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사람이라면 '나는 왜 쓰는가'라는 질문 앞에 서본 적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왜 글을 써야 하는지 고민하던 때가 있었다. 고민하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왜 쓰는지에 대한 고민보다 무엇을 쓸지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생산적일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던 차에 글 쓰는 동기를 뚜렷하게 밝히고 있는 조지 오웰의 글을 읽고 나서 ‘왜 글을 써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조지 오웰은 ‘나는 왜 쓰는가’에서 글 쓰는 네 가지 동기를 밝히고 있다. 첫째는 똑똑해 보이고 싶은 순전한 이기심이다.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이야깃거리가 되고 싶은 마음, 죽어서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고 싶은 마음, 어린 시절에 무시당했던 어른들에게 보란 듯이 갚아주고 싶은 이기심이 글을 쓰는 동기라고 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어쩌면 허영심에서 출발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를 표현하고 싶은 마음도 엄밀하게 따져보면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고, 자신의 글솜씨를 자랑하고 싶은 동기에서 출발하니까 말이다.
두 번째 동기는 우리가 만나는 아름다운 것들을 낱말의 적절한 배열을 통해 인식하는 미학적 열정이라고 했다. 멋진 산문을 써낸다는 것은, 자신이 경험한 바를 매력적인 단어와 문구를 연결해서 완성하는 과정이다. 글 쓰는 사람은 더 아름답고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단어를 찾느라 고민한다. 이런 과정이야말로 견고하고 훌륭한 이야기를 만드는 원동력이 될 것 같다.
세 번째 동기는 후세를 위해 진실된 것을 보존하고자 하는 역사적 충동이라고 했다. 있는 그대로 보고 진실을 알아내고자 하는 욕구는 정의로움이다. 우리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왜곡된 일들을 바로잡아 거대한 세력에 맞서서 기록하는 정의로움은 용기 있는 행동이다. 이러한 태도가 글 쓰는 동기였다고 하니 조지 오웰이야말로 맹렬한 정신을 소유한 사람이었다. 진실을 알아내고자 하는 욕구는 그에게 소명의식이었으리라.
네 번째 동기는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투쟁할 수 있도록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려는 정치적 목적이라고 했다. 조지 오웰은 “맥없는 책들을 쓰고, 현란한 구절이나 의미 없는 문장이나 장식적인 형용사나 허튼소리에 현혹되었을 때는 어김없이 정치적 목적이 결여된 때였다”라고 고백하고 있다. 그가 문학적 본능을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모든 진실을 말하기 위해 애썼고, 기발하게 쓰기보다 정확하게 쓰려고 노력했던 이유는 후대에 전해질 역사의 진실이었다. 또 그는 자신이 쓴 글이 조금이라도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촉매제로써 사용되기 바랐다.
조지 오웰과 내가 처한 시대적인 상황은 다르지만, 글 쓰는 사람으로 가져야 할 작가 의식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사회적인 부조리를 직시하고 억울한 일에 처한 사람들의 편이 되어 줄 수 있는 정당한 도리, 무고한 사람들이 당하고 있는 부당함을 고발해 줄 수 있는 용기, 왜곡된 진실을 정확하게 바라볼 수 있는 눈과 그것을 적절하게 표현해 낼 줄 아는 문학적 본능이 아닐까. 앞서 언급한 이유와 더불어 글 쓰는 일에 인생을 걸었던 조지 오웰, 자신이 처한 당대의 계급의식과 전체주의 풍토를 특유의 비유와 유머로 비틀고 풍자했던 조지오웰을 통해 불쾌한 사실을 직시하는 능력 또한 필요함을 느낀다. 조지 오웰의 글을 읽고 나는 왜 쓰는가에 대한 고민보다 어떤 글을 써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더 커졌다. (1223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