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터로 남은 그리움

2화 일기로 에세이 쓰기

by 김경희

장수온돌침대와 함께한 세월이 벌써 24년을 훌쩍 넘어섰다. 사람으로 치면 청년이 되어 독립하고도 남았을 시간이다. 돌이켜보면 우리의 신혼은 푹신하고 포근한 에이스 침대 위에서 시작되었다. 몸을 던지면 온몸을 받아 주던 에이스 침대의 포근함이 10년 동안 이어졌다. 하지만 세월은 몸의 언어를 바꾸어 놓았다. 자고 일어나면 묵직하게 전해오는 허리 통증은 결국 나를 정형외과로 이끌었다.


"딱딱한 바닥에서 주무셔야 합니다. “

의사의 처방전은 우리 침실 풍경을 바꿔놓았다. 유난히 추위를 타서 겨울이면 늘 어깨를 웅크리던 남편에게도, 허리 통증에 밤잠을 설치던 나에게도 온돌 침대는 거부할 수 없는 새로운 운명이었다.


그렇게 우리 집 침실에 들어온 온돌 침대는 투박하지만 튼튼했다. 침대의 헤드 위쪽은 둥그런 나무 기둥이 가로로 묵직하게 누워 있는 형태였고, 이를 받치는 프레임은 아주 단단한 나무로 짜여 있었다. 대여섯 명이 한꺼번에 누워도 무게를 너끈히 받아낼 정도로 견고했다. 폭신한 매트리스 대신 얹힌 붉은색 옥돌 두 짝은 단단한 나무틀 위에서 굳건한 위용을 드러냈다. 어떤 고단함도 묵묵히 품어줄 듯한 든든함이 온돌 침대에 있었다.


차가운 돌판 위로 스위치를 올리면, 잠시 후 기분 좋은 온기가 서서히 차오른다. 그것은 단순한 열기라기보다 친정의 아랫목 같은 깊고 푸근한 환대 같다. 겨울밤, 이불속으로 발을 쑥 밀어 넣었을 때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전해지는 뜨끈한 열기는 하루의 고단함을 녹여준다.






세월이 흘러 어느덧 온돌 침대도 낡은 가구가 되었다. 이사를 준비하면서 마음속에 작은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요즘 유행한다는 알레르망 침대의 세련된 디자인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먼지 한 톨 앉지 않을 것 같은 청결함과 몸을 받쳐주는 탕탕함이 노년의 잠자리를 더 우아하게 만들어줄 것만 같았다.

'그래, 24년이나 썼으면 쓸 만큼 썼지. 이제는 좀 더 현대적인 침대로 바꿔보자.'


남편과 상의 끝에 이사 날짜에 맞춰 침대를 바꾸기로 마음을 굳혔다. 이삿짐을 정리하며 구석구석 청소하던 2월의 둘째 주 토요일 오후였다.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던 침대 왼쪽 아래, 바닥에 바짝 붙은 다리 부분을 닦아내던 나는 그만 멈춰 서고 말았다. 그곳에는 거칠고 투박하게 패인 작은 이빨 자국들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아..."


나직한 탄성이 입에서 새어 나왔다. 그것은 19년을 우리 곁에서 살다가 작년 이맘때 강아지별로 떠난 '진주'의 흔적이었다. 진주가 어렸을 적, 혹은 우리가 긴 외출했을 때 홀로 남겨진 두려움과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물어뜯었을 이빨 자국. 빈집에서 현관문을 바라보다 지쳐, 제 입에 닿는 침대 다리를 물어뜯으며 불안을 쏟아냈을 어린 생명의 몸부림. 떠나간 진주의 흔적이 단단한 나무 위에 흉터가 되어 고스란히 박혀 있었다.


침대 다리에 난 자국을 손끝으로 가만히 쓸어보았다. 매끄러운 나무 표면에 새겨진 거친 상처가 심장을 밟고 지나가는 것 같았다. 24년의 세월 동안 나는 이 침대에서 나이를 먹었고, 진주는 19년 동안 침대 다리 곁에서 잠이 들었으며, 그곳에 흔적을 남기고 떠났다. 새 침대를 사면 집안은 화사해지겠지만, 강아지가 남긴 애처롭고도 소중한 자국은 영영 사라질 것이다. 우리를 향한 기다림을 증명해 줄 그 유일한 기록이, 폐기물 스티커 한 장에 실려 떠나갈 판이었다.


물걸레를 내려놓고 침대 위에 앉았다. 여전히 바닥은 뜨끈했다. 이 따스함 속에 진주의 온기가 섞여 있는 것만 같았다. 순간 마음을 돌려먹었다.

"여보, 우리 침대 바꾸지 말고 그냥 이대로 가져갑시다."


남편은 의아한 듯 쳐다봤지만, 내가 가리킨 진주의 이빨 자국을 보고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상처 난 침대의 나무다리는 단순한 가구가 아니라 강아지의 기록 같았다. 아마도 지금 침대를 바꾸지 않는다면, 나는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까지 진주의 흔적 위에서 쉬고 곤한 잠을 자게 될 것이다.


죽음이라는 마지막 초대를 받는 날까지, 강아지가 남긴 작은 흉터를 훈장처럼 간직하며 살고 싶다. 누군가에게는 내다 버려야 할 낡은 가구겠지만, 나에게는 사랑하는 존재가 세상에 다녀갔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이니까. 삶이란 화려한 것만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낡은 침대 다리에 새겨진 강아지의 작은 이빨 자국처럼 아쉽고 후회스러운 기억도 껴안고 살아가는 것이니까.


오늘 발견한 감사는 긴 세월 함께했던 강아지가 남긴 흔적을 발견했다는 사실이다. 흔적이 있다는 것은 반추할 기억이 남아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어느덧 추억을 먹고 살아갈 나이가 되고 보니, 침대 다리에 새겨진 작은 상처조차 나를 부자로 만들어주는 소중한 선물처럼 느껴진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