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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희 Aug 09. 2020

요란했던 결혼식 전야

함 사세요

내일은 그 이하고 만난 지 두 달하고 이십일 만에

결혼식을 올리는 날이다.


그이는 누나네 집에 얹혀살면서

나이 어린 조카들과 함께 방을 쓰는 것에 많이 불편해했고

나는 내년이면 정년퇴직하시는 아버지께서

결혼을 서두르셨다.


이유가 어찌 되었건 그이는 우리가 만난 지

2주가 지나지 않아 아버지에게 인사를 와서 덜덜 떨어가며

"따님과 결혼하고 싶습니다."를 외쳤고

아버지께서는 당당하고 용기 있는 총각의 모습에 허허 웃으시며

부리나케 상견례를 하고 결혼 날짜까지 잡아주셨다.


두 달 이십일 만에 데이트하랴

신혼집 구하러 다니랴

신혼 살림살이 장만하러 다니랴

여기저기 결혼한다고 인사하러 다니랴

참으로 많이 바쁘기도 했다.     


무엇보다 지난주 일요일에는 100여 명이 넘게 모이는  

대학부 학사회 성경공부 모임에 인사를 하러 갔었는데

그이가 마이크를 잡고 인사를 했다.


“천사와 같은 아가씨와 결혼하게 된 총각입니다.”     

그이의 첫마디에 남자 후배들 몇십 명이 책상을 치며 웃었다.

내 동기들과 선배들도 피식거리며 따라 웃었다.

그이는 후배들이 웃던 웃음의 정채를 모른 채

앞으로 행복하게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겠다며

인사를 마쳤다.


그동안 나는 후배 녀석들에게 적잖이 무서운 존재였다.

감히 버릇없이 행동하다 잘못 걸리기라도 하는 날은

영락없이 혼 줄을 나곤 했던 녀석들이라

나를 천사 같다고 표현하는 그이를 보며

‘에구 당신도 이제 고생 좀 하겠수다’라는 표시로

그 날 책상을 치며 웃었으리라.     


깔깔대는 후배들에게

'야! 이놈들아~ 이제 그만 좀 해.

이 총각이 눈치채면 어쩌려고.' 하는 맘으로

눈치를 계속 보냈으나

녀석들이 내 눈길은 아랑곳하지 않아서

그이의 대학부 신고식은 이렇게 어수선함 속에서

화기 애매하게 마쳐졌다.     


돌아오는 길에 그이는

"원래 결혼 신고식 분위기가 이런 것인가요?" 라며  

책상을 치며 왁자지껄하게 웃던 후배들의 태도에

조금은 실망했다고 했지만

"다들 인사하러 오면 좋아서 저래요."라고

대답한 내 말을 철썩 같이 믿고

이내 숙제를 마친 어린애처럼 히죽거렸다.


지금 밝혀두지만 결혼 신고식 분위기는

원래 이런 분위기는 아니었다.

유독 그날만 녀석들이 그랬다.

그동안 나한테 쫀쫀하게 당한 일들이 있어서

그랬겠지만 말이다.     


지난주의 그 왁자지껄한 분위기처럼

오늘도 꽤나 시끄러운 분위기가 집으로 이어졌다.

그이의 친구들이 함을 지고 좀 전에 왔다 간 것이다.


함을 받기 위해 엄마랑 언니 동생과 함께

고모들까지 모두 모였다.

오빠는 “함 사세요.”라고 동네가 떠내려가듯

소리쳐대는 젊은 남정네 무리들과 밀고 당기기를 했다.

동네 어귀에서부터 함지기가 한발 한발 발을 옮길 때마다

술상을 내다 주기도 하고 돈 봉투를 땅에 깔아주기도 했다.     


그이 친구들은 대문 앞까지 도달한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들어올 듯 말듯하며

기다리는 식구들의 애를 태웠다.


성미가 급한 나는 궁금한 마음에

대문 밖으로 당장 나가

'아니, 왜 이렇게 시간을 질질 끌고 난립니까?

밤에 함을 팔러 왔으면 후딱 들어오셔야 예의 아닌가요?

엄마가 준비한 음식이 다 식어버렸는데 어쩌려고 그래요?'라며

허리에 두 손을 얹고 대학부 후배 녀석들에게 하듯 따지고 싶었다.


하지만 내일이면 신부가 될 사람이니

절대로 성질 부리면 안되고 얌전하게 기다려야 한다는

고모의 말을 거역하지 못하고 고운 한복을 입고 앉아

세상에서 제일 얌전하고 다소곳한 처자가 되어

내숭을 떨며 기다렸다.


기다림의 임계점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가까스로 대문 문턱 앞까지 거의 다다른 함지기와 마부가

마지막 떼를 쓰느라 우왕좌왕하는 틈을 타서

오빠가 함을 짊어진 함잡이의 등을

대문 안으로 힘껏 밀어 넣었다.     


조금 더 애를 태웠어야 하는데 억울하다는

마부와 함지기 또 그들을 따르던 대여섯 명의 친구들이

어이 상실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아버지와 엄마에게 넙죽 엎드려 공손히 절을 했다.


아버지는 그이의  친구들을 어서 들어오라며

한 상 거하게 차려놓고 맞이하셨다.    

오빠랑 형부도 합세해서

부어라 먹어라 하는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 통성명을 하고 학번을 따지다 보니

어랏! 이 사람들 오빠 친구의 동생도 있고

형부의 직속 과 후배도 있지 않은가?


남자들이란 자고로 서열이 중요한 법!

신부의 오빠라는 이유로 신부의 형부라는 이유로

아주 공손하고 공손하게 술대접을 하던 모드가

갑자기 급 반전되면서 오빠는 지금까지

굽실거리던 목소리를 철회하고

"어이~자네! 이리 와서 나한테 술 한잔 따라봐~"하면서

껄껄껄 하하하 거리며 코가 비뚤어질 때까지

마시고 놀다가 돌아갔다.


내일이면 다시는 오지 않을

천정 집에서의 마지막 날이

이렇게 정신없이 지나가다니.......


대충대충 부엌에서 그릇 정리를 마치신 엄마가

젖은 손을 닦으시며 어서 자라고 내 등을 토닥였기에  

내일 맞을 결혼식을 위해 서둘러 잠자리에 들었는데

정성을 다해 이만큼 길러주신 엄마 아버지를 떠나갈 생각을 하니

눈시울이 금세 붉어졌다.     


이불속에서 훌쩍거리는 나를 보며

신부가 결혼식 날 얼굴 부으면 안 된다고

어서 빨리 자야 한다던 언니의 말은 뒤로한 채

잠이 올 것 같지 않은

아니, 잠을 자지 말아야 할 것 같은

아버지와 엄마와의 마지막 밤이

그렇게 재깍재깍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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