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맘에 드는 책을 만나면 반복적으로 읽는 습관이 있다. 모든 책을 다 이런 방식으로 읽는 것은 아니지만 내 마음에 흔적이 남는 책은 두 번 세 번 읽는 것을 넘어서 해마다 한 번씩은 꼭 읽는 책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많이 읽은 책이 있는데 모르간 스콧 펙 박사님이 쓴 <The Road Less Traveled>라는 책이다. 이 책은 우리나라 말로 "끝나지 않은 길"이라고 번역되어 있기도 하고 "아직도 가야 할 길"이라고 번역되어 있기도 하다.
서울대에서 신경과 전문의를 딴 김창선 원장이 번역한 "끝나지 않은 길"은 소나무 출판사에서 1988년에 초간 되어 18쇄까지 나오다 절판되었으며, 숭실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숭실대 베어드학부대학교수로 재직 중인 최미양 교수가 번역한 것은 <아직도 가야 할 길> 25주년 기념판은 율리시즈에서 2011년에 출판해서 지금까지도 쭉 판매되고 있는 책이다. 내 책꽂이에는 정신과 의사와 대학교수가 번역한 두 권의 책이 나란히 꽂혀있다.
내가 스콧 팩 박사님을 책으로 만난 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공부하고 나서 독서치료에 관심을 가졌던 시기였다. 그때 당시 심리학을 바탕으로 한 독서그룹이든 성장을 목표로 하고 있는 독서그룹이라면 반드시 필독서로 읽었던 책이 바로 "아직도 가야 할 길"이었는데 이 책은 대전에 있는 신성회를 통해서 나에게로 왔다. 책을 읽고 나서 나는 내가 만난 스콧 팩 박사님을 다른 사람도 만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내가 속해있던 다양한 독서모임에 소개하고 다 같이 억지로 읽어나가기를 종용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 책은 그저 물 흐르듯 쉽게 읽히는 책이 아니었으므로 다 함께 읽는 동안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겠다는 사람, 머리에 쥐가 날 것 같다는 사람, 계속 읽어나가기엔 마음이 찔려서 독서그룹에서 탈퇴하던 사람까지 등장하고 말았다. 항간에 미국인들이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은 책이라고 소문이 났던 스콧 펙의 <아직도 가야 할 길>은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소장하고 있었지만 이 책을 끝까지 읽은 사람은 몇 안 된다는 소문 또한 이 책을 읽다만 내 주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번져나가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도 가야 할 길을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또 같이 읽어나갔다. 싹이 나든지 안 나든지 그것은 나의 권한이 아니었기에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만난 바울의 전도 행진처럼 열심을 냈던 것 같다. 아들이 인턴을 마치고 레지던트 과정에 들어서면서 전공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왔을 때 정신과를 선택했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낼 정도였으니 (아들은 정신과도 좋을 것 같다고 했지만 결국은 내과를 선택하고 말았지만) 스콧 펙 박사님에 대한 나의 무한 신뢰는 정말이지 대단했던 것 같다.
M. 스콧 펙 박사님은 작가이자 사상가이자 정신과 의사다. 또 베스트셀러 작가, 강연가, 영적 안내자로 진화해 나갔으며 1978년, 마흔두 살에 쓴 <아직도 가야 할 길>은 심리학과 영성을 매우 성공적으로 결합시킨 중요한 책으로 평가되면서 <뉴욕타임스>의 최장기 베스트셀러 목록을 차지할 정도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불교도로서 이 책을 집필한 후, 저자는 공개적으로 크리스천으로 개종을 선언하고 인간 심리와 기독교 신앙의 통합을 지향하는 글쓰기에 매진했다. 스콧 펙은 일생 동안 '자기 훈육'의 필요성을 강조했고 그 때문에 진정한 자기 계발서 장르를 구축한 저자라고 평가받다가 2005년 6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나는 지금까지 <아직도 가야 할 길>을 일곱 번 정도 읽었다. 앞으로도 살아가는 날 동안 또 몇 번을 더 읽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면 적어도 매해 한 번씩은 읽지 않을까...... 이렇게 내가 여러 번 이 책을 읽고 싶은 이유는 내 삶의 현장에서 길을 안내해 주는 내비게이션 같은 책이 바로 <아직도 가야 할 길>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 책은 모두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어느 한 부분도 결코 가벼운 내용들이 아니다.
저자는 1부 훈육에서 "삶은 고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진리인데 이러한 진리를 진정으로 받아들이게 되면 삶은 더 이상 힘들지 않다고 말한다. 나아가 삶은 문제의 연속이기 때문에 훈육이 필요한데 훈육이라는 도구는 즐거운 일을 뒤로 미루는 것, 의무를 받아들이는 것, 진실에 충실하는 것, 균형감각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특히 1부에서는 자녀 양육에 관련된 내용들이 많이 나오는데 부모가 물려줄 수 있는 가장 값진 선물은 진실한 사랑이며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이렇게 부모에게 충분한 사랑을 받은 자녀들이야말로 자신을 소중하게 느끼는 감정이 어린 시절에 획득되고 이러한 감정은 정신건강에 필수적이며 자기 훈련을 위한 초석이 된다고 한다.
