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일기로 쓰는 에세이
내 손은 아버지의 고운 손을 그대로 닮았다. 손가락 마디가 어긋남 없이 길쭉길쭉하게 뻗어 있다. 이런 손을 보며 시어머님은 예쁘다고 칭찬하곤 하셨다. 사실 그동안 부엌일을 소홀히 한 것도 아니건만, 워낙 손결이 고운 탓에 그이는 자기 공인 양 우쭐대곤 한다. 좋은 남편 만나 고생 안 시키니 지금까지 손이 고운 것이라며. 그가 장난스럽게 너스레를 떨 때마다 나는 눈을 흘기며 응수한다. 어쩌자고 아버지가 물려주신 귀한 유산을 가로채느냐며. 남편도 인정하듯 아버지의 손을 닮은 내 손은 반짝이는 보석을 끼었을 때 더욱 기품 있어 보인다.
내가 가지고 있는 보석함은 저마다의 사연을 품은 원석들로 가득하다. 뚜껑을 열면 각기 다른 빛깔이 아우성치는 것 같다. 남편이 사랑의 서약으로 건넨 다이아몬드 반지는 영원을 약속하듯 반짝이고, 초록 비취 알이 납작하게 박힌 반지는 푸른 숲처럼 깊은 멋을 풍긴다. 친구들과 우정의 증표로 맞춘 순금 가락지는 황금빛 화려함을 자랑하고, 아이들이 생일에 마음을 담아 선물해 준 사파이어 반지는 가을 하늘보다 깊은 청보라 빛으로 번쩍인다. 그뿐인가. 여행지의 파도 소리가 들리는 듯한 붉은 산호 반지, 우유를 한 방울 떨어뜨린 듯한 진주 반지, 그리고 돌아가신 친정엄마의 체취가 묻어있는 보랏빛 자수정 반지까지.
보석을 좋아하지 않는 여자가 어디 있겠냐마는, 나는 특히 원석들이 내뿜는 다채로운 색채에서 활기를 느낀다. 보석은 단순히 사치스러운 장식품이 아니라 내 삶의 굽이굽이마다 기록된 기억의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화려한 목록 중에서도 유독 내 마음이 머무는 반지는 따로 있다. 최근에 새로 세팅한 맑은 수정 반지다.
수정은 본래 반지가 아니었다. 내가 성인이 되던 스무 살의 어느 날, 아버지는 딸이 어른 된 것을 축하하며 보석을 선물하셨다. 그때 내게 온 것이 바로 수정 목걸이였다. 하지만 스무 살의 나는 커다란 알이 달랑거리는 목걸이가 부담스러웠다. ‘아빠, 왜 하필 수정이에요?’라고 묻지는 않았지만 목걸이는 오랜 세월 동안 보석함 속에서 잠들어 있었다.
마흔이 넘어서야 나는 비로소 아버지가 주신 목걸이를 목에 걸었다. 그제야 수정이 매달린 목걸이가 부담스럽지 않았다. 하지만 일자목의 불편함 때문에 알 큰 목걸이를 자주 걸 수 없었다. 목걸이는 다시 보석 상자 속에서 잠들었다. 작년 가을, 문득 아버지가 주신 맑은 수정을 곁에 두고 싶다는 생각이 차올랐다. 보석함 속에 화려한 반지들을 뒤로하고 왜 그토록 수정에 마음이 머물렀는지 모르겠다.
곧바로 단골 금방을 찾아가 목걸이 펜던트를 반지로 만들어줄 수 있겠느냐 물었다. 사장님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심드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요즘은 다 기계로 찍어내는 틀이라, 이 알에 딱 맞는 틀을 찾기가 쉽지 않겠네요."
금방 사장님의 회의적인 반응에도 나는 고집을 피웠다. 며칠 후에 기적처럼 꼭 맞는 틀을 찾았다는 연락이 왔고. 열흘 뒤 약지 손가락에 끼워진 수정 반지는 경이로웠다. 5캐럿은 족히 넘어 보이는 백수정은 금방의 화려한 조명 아래서 컷팅 면을 따라 다이아몬드처럼 눈부신 광채를 뿜어냈다. 사장님조차 수정이 이렇게 예쁠 줄 몰랐다며 감탄했다.
그날 이후 내 손가락 위에서 빛나는 수정 반지는 아버지가 나에게 건네는 무언의 대화가 되었다. 아버지는 생전 책임감 강하고 마음이 넓은 분이셨다. 남을 돌보는 일에 앞장서셨고, 당신의 몫보다 타인의 안녕을 먼저 살피는 이타적인 삶을 사셨다. 투명한 수정은 그런 아버지의 성품을 꼭 닮았다.
세상을 살다 보면 마음이 탁해지는 순간이 있다. 나 자신만 생각하고 싶어 이기심이 고개를 들 때, 타인을 돌보는 일이 버겁다고 느껴질 때, 나는 가만히 아빠가 주신 수정 반지를 낀다. 그때 반지는 나에게 묻는다. ‘너의 마음은 지금 수정처럼 맑으냐’라고.
수정은 빛을 독점하지 않는다. 자신을 통과하는 빛을 온전히 받아들여 더 아름답게 분산시켜 주변을 밝힌다. 아버지의 삶도 그러했다. 당신의 고통이나 수고를 투명하게 갈고닦아 주변 사람들에게 따스한 그늘과 빛이 되어주셨다. 수정 반지의 촉감이 손가락에 닿을 때마다 나는 이기적인 욕심을 씻어내고 타인을 향해 마음의 문을 연다. 아버지가 주신 맑은 결정체는 내 안의 탁한 감정을 걸러준다. 나를 돌아보게 하는 영혼의 거울인 셈이다. 아버지가 왜 스무 살의 딸에게 수정을 주셨는지 이제야 깨닫는다. 세상의 어떤 유혹과 풍파 속에서도 본연의 맑음을 잃지 말고, 맑은 수정처럼 세상을 이롭게 하라는 아버지만의 철학적 가르침이었음을.
오늘도 나는 수정 반지를 낀다. 아버지를 닮은 길쭉한 손가락 위에서 반짝이는 반지를 보며 되뇌어 본다. 나도 아버지처럼 마음의 욕심을 투명하게 비워내고 그 자리에 타인의 고단함을 앉힐 줄 아는 넉넉한 삶을 살겠노라고. 아버지의 투명한 진심을 이제야 깨달은 무심함이 못내 죄송스럽다. 하지만 이런 아버지가 내 아버지여서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