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일기로 쓰는 에세이
함께 울고 웃으며 긴 세월을 공유해 온 사람이 있다. 내 삶의 풍경 곳곳에 스며들어 마치 공기처럼 당연하게 곁을 지켜주던 사람. 그런 그녀가 이름조차 서늘한 ‘급성 모구성 백혈병’이라는 불청객을 맞이했다. 이놈의 몹쓸 병은 사람을 한순간에 속절없이 무너뜨렸다. 평온했던 일상을 송두리째 앗아갔고, 스스럼없이 나누던 소소한 농담과 따뜻한 밥 한 끼는 사무치게 간절한 기다림의 영역으로 밀려났다.
항암제를 투여하며 몸 가눌 여력조차 없는 그녀를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애끓는 마음으로 그녀와 연결된 카톡 창에 기도문을 올리는 일 외에는. 그녀가 병실에 누워있을 때 시간은 굼벵이가 되어 기어갔다. 느리게 지나가는 시간을 채찍질하며 입에서 새어 나오는 한숨을 받아내던 어느 날, 마침내 그녀가 무균실을 벗어나 격리 병실로 옮겨졌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회복의 시간이 흐른 후 가까스로 화상 면회가 허락되었다. 화면 너머로 마주한 그녀의 모습은 낯설고도 아팠다. 파르라니 깎은 머리와 핏기 없는 안색, 힘없는 목소리까지. 아픈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함께 웃고 떠들던 수많은 세월이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왜 하필 그녀인가.’ 그토록 선하고 성실하게 살았고 남에게 해 한 번 끼친 적 없는 사람에게 왜 이런 가혹한 시련이 닥친 것인지,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그녀가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와 예전처럼 환하게 웃을 수만 있다면 무엇인들 못 할까 싶었지만,
정작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워 가슴속에서 뜨거운 한숨이 올라왔다.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직시하는 유한한 존재임을 깨닫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두 손 모아 간절히 비는 것뿐이라는 사실은 나를 한없이 낮아지게 만들었다.
나는 절대자 앞에 순간순간 가장 낮은 자세로 엎드린다. 모진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 반드시 따스한 봄이 올 것을 믿으며, 간절한 마음으로 희망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기 위해 마음을 다잡는다. “인간은 죽음을 향해 가는 존재이나 동시에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투사하며 희망을 일구는 존재”라고 철학자 하이데거는 말했다. 그녀가 맞이한 지금의 시련이 인간의 유한함을 절감하는 동시에, 생의 가장 뜨거운 희망을 길어 올리는 실존적 체험이 되길 바란다.
투병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그녀는 산 넘어 산 같은 1차 관해의 과정을 거쳐 고통스러운 2차 항암을 마쳤고, 이제 3차 항암과 조혈모세포 이식을 앞두고 있다. 유전자가 일치하는 기증자가 나타났다는 소식은 참으로 다행이라 생각하지만, 이식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일 것이다. 이식 후에 들이닥칠 면역 반응은 생명을 위협할 만큼 위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재발의 공포를 끊어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건너야만 하는 강이다.
혼자 고통을 감내해야 할 그녀를 위해 밤늦도록 힘이 될 말을 찾다가 ‘감사의 힘’이라는 영상을 만났다. 영상을 볼수록 마음속에 희망의 빛이 번지기 시작했다. 영상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단순히 마음속으로 고마워하는 것을 넘어 입 밖으로 “감사하다”라고 소리 내라고. 그렇게 할 때 뇌와 몸의 세포가 반응하며 불가능했던 치유의 기적이 일어난다는 내용들이었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 했던가. “감사”라고 내뱉는 순간, 말은 단순한 음성 신호를 넘어 세포를 깨우고 생명을 지탱하는 실존적인 힘이 된다. 마음을 무장하는 데 이보다 더 귀한 갑옷은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재빨리 영상을 공유하며 메시지를 보냈다.
“입원하기 전 딱 두 번만 봐요. 입술에서 나오는 ‘감사’라는 말이 그대를 지켜줄 거예요.”
그녀에게 보낸 것은 단순한 영상 링크가 아니라 나의 간절한 염원이었고, 반드시 살아 이겨내고 돌아오라는 명령이자 간청이었다. 삭발한 머리 위로 떨어지는 병원의 차가운 조명 아래서도 그녀가 “감사합니다”라고 읊조릴 수 있기를. 비록 몸은 비명을 지를지라도 영혼만은 감사의 힘으로 단단해져 항암제와 잘 싸워 이겨내고, 몰려오는 면역 반응의 파도를 거뜬히 넘어서기를 기도한다.
고통은 때로 생의 가장 본질적인 것들만 남기고 나머지를 씻어내 버린다. 모진 겨울 끝에 피어나는 꽃이 더 향기롭듯, 터널 끝에서 만날 그녀의 웃음은 그 어느 때보다 찬란할 것이다. 우리는 다시 마주 앉아 밥을 먹고, 시시콜콜한 농담을 나누며, 그때 참 힘들었지만 잘 견뎌냈노라며 함께 웃을 것이다. 그 봄을 위해 예수가 탄생하신 오늘도 그녀의 빈자리를 기도로 채우며 감사의 기적을 기다린다.
그녀가 우리와 함께 살아 숨 쉬고 있음에 감사한다. 어둠 속에서도 희망을 품는 그녀의 용기에 감사한다. 전 세계 수많은 사람 중 유전자가 일치하는 단 한 사람을 만난 경이로운 확률에 고개 숙인다.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가 베푼 숭고한 용기가 그녀의 새로운 생명이 되어줄 것이기에, 보이지 않는 손길에 가슴 깊이 감사한다.
아울러 그녀를 통해 평범한 것들의 경이로움을 다시 배운다. 창가에 비치는 햇살 한 줄기, 마실 수 있는 물 한 모금, 들녘의 잎새와 강물의 낮은 속삭임까지.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는 것은 존재의 의미를 되찾는 일이다. 살아있다는 것 자체로 충분히 눈부신 오늘에, 그리고 다가올 그녀의 봄날에 깊은 감사를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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