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일기로 쓰는 에세이
자동차 계기판의 디지털시계가 10:40이라는 숫자를 선명하게 그려내고 있었다. 특강을 앞둔 남편의 마음은 이미 강의실 단상 위에 가 있는 듯 초조해 보였다. 이른 점심을 먹고 출발해야 해서 서둘렀다. 집 근처 단골 두붓집에서 빨리 나오는 청국장을 먹고 길을 나서기로 했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아끼기 위해 선택한 길은 논 사이로 난 좁다란 일방통행로였다.
진즉 수확이 끝난 들판은 고즈넉했다. 여느 때라면 공룡 알처럼 군데군데 놓인 하얀 곤포 사일리지를 보며 겨울 논의 운치를 예찬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풍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좁은 길 위로 긴장감이 감돌았다. 아니나 다를까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좁은 길 위에서 흰색 차와 검은색 차가 서로의 콧대를 맞댄 채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었다.
흰색 차 문이 거칠게 열리더니 운전자가 내렸다. 검은색 차 운전석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삿대질을 쏟아냈다. 창문을 열지 않아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씰룩거리는 입 모양과 격앙된 몸짓을 통해 뿜어져 나오는 분노가 우리 차 유리창까지 전해졌다. 상대 차는 묵묵부답이었다. 아마도 ‘그쪽이 잘못 들어온 것 아니냐’는 호통과 ‘몰랐으니 좀 비켜달라’는 항변이 부딪히고 있었으리라.
시간은 무정하게 흘러갔다. 타협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마음이 급한 남편이 먼저 핸들을 꺾었다. 뒷걸음질 치는 황소처럼 후진으로 좁은 길을 빠져나왔다. 사이드미러를 통해서 보니 한 블록 돌아 큰길로 나가는 순간까지도 두 대의 차는 요지부동이었다. 마음 같아선 싸움의 결말이 어찌 될지, 누가 먼저 꼬리를 내릴지 끝까지 지켜보고 싶었다. 일정 탓에 우리는 청국장 대신 길가 식당에서 장어탕을 허겁지겁 먹고 강의장으로 향했다.
달리는 차 안에서 자꾸만 아까 장면이 잔상처럼 떠올랐다. 법과 규칙대로라면 당연히 역주행한 차가 물러나야 한다. 하지만 거리의 효율로 따지자면 5분의 4 지점까지 역주행한 차를 위해 이제 막 진입한 정주행 차가 양보하는 게 빠르다. 이런 생각을 하고 나니 요지부동이었던 정주행 운전자의 마음씀이 ‘밴댕이 소갈머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밴댕이는 그물에 걸려 뭍으로 올라오면 제 분을 못 이겨 파르르 떨다 죽어버린다고 한다. 몸집에 비해 내장이 턱없이 작은 탓에 ‘속 좁은 사람’의 대명사가 된 이 물고기 이름이 정주행 한 운전자에게 덧씌워졌다. 이 밴댕이가 바로 50대 초반의 내 모습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 시절의 나는 옳고 그름의 잣대가 칼날처럼 날카로운 사람이었다. 퇴근길초등학교 앞 일방통행로에서 마주친 검은색 세단과의 기억이 생생하다. 바닥의 일방통행 표시가 희미해졌더라도 규칙은 규칙이었다. 나는 브레이크를 밟고 든든한 성벽처럼 버텼다. 상대는 위협하듯 경적을 울려댔고, 급기야 건장한 남자가 차에서 내려 내 차 유리창을 두꺼비 같은 손으로 쾅쾅 두드렸다.
남자의 노크에 겁이 덜컥 나서 창문을 겨우 5센티미터만 내렸다. 다 내렸다가는 목덜미라도 잡힐 것 같았다. 하지만 나의 정의감은 서슬 퍼런 칼날 같았다.
“이보세요, 여기 일방통행이에요! 그쪽이 비켜야죠!”
상대는 펄펄 뛰면서 뭐 이런 여자가 있느냐며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나는 창문을 올리고 ‘네가 잘못했으니 절대 못 비킨다’는 오기로 버텼다. 결국, 경찰이 출동해 상대 차를 후진시키고서야 상황은 종료됐다. 귀가해서 승전보를 올리듯 씩씩거리며 무용담(?)을 늘어놓았을 때 아들의 반응은 의외였다.
“엄마, 그러다 큰일 나면 어쩌려고 그래요. 요즘 세상이 얼마나 험한데... 앞으론 옳고 그름 따지지 말고 그냥 양보해요. 그게 상책이에요.”
내 맘 몰라준 것 같아 그때는 서운했던 아들의 말이 시간이 흐른 지금에야 비로소 삶의 지혜로 다가온다.
규칙을 지키는 것은 사회를 지탱하는 기본이지만, 규칙이 누군가를 굴복시키기 위한 무기가 될 때 세상은 숨 막히는 전쟁터가 된다. 밴댕이 소갈머리처럼 한 치의 틈도 허용하지 않는 마음으로 산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팍팍하기만 할 것이다. 우리의 삶은 수학 공식처럼 딱딱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때로는 잘못 들어온 차를 위해 기꺼이 후진해 주는 넉넉함이 법전보다 더 부드럽게 세상을 움직일 수 있다.
젊은 날의 나는 참으로 서슬 퍼런 칼날 같았다. 모든 일에 명확한 시시비비가 있어야 했고, 타인의 작은 실수나 어긋남을 마주할 때면 밴댕이처럼 파르르 떨었다. 내 기준이라는 좁은 울타리를 세워두고 울타리를 넘나드는 모든 것에 날 세우며 주변을 피곤하게 만들었다.
세월이라는 파도가 모난 모서리를 깎아낸 덕분일까. 이제는 텅 빈 겨울 논의 여유로움과 넉넉함의 미학을 조금은 알 것 같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마음 한구석엔 좁고 옹졸한 모습이 남아 있지만 말이다. 나의 바람은 나이 들어갈수록 마음의 그릇이 조금씩 더 커지는 것이다.
새해를 맞이할 올해의 마지막 날이다. 한 해를 뒤돌아보니 무탈했던 평범한 일상에 감사하다. 내년에는 지금보다 주변의 실수에 눈감아 줄 수 있는 무던한 마음과 완벽하지 않은 것들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여유가 내 삶에 조금 더 깃들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