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남문

12. 전주 이야기

by 김경희

파수꾼처럼 우뚝 솟아오른 풍남문은 남부시장의 대문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예전에 풍남문이 위치한 자리는 지리적으로는 남쪽 산자락과 전주천 사이, 도시의 중심부와 농경지 사이, 그리고 상업지로 이어지는 요충지에 자리하고 있었다. 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풍남문을 지나면, 전주천의 맑은 물과 함께 형성된 평지가 나온다. 풍남문의 정방향으로는 전라감영과 객사의 건물이 한 줄로 이어져 시각적이면서도 공간적인 통일감을 준다.


풍남문은 단단한 돌 위에 기와를 쌓아 올려졌다. 곡선미를 살린 기와지붕은 전주의 오래된 상징이었다. 지나온 세월 동안 전쟁과 화재를 겪으며 몇 차례 크게 손상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수리와 복원이 이어져 지금은 옛 모습을 되찾아 견고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풍남문 주변은 푸른 잔디와 단정하게 정비된 보행로가 있어서 문화재로서의 품격을 더하고 있다.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시간을 건너온 수호자처럼 보인다.


내가 어렸을 때의 풍남문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잔디도, 넓은 광장도 없었고, 문 하나가 홀로 우뚝 서 있었을 뿐이었다. 풍남문 앞과 뒤, 옆으로는 시장 상인들이 삥 둘러 좌판을 벌이고 앉아 과일과 채소, 온갖 생활용품을 파는 삶의 터전이었다. 사람들의 목소리, 손짓, 흥정의 숨결이 풍남문 주위에 빽빽하게 모여 있었다. 이런 풍경 속에서 풍남문을 늘 시장의 일부처럼 바라보곤 했다. 지금의 풍남문이 고귀한 문화재라면, 어린 시절의 풍남문은 사람들의 하루의 삶이 오가는 통로였다.


친정엄마는 나를 자주 남부시장에 데리고 갔다. 혼자 짐을 들고 오기 힘들어서였는지, 아니면 물건 사는 걸 좋아해서 이것저것 만지작거리던 내 성미를 알고 그랬던 것인지는 모르겠다. 엄마를 따라 풍남문 앞 채소전과 과일가게에서 식구들이 먹을 야채와 과일을 사고, 다시 시장 안쪽에 있는 생선 가게로 들어가면 언제나 사람이 북적였다. 지금의 한가한 남부시장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추석을 코앞에 둔 어느 날, 엄마는 언니와 동생들의 추석빔은 사다 놓았는데 내 옷만 빠져 있었다. 우리 자매는 3년씩 터울이 있는데, 하필이면 그날은 내가 입을 사이즈의 원피스가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어린 나는 그 이유를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다. 그저 내 옷만 사지 않은 사실이 억울해서 씩씩거렸다.

“내 옷도 오늘 사야 해. 지금! 당장!”


나는 엄마의 손을 잡아당기며 떼를 썼고, 엄마는 한참을 달래며 내일 남부시장에 가자고 했다. 엄마의 간곡한 설득에도 나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하루를 기다리는 일조차 큰 고통처럼 느껴지는 나이였으니까. 성화에 지친 엄마는 깊은 한숨을 쉬더니, 양 볼이 눈물로 뒤범벅이 된 내 손을 붙잡고 남부시장으로 향했다. 풍남문 너머로 해가 어둑하게 내려앉고 있었고, 시장 골목마다 가게 문이 하나 둘 닫히고 있었다.


급히 초조한 발걸음을 옮기던 엄마와는 다르게 나는 그저 신이 나서 엄마 옆을 폴짝폴짝 뛰며 따라갔다. 언니 옷을 산 가게에 도착했을 때, 주인아줌마는 문 닫을 준비를 하며 옷 정리를 하고 있었다. 엄마는 불쑥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혹시 이 아이 입을 원피스 하나 남아 있나요?”

엄마의 물음에 아줌마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까 원피스를 세 벌이나 사 가셨잖아요. 또 필요하세요?”


의아해하면서도 아줌마는 정리한 옷더미를 뒤적이더니 원피스 한 벌을 꺼내주었다. 엄마는 옷을 내 몸에 대보자마자 값을 지불했고, 나는 원피스가 들어 있는 비닐봉지를 꼭 끌어안았다. 가게 밖으로 나오자 엄마는 숨을 고를 겨를 없이 말했다.

“빨리 가자, 어서!”

나는 뒤뚱거리며 엄마를 따라 뛰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가 그날 내 원피스를 사 오지 않은 데는 아마 숨기고 싶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어린 나는 몰랐지만 지갑을 여는 순간 잠시 머뭇거렸을 손끝이 있었을 테고, 언니와 동생들 것부터 먼저 사야 했던 엄마만의 사정도 있었을 것이다. 그때의 엄마 마음이 뒤늦은 지금에야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어쩌면 엄마는 그날, 망설이며 풍남문을 몇 번이나 돌았을지도 모른다. 옷을 네 벌이나 한꺼번에 사기엔 부담이 되어서 그랬던지, 딸이 넷이나 된다는 사실이 마냥 부끄러웠던지, 내 추석빔만큼은 더 좋은 것을 사주고 싶어서 일부러 다른 가게를 알아보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엄마의 그때 마음을 어린 나는 알 리 없었다. 그저 왜 내 옷만 없냐며 떼를 쓰던 어린아이였으니까.


목 아래로 스탠 카라가 귀엽게 달려 있고, 가슴 쪽에 레이스가 둥그렇게 달린 빨간 원피스를 사던 그날 저녁, 엄마는 어둑해진 남부시장의 골목을 빠져나오느라 성큼성큼 앞서 걸었다. 나는 엄마의 걷는 속도를 맞추느라 작은 다리로 허덕이며 달리다시피 따라갔다. 문이 반쯤 닫힌 가게들을 지나 풍남문 앞에 다다랐을 때, 엄마는 비로소 걸음을 멈추고 풍남문에 기대어 나를 안았다.


그때는 단순한 휴식쯤으로 여겼지만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서야 풍남문 앞에서 나를 안던 엄마의 마음이 전해온다.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하던 엄마의 사랑이 조용히 가슴속으로 파고든다. 지금도 풍남문 앞을 지날 때마다 빨간 원피스를 사 들고 좋아서 깡충깡충 뛰어가던 어린 내 모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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