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수원, 용인, 양양, 전주, 진주, 부산, 그리고 양산. 우리는 대한민국 지도 위에 임의로 흩뿌려진 일곱 개의 서로 다른 지역의 농도 속에 존재한다. 분주한 도시의 중심에서 느껴지는 팽팽한 긴장감, 조용한 바닷가에서 철 지난 해무(海霧)와 함께 흘러가는 시간의 유속(流速), 천 년의 역사가 깃든 한옥 마을의 돌담길에 새겨진 시간의 지문(指紋), 혹은 새롭게 솟아난 아파트 숲 사이로 흐르는 무표정한 삶의 물결까지.
지리적 좌표의 다름은 삶의 질감과 문체의 다름을 의미한다. 일상의 풍경과 소음은 상이하지만, 우리가 공유하는 가장 근원적인 제목은 오직 하나이다. 바로, 이 땅에 발 딛고 서서 흐르는 우리의 '삶'이다. 우리는 각자가 있는 자리에서 주변을 관찰하기로 했다. 『내가 사는 동네 이야기』는 단순한 지리적 나열이나 여행담이 아니다. 각자가 가장 나다운 시간을 소진하고 채워 넣는 사적인 우주이자, 수많은 사람의 공적 교차로인 ‘동네’에 관한 기록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우리는 글 쓰는 내내 서로가 사는 동네를 방문하지 못했다. 수원과 진주, 용인과 부산 사이에 놓인 수백 킬로미터의 물리적 거리는 일곱 작가를 각자의 사적인 우주에 머물게 했다. 그러니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발 딛고 선 이 땅의 냄새와 소리가 나만의 것이듯, 다른 작가의 익숙함은 어떤 질감일까? 타인의 동네를 향한 숭고한 호기심이야말로 글을 시작하게 된 가장 깊은 동력이 되었다.
동네는 익숙하면서도 삶의 근원적인 기록이 축적되는 장소이자, 익명의 사람들이 수없이 반복한 발걸음과 시선이 직조해낸 세계다. 낡은 벽돌 틈, 슈퍼마켓의 빛바랜 간판, 세련된 편의점 로고, 매일 같은 높이로 떨어지는 그림자 속에는, 쉽게 계량할 수 없는 삶의 본질적인 흔적이 고스란히 새겨 있다. 너무나 익숙해서 그동안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지 못했을 뿐, 동네는 효율이라는 잣대가 닿지 않는 곳이자 세상의 속도에 지친 나를 오롯이 받아주는 가장 넉넉한 품이다.
익숙함이라는 배경 속에 숨겨진 동네 이야기를 통해 존재 의미를 발견하게 되길 바라지만, 너무 익숙해서 수다같은 이야기가 꼬리를 물고 이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오신나 에세이스트들은 자신이 사는 동네의 온기와 색채를 각자의 언어로 기록하기로 했다. 갓 내린 커피 향을 맡으며 느끼는 도시의 미묘한 진동, 모래사장에 새겨진 파도의 반복적인 흔적, 오래된 기와지붕에서 느껴지는 흙과 나무의 묵직한 무게 등등.
우리가 각자 발 딛고 선 동네의 이야기가, 진실한 삶의 지문이 되면 좋겠다. 매일 뜨고 지는 태양 아래, 반복되는 일상의 리듬 속에, 비로소 발견되는 반짝이는 순간을 오롯이 담았으면 좋겠다. 일곱 개의 시선이 독자 여러분의 내면을 향한 투명한 창이 되길 바라며, 낯익은 듯 낯선 동네 이야기로 이제 산책을 떠나본다. (13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