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외국 살이, 행복과 성공에 관한 의문
한국을 떠난 지 23년째다. 한국 밖에서 바라보는 한국은 치명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다. 짧을 수도 길 수도 있는 23년이라는 시간 동안 외국에서 10개국을 살면서 느낀 거지만 한국에 한번 맛을 들인 사람들은 한국이라는 매력에서 빠져나오기 힘들다. 한 프랑스 친구는 한국에 잠시 놀러 왔다가 클럽문화에 푹 빠져 다니던 회사에 휴직계를 내고 3개월 동안 눌러앉았다. 한국이 좋아 나중에는 아예 한국으로 이사를 했다. 직장을 구해 회사에 다니며 자기가 좋아하는 클럽문화를 만끽하며 살며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 했다. 하지만 한국에 사는 한국 사람들은 대부분 한국이 살기 힘든 곳이라 얘기한다. 그래서 내가 밖에서 보는 한국은 천국과 지옥이 공존하는 곳이다.
한국은 역동적이고 살기 좋은 곳이다. 캐나다, 미국,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 등 미주, 유럽에서 살아보니 한국만큼 의료보험이 잘되어 있고 의료비가 저렴한 곳이 없다. 거기다 진료예약 없이 가도 진료를 받을 수 있고, 진료 차례가 빨리 온다. 대중교통은 세계에서 손꼽을 정도로 깨끗하고 편리하다. 전기, 상하수도료도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국가 중의 하나다. 그리고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음식과 배달 서비스. 언제든지 원하는 음식을 무엇이든 시킬 수 있고 신속하게 배달된다. 온라인으로 물건을 주문하면 당일 배송되거나 몇 시간 만에 도착하는 배달의 지상천국이다. 야식을 포함하여 배달되는 음식은 놀라울 정도로 보온 냉온이 완벽하게 된 상태로 온다. 뜨뜻미지근한 찌그러진 배달 피자를 먹다 한국을 방문하면 그 배달 음식 맛에 빠져 몇 킬로 쪄오는 게 이상할 일이 아니다. 24시간 동대문쇼핑은 이미 외국에도 많이 알려져 있다. 외국 친구들에게 너무나 평범한 한국식 소맥을 (소주와 맥주 섞은 혼합주) 만들어주면 화려한 칵테일 제조법을 본 것처럼 환호성을 낸다. 이내 나는 황금비율과 소맥기술을 전수해준다.
안타깝게도 한국 내 사는 많은 사람이 한국을 헬조선이라고 얘기한다. 당장 떠나고 싶다는 사람들 이민을 생각해 본 사람들도 많다. 이민이 너무 큰 일이다 보니 '제주도 한 달 살이'도 생각해본다. 자녀가 있는 경우는 공교육과 사교육 사이에서 줄다리기하게 된다. 내 맘 같지 않지만 다른 방도가 없어 남들과 함께해야 하는 자녀 학원 돌리기를 하며 '친구가 없어서 학원이라도 보내야 친구를 만난다'라는 말에 살짝 눈을 감고 학원으로 보낸다. 4차 혁명시대 창의성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선행학습과 조기교육, 국어 영어 수학도 모자라 사회과학 탐구 학원을 방과 후 뺑뺑이 교육은 계속된다. 아이들은 밖에서 뛰어놀지 못하고 지식 쌓기에 바쁘다. 직장에서의 서열제도와 극한 경쟁으로 가족을 뒤로하고 회사에 많은 시간을 헌납해야 한다. 이렇게 성장을 위한 '전쟁 같은 삶'이 과거의 고성장을 촉진했고 사회에 역동성과 활력을 불어넣었다.
지금의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 3만불이 넘는 고도의 성장 후에도 계속 '전쟁 같은 삶'을 이어가고 있다. 그 결과 OECD (경제개발협력기관 Organization of Economy Co-operation and Development) 국가 중에서 2019년 자살률 10만 명당 26.9명으로 세계 1위 자살률을 차지했다. 한국 통계청이 발표한 '2019년 사망원인 통계'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하루 평균 38명이 자살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불어 2020년 세계 행복지수는 153개국 중 61위로 작년보다 7단계 후퇴하였다. 건강 기대수명 (10위)과 1인당 GDP (27위)로 2개 항목은 비교적 상위권이지만, 관용 (81위), 부정부패 (81위), 사회적 지원 (99위), 삶에 대한 선택의 자유 (140위)는 모두 중하위권을 차지했다. 세계 최저의 출산율을 가지고 있다. 너무나도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사는 핀란드로 이사를 오기 전까지는 나는 한국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많이 없었다. 회사에 다니면서도 나는 항상 유일한 한국인이기도 했지만, 내 일상생활 속에서 한국친구들을 사귈 기회가 거의 없었다. 나는 지금 핀란드에 살면서 내 사업을 하고 있고, 핀란드에 거주하는 한국어 영어 전문 통역가가 많지 않기에 핀란드 국가기관에서 통역요청이 들어올 때 통역을 하기도 한다. 한국에서 핀란드를 방문하는 사업체나 핀란드가 초청한 유명 인사 및 한국 국가 기관처에서 통역요청이 늘기 시작했다. 한국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전문 통역번역을 대학교 때부터 해왔던 터라 내겐 통역하는 일이 쉬웠고 재미있었다. 사업가이면서 사업 통역을 하니 핀란드에 소재한 여러 분야의 업체들을 알아갈 수 있는 점은 내게 큰 도움 되었다. 핀란드 교육과 디자인 관련 방문도 많았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자 17년 동안 디자이너로서 일한 내게 이런 일들이 고객 맞춤형처럼 일처럼 쏙쏙 들어왔다. 무엇보다 한국 사람이 고팠던 내겐 한국 사람들과 소통할 기회가 생겨서 신바람 나게 일을 했다. 한국의 여러 도시에서 방문하시다 보니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시고 너무나 멋진 일을 하시며 사시는 분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여러 해를 보내며 한국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특이한 패턴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그분들이 내게 친한 친구에게 풀지 못한 이야기, 회사 동료와도 나누지 못하는 속 이야기, 가족에게 내비치지 못한 이야기들을 털어놓는다는 것이었다. 또 다른 공통점은 한국에서의 삶이 그리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다. 대부분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지 않다는 점도 있었다. 모든 분이 그런 건 아니었지만 정신없이 빠르게 지나가는 일상을 견디며 상황에 맞춰 살아가다 보면 몇 달이 이미 훅 지나있고, 몇 년이 지나있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았다. 내가 한 거라곤 조용히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과 동감을 해주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나면 그분들의 질문이 내게 쏟아진다. 10개국에서 공부하고, 일하고, 출산하고 육아한 일, 내 사업에 관한 이야기, 외국살이가 어떤지 또 어떻게 내가 살아왔는지에 대한 질문들에 답변을 해드렸다. 대화가 끝나면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며 한국에 돌아가서는 다르게 살고 싶다고들 하셨다.
지금은 코로나로인해 모든 것이 멈춰버렸지만, 그분들과 나눴던 우리의 흔한 일상 이야기들을 기반으로 그분들이 궁금해하셨던 내 경험을 여기서 함께 나눠 볼까 한다. 내가 한국에서 살았더라면 겪지 못했을 10개국에서 얻은 다양한 경험을 통해 느낀 성공과 행복에 관해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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