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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희 Aug 10. 2020

시댁에서의 첫날 아침, 늦잠자다

시어머니의 사랑

화려했던 결혼식. 

인생에서 가장 큰 축제였던 그 날의 떨림과 설렘은 변주곡처럼  연주되었고 여느 신랑 신부의 결혼식처럼 우리의 결혼식도 쏘는 화살처럼 순식간에 지나갔다. 웅장한 교회당 안에서 멘델스존의 결혼행진곡을 연주해 주던 남자 친구의 파이프 오르간 소리에 맞춰 지금까지 살아왔던 아버지의 손을 잡고 얼마를 걸어가다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한 남자의 손으로 내 오른손이 넘겨지던 순간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결혼식 때 주례하시던 목사님의 주례 내용이 무엇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빨리 주례사가 끝나기만을 기다리던 우리 둘 모습이 생각난다. 옛날엔 주례사가 왜 그리 길었던지...... 주례 없는 요즘의 결혼식을 생각하면 참 진부하다는 생각도 들고, 짧고 멋있고 기억에 남는 주례사를 해주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자고로 좋은 말도 짧은 것이 좋은 법이니 말이다.


지금도 아스라이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결혼식의 풍경은 신랑으로 서 있던 파릇한 그이의 모습과 하얀 면사포와 드레스를 입고 신랑 옆에 다소곳하게 서 있던 내 모습, 사진사의 요구에 맞춰 찰칵찰칵 사진 찍던 순간들, 분주하게 일가친척들에게 한복을 입고 다소곳하게 절을 하던 폐백의 시간, 테이블마다 돌아다니며 하객들에게 꾸벅꾸벅 인사하던 그때의 풍경, 신혼여행 떠나기 전까지 우리에게 짖꿋은 장난을 치며 끼득거리던 친구들의 얼굴들, 커다란 신혼여행 가방을 들고 비행기에 오르던 피곤했던 순간들이다.


     

구름 위를 걷는 것처럼 기분이 둥둥 떠있었던 신혼여행지에서 그이는 자기 어머니 이야기를 해주었다. 어머님은 열여섯에 시집오셨는데 시집와서 보니 먹을 것이 없어 굶기를 밥 먹듯 하셨다고 했다. 가난한 살림이었기에 나중에 일해주기로 하고 식량을 얻어 식구들 끼니를 해결하시면서  낮에는 논으로 밭으로 쏘다녀야 했고 밤에는 베를 짜야만 했으며 봄여름 가을엔 농사일에 정신없으셨고 겨울엔 땔감을 하러 산을 오르락내리락하셨다고 했다.


그 시절의 가난이야 어디 어머님만 경험했으랴마는 도시에서 자란 나로선 소설 속 이야기로 들리기까지 해서 동화책을 읽어주는 아빠 앞에서 졸음에 겨워 자올 거리는 계집애처럼 연신 나오는 하품을 손으로 훔쳐가며 그이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갔었다.


꿈만 같았던 신혼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먼저 시댁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그날은 그이의 고향인 시골집에 두 번째로 가는 날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만나서 결혼하는 순간까지 너무 짧은 시간이었기에 시댁에 자주 갈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 신혼여행의 고단함이 있었지만 시댁에서 기다리는 식구들과의 만남을 생각하니 긴장이 되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순창 읍내에 있는 소박한 미장원에 들려 얌전하게 머리를 올리고 핑크색 화사한 새댁의 한복으로 갈아입었다.


미용실 아줌마는 시댁 어른들에게 처음 절할 때 최대한 늦게 일어나라고 조언까지 해주었다. 흙내음이 가득하고 정겹게 구불어진 골목을 지나 시댁에 도착하니 막둥이 결혼식을 마치고 각자 흩어졌던 식구들이 신행 온 신랑 신부를 맞이한다고 모두 내려와 있었다. 해 질 녘 시댁의 마당 위론 지글거리는 고소한 기름 냄새와 고깃국 냄새가 서로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그이와 나는 최대한 공손하게 어머님과 할머님께 절을 올렸다.


맨 위 큰 시숙부터 이름도 모르는 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꼬맹이 조카까지 부채 살처럼 쭉 늘어서서 우리가 얼마나 얌전하게 절을 잘하는지 감시하듯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인사를 마치고 둥그런 상과 네모 상을 여러 개 맞대 놓고 저녁을 먹으며 시댁 식구들은 이런저런 말을 건네며 한바탕씩 웃어젖히는데 나는 그저 밥공기와 국 대접하고만 눈빛을 교환했다. 조심스럽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한 시댁에서의 첫 날밤은 창호지 발린 창살이 양쪽으로 나 있는 작은 방에서 두툼한 요에 빳빳하게 풀을 먹여 바스락 거리기까지 하는 목화솜 이불을 덮고 피곤함을 풀었다.


잠이 들기 전 어머님 닮아 아침잠이 없다는 그이한테 “나 내일 늦게 일어나면 큰일 나니까 꼭 일찍 깨워 달라” 신신당부를 하고 잠이 들었는데 이게 웬걸 그이도 나도 신혼여행에서의 고단함 때문이었는지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일어나지 못했다. 여명의 빛을 넘어 밝은 빛의 기운이 느껴지던 순간 갑자기 눈을 번쩍 떴는데 밖에서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자그맣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이고 살살 좀 해라. 새아가 깨면 어쩌려고 그냐.  푹 자고 인나게 가망가망 좀 혀 라이.”  

   

이크. 시댁에서의 처음 맞이하는 아침부터 이게 무슨 꼴이람. 허겁지겁 한복을 차려 입고 “왜 안 깨워줬냐”며 밖에서 누가 들을세라 모기소리로 불평을 하고 그이의 팔을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힘껏 꼬집으며 머리를 묶고 살그머니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안녕히 주무셨냐고 인사를 하니 발뒤꿈치를 들고 살살 걸으며 동서와 아침을 준비하시던 어머님께서 “피곤한데 더 좀 자지 뭘라고 이렇게 일찍 나왔냐”며 얼굴 씻고 할머님께 문안 인사부터 드리라고 하셨다. 어머님보다 꼭 일찍 일어나서 얌전한 새댁의 자태를 보여드리려고 다짐했었는데 첫 단추부터 새댁의 부지런하기는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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