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일기로 쓰는 에세이
지난 주말, 덕산 온천에 다녀왔다. 탕에 들어갈 준비를 마치고 온천탕 문을 열었다. 뽀얀 수증기가 온몸을 훅 덮치자 은은한 유황 냄새가 났다. 가볍게 샤워하고 대온탕을 향해 조심조심 발을 옮기는데 벽에 설치된 굵은 쇠 호스에서 물이 콸콸 쏟아졌다. 서너 걸음 더 걸으니 탕 가장자리를 넘어 바닥으로 온천수가 찰랑거리며 리듬감 있게 흘러넘쳤다. 탕 안에 가득 고인 물소리만으로도 청량감이 느껴졌다.
천천히 대온탕 안으로 오른발을 넣었다. 발끝에 닿는 첫 느낌은 맹물처럼 가볍게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치 비단실을 풀어놓은 듯 다리를 감싸며 매끄러웠다. 탕 안으로 온몸을 들여 넣자 눈앞에 펼쳐진 수면이 갓 세공한 유리판처럼 매끄럽게 펼쳐졌다.
물이 맑고 투명해서 바닥의 타일 무늬가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들여다보였고, 물 표면 위로 물안개가 피어올라 선녀가 된 듯한 착각이 일었다. 탕 안의 사람들이 움직일 때마다 물결이 일렁이면 정지해 있던 유리판은 순식간에 수만 개의 조각으로 흩어졌다.
탕 속에서 손가락을 펴고 휘저어보니 손등 위로 미끈거리는 질감이 느껴졌다. 비누를 칠하지 않았음에도 마치 오일을 엷게 바른 듯 매끄러운 감촉이 손끝에 전해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뜨끈한 열기가 모공을 열고 미네랄을 꾹꾹 채워 넣는 듯한 기분 좋은 압박감이 느껴졌다. 몸이 서서히 경계를 허물고 온천 수의 일부가 되는 것 같았다.
뜨끈한 물에 몸을 한참 담그고 있으니 숨이 차올랐다. 열기를 식히느라 냉탕과 온탕을 오가며 온천욕의 묘미를 즐기다 보니 기분 좋은 나른함이 찾아왔다. 샤워기 앞으로 나와 온천수의 미끈거림이 가실 때까지 정성스레 머리를 헹구고 거울을 보았다.
그때 문득 낯선 풍경 하나를 마주했다. 염색하지 않아 하얗게 세어 있던 머리칼이 평소보다 훨씬 검고 짙어 보였다. 마치 온천수가 마법이라도 부린 듯 진한 회색빛이 머리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파우더룸으로 나와 젖은 몸을 닦고 거울을 볼 때까지도 머리의 검은빛은 여전했다. 그러나 드라이어의 바람에 물기가 날아가자 머리칼은 야속하게도 다시 본래의 하얀빛으로 되돌아왔다.
온천수가 머리 색을 바꾼 것이 아니었다. 물에 흠뻑 젖어 차분히 가라앉은 흰 머리카락 사이로 그동안 존재조차 잊고 지냈던 검은 머리카락이 또렷하게 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겉을 덮고 있던 성성한 백발이 물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투명해지자, 그 속에 숨어 있던 검은 머리카락의 색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 셈이다.
잠시 후 남탕에서 나온 남편이 흥분된 목소리로 나와 비슷한 경험을 털어놓았다. 물에 흠뻑 젖으니 머리칼이 진한 회색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아이처럼 신기해하는 그이의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온천수의 효능으로 개운해진 덕분이었을까, 아니면 뜻밖의 머리 색 변화가 준 마법 같은 기분 탓이었을까. 몸은 날아갈 듯 가벼웠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은 활기와 즐거움으로 가득 차올랐다.
집에 거의 도착할 즈음 남편이 갑자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온천수 때문인 것이 분명해. 앞으로 몇 번 더 온천욕을 하면 머리가 정말 검어질지도 몰라.”
그의 말투가 어찌나 진지한지 다시 한번 웃음이 났다. 불로초를 구하려 애썼던 진시황의 마음이 이토록 간절했을까. 비록 온천수가 흐르는 세월을 되돌려주지는 못할지라도, 나와 함께 조금이라도 더 천천히 나이 들고 싶어 하는 남편의 진심만큼은 세상 어떤 보약보다 귀하게 느껴졌다.
이러한 발견은 비단 온천탕 안에서만 일어난 것은 아니다. 보령에서의 ‘반년 살이’도 어느덧 여섯 달이 다 되어 가고 있다. 이제 전주로 돌아갈 날이 고작 열흘 남짓 남았다. 오늘 어깨 통증으로 찾은 정형외과에서 의사는 내 진료 기록을 보더니 의아한 듯 물었다.
“어머니, 전주 사시는데 여긴 무슨 일로 오셨어요? 한 달 살이 같은 거 하러 오셨어요?”
“아니요, 6개월 살이 하러 왔어요.”
“보령에 뭐가 볼 게 있다고 6개월씩이나 계세요? 전주가 훨씬 살기 좋잖아요.”
의사의 말대로 보령은 누군가에게는 잠시 스쳐 지나가는 관광지이거나 특별할 것 없는 소박한 도시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나 역시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좁은 부엌과 작은 냉장고, 낯선 거리의 풍경에 불편함을 느꼈다. 하지만 타향살이라는 특수한 환경 속에 나를 온전히 던져 넣자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이방인의 삶은 거추장스러운 옷차림을 벗어던지게 해 주었다. 아는 사람이 없으니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졌고 오롯이 남편과 나 자신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으로 채워졌다. 환경이 바뀌니 메일이 여행 같았고 최소한의 물건으로 살아가는 불편함은 가사 노동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다. 비워진 살림만큼 가벼워진 일상은 글을 쓰고 산책하는 시간으로 차올랐다.
보령에 와서 성주산의 신록이 겨울의 눈꽃으로 변하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여름철엔 날마다 대천해수욕장의 밤바다를 맨발로 거닐며 파도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가을에는 성주사지의 빈터를 거닐며 삼국시대부터 켜켜이 쌓아 올린 시간의 흔적을 읽어내기도 했다. 어느덧 보령은 내게 단순한 지명이 아니라 뉴스에서 이름만 들어도 귀가 먼저 반응하는 도시가 되었다.
온천물에 흠뻑 젖어야 숨어 있던 검은 머리카락이 보이듯, 삶도 어딘가에 푹 젖어들고 나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충청도 특유의 느릿하면서도 무뚝뚝한 말투 속에 담긴 순박함, 투박하면서도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이웃들의 넉넉함, 무심한 것 같으면서도 부탁은 다 들어주는 주인아저씨의 무뚝뚝한 정.
보령이라는 도시에 6개월간 흠뻑 적셔진 뒤에야 이 도시의 진짜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유목민처럼 이곳저곳 떠돌며 사는 삶이란 어쩌면 세상을 조금 더 투명하게 바라보는 법을 배우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한 곳에 너무 오래 고여 있으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낯선 곳에 적심으로써 발견하게 되니까 말이다.
집으로 돌아갈 날을 앞두고 짐을 정리하며 감사한 것들을 떠올린다. 수많은 감사 속에 무엇보다 보령에 흠뻑 젖을 수 있어서 감사하다. 일상에, 사람에, 혹은 자기 자신에게 진심으로 젖어본 사람만이 겉모습 너머의 본질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내 고향 전주로 돌아가서도 '젖어 있음'의 감각을 잊지 않을 것이다. 흠뻑 젖어야만 보이는 것들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