또 우리 자녀들이 살아가는 동안 책임져야 할 것과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을 분간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기 위해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지도를 계속해서 고쳐나가는 작업을 해야 한다고 한다. 이러한 지도 수정의 과정은 객관적 현실과 심리적 현실 사이의 괴리감을 없애주는 과정으로 건강한 정신을 소유하게 하는 것이다. 나아가 자기가 가진 현실에 대한 지도가 정말 유효한지 확인하기 위해선 타인에게 자기 지도를 펼쳐 보이는 과정이 필요하며 이러한 모든 훈육 또한 유연한 대응 방식으로 융통성 있게 균형을 이루어야 나가야 한다고 한다.
자녀를 양육하고 있는 부모들과 예비 부모들이 반드시 읽으면 좋을 1부 훈육 부분은 내가 주변의 지인들과 가장 오랜 시간을 들여 꼼꼼히 읽고 서로 생각을 나누고 또 공유했던 부분이다. 스콧 펙이 책에서 말하는 대로 자녀를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양육하기 위해선 엄격한 훈육, 훈련, 사랑을 통해 특별한 능력을 갖추게 해야 한다. 이러한 능력을 갖춘 자녀들에게 세상은 봉사를 절실히 요구할 것이고 충분히 훈육을 실천하는 자는 사도가 되어 영적으로는 더욱 높은 수준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2부 사랑을 다룬 부분은 내가 아내로서 부모로서 상담자로서 건강한 사랑을 베푼다는 것의 의미를 깨닫게 해 주었다. 2부에서 사랑에 빠지는 것과 진정한 사랑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 스콧 펙은 어린 시절 부모에게 충족되지 않은 사랑으로 인해 결혼 후에 의존적이고 애착이 심한 여러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진정한 사랑은 진심으로 들을 줄 알고 독립이며 자아 확장을 포함한다고 했다.
또 사랑은 단순히 거저 주는 것이 아니고 분별 있게 주며 분별 있게 주지 않는 것, 분별 있게 칭찬하고 분별 있게 비판하는 것,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과 더불어 분별 있게 논쟁하고, 싸우고, 맞서고, 몰아 대고, 밀고 당기는 것이다고 했다. 의지로 하는 사랑이 아닌 사랑에 빠지는 감정 때문에 이 땅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얼마나 많이 괴로워하며 몸을 축내는지를 생각하면 진정한 사랑에 대해서 깊이 통찰할 필요가 있음을 절실히 느껴본다.
3부 성장과 종교 관한 글을 통해서 나는 편협한 종교의 우물에 갇혀있던 종교관을 재정립할 수 있었다. 스콧 펙은 3부에서 지적으로 아는 게 많고 회의적인 사람들이 신앙의 방향으로 성장하게 된다며, 맹목적인 신앙을 가진 내담자가 신앙을 회의하고 그것을 박차고 일어났을 때 건강해진 사례와 지적으로 종교에 대한 회의를 가졌던 내담자가 종교 안에서 사명을 발견하고 건강해진 사례를 설명하고 있다. 나는 영적 성장은 미신에서 나와 불가지론으로 불가지론에서 나와 하느님에 대한 정확한 지식으로 인도한다는 말에 늘 고개를 끄덕이며 읽고 있다.
4부 은총을 다룬 부분에서 저자는 이 세상에는 어떤 미지의 힘이 있어 최악의 상황에까지도 육체적 건강을 지켜주고 더욱 건강해지도록 북돋우어준다고 말한다. 이러한 현상을 은총이라고 정의했는데 은총은 누구에게나 차별 없이 주어지지만 우리 대부분은 게으름(엔트로피의 힘) 때문에 은총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 자신과 의식적 의지를 넘어 성장과 진보를 돕는 강력한 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기만 하면 은총을 경험할 수 있다고 했다. 물론 우리가 은총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은총이 우리에게 오는 것일 테지만 말이다. 이 부분은 정신과 의사였던 스콧 펙이 겸손한 영혼의 치료자로서 우리에게 보다 더 큰 희망을 제시해 주는 부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책을 처음 읽고 났을 때 스콧 팩은 어떻게 이런 책을 마흔두 살에 쓸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을 때마다 이 질문은 마흔두 살 때의 나를 떠올려 보면서 항상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질문이다. 때때로 나에게 "도대체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겁니까"라며 힘든 마음을 가지고 의논하러 오는 사람들이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떤 묘책이 떠오르지 않아 '글쎄.... 정말 답이 없는 문제인 것 같다.'라는 말을 하기 전에 나는 아직도 가야 할 길의 내용들을 머릿속에 떠올려 본다. 그럴 때마다 문제의 핵심에 도달할 수 있었고 영혼을 치유해주는 <아직도 가야 할 길>의 문장들은 그들에게로 가서 살아있는 상담자가 되어 주었다.
자녀를 심리적으로 건강하게 키우고 싶은 부모라면, 현장에서 상담을 하고 있는 상담자라면, 진정한 사랑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더 나은 영적인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새롭고 심오한 통찰력을 보여주는 < 아직도 가야 할 길>에서 도움을 받고 삶의 지표로 삼을 무엇인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