고 가기에 '일체'가 되어야 한다. 함께 만들어가고 싶은 삶의 목표를 향해 이인삼각처럼 서로의 속도, 방향, 눈높이를 함께 맞추어가는 '이심 일체'가 되어야 한다. 둘 중 한 명이 쓰러졌을 때 혹은 어려움이 닥쳐 둘 다 쓰러졌을 때는 '일심 이체'가 되어야 한다. 고난과 역경을 헤쳐나가겠다는 마음을 한데 모아 '일심' 똘똘 뭉쳐야 한다. 그리고 각자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 서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점을 따로 맡아 '이체'로 앞뒤 좌우로 밀고 들어오는 공격을 막아내 싸워야 한다.
남편과 난, 오늘도 밀당을 한다. 서로의 행복한 부부생활을 위해 따로 함께, 함께 따로 밀고 당긴다. 기 싸움을 통해 심리고갈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더 즐겁고 행복한 부부생활을 위해 긍정 에너지를 만들기 위해 하는 것이다. 이제는 주도권은 빼앗거나 빼앗기는 것, 얻거나 잃는 것이 아닌 ‘기꺼이 나누는 것’임을 안다. 인생의 짝꿍으로 서로에게 맞춤복 같은 사람이 되기 위해 주도권을 나누어 가지는 밀당을 한다. 슬기로운 1일 1부부싸움은 이젠 1일 1밀당으로 대체되었다. 잊지 말자. 밀당은 서로의 사랑과 신뢰를 하고 있을 때만 가능하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