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함께 사는 집은 내 직장과는 멀고 남자친구의 직장과는 가깝다. 그러다보니 주중에는 남자친구가 늘 먼저 집에 도착해 주방에 있다. 그래서 주말에는 남자친구가 먼저 특별히 무슨 요리를 하겠다 선언하지 않으면 좀 쉬라고 한다.
그는 내가 이것저것 해주는 주말을 좋아한다. 아무리 요리를 즐겨해도, 일하고 와서 집안일을 하며 분주하게 움직이는 건 분명 힘들었을 것이다.
나는 서늘한 밤을 좋아하고 그는 햇살 쨍한 낮을 좋아한다. 언젠가 그런 차이가 드러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우리가 떨어져 지내던 어느 날, 그가 물었다. ‘감자야 우리가 한국에서 함께 산다면 어떤 모습일까?’
나는 그에게 하루를 마무리하고 함께 공원을 걷고, 밤공기를 마시는 장면을 떠올려 이야기했다.
그는 우리가 함께하는 집에서 햇살을 받으며 요리를 하고, 커피를 마시며, 빨래를 널고 섬유유연제 향이 가득한 거실에서 여유를 느끼고 싶다고 했다. 그가 교환학생 시절 잠깐 경험했던 한국은 습하지 않아서 빨래를 널면 섬유유연제 향이 그대로 남고 뽀송하게 마르더라고 했다.
주중엔 직장일에 치여 그런 여유를 누리지 못하니 주말에 만끽하게 해주고 싶다. 주말 점심으로 뭘 먹고 싶냐고 물으면, 그가 자주 고르는 메뉴가 있다. 바로 돈까스. 일식 스타일도 아니고, 소스를 얹어주는 경약식도 아니다. 그냥 집 돈까스다.
돈까스용 고기에 밀가루-계란-빵가루를 묻혀 바삭하게 튀기고, 시판 돈까스 소스를 찍어먹는 돈까스.
어디선가 하는 말이 한국 남자의 소울푸드 세 가지가 제육볶음, 돈까스, 국밥이라고 한다.
우리집에 사는 대만 남자는 돼지국밥에서 냄새가 난다고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소고기를 먹지 않으니 설렁탕이나 소머리국밥은 아예 맛볼 기회도 없었다.
그렇지만 돈까스와 제육볶음만큼은 없어서 못 먹는다. 다른 한식을 먹을 때보다 유독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 신기하다.
주말에 돈까스를 만들려고 하면, 그가 옆에 와서 슬쩍와서 본다. 나는 좀 부담스러워서 그에게 미리 예상 시간을 알려준다.
"30분 정도 걸려. 너 할 거 해."
그러면 그는 고개를 끄덕이곤 옆에 앉아 자리를 잡고 수다를 떤다.
고기를 망치로 두드리고 소금과 순후추로 밑간을 해두는 모습을 흥미롭게 바라보는 그.
간이 밸 동안 나는 곁들여 먹는 샐러드를 만든다. 아주 간단하다. 우리 집엔 늘 양배추가 있는데 (양배추는 대만 가정식의 단골 식재료이다.) 채칼을 꺼내서 양배추를 채친다. 손으로는 못써는 두께로 채쳐야 뻣뻣하지 않게 부드러워지고 풋내가 안 난다.
마요네즈와 케찹을 섞어 샐러드 소스를 만든다.
돈까스 만들기에서 그가 제일 좋아하는 순간은 밥을 동그랗게 담아 엎는 순간이다. 밥이 접시위에 동그랗게 놓이면 그는 아이처럼 좋아한다. 그럴때마다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나에게 돈까스를 만들게 했던, 다섯살 아래의 막내동생이다.
막내는 돈까스를 정말 좋아했다. 찌개에 반찬을 차려줘도 돈까스를 내놓으라고 난리였다. 귀찮았지만 먹고싶다고 조르는 어린 동생에게 안해줄수가 없었다. 밥을 종지에 꼭꼭 눌러담아 접시에 엎으면, 꼭 자지가 그 종지를 들어올리겠다고 나서던 유치원생이 생생하다.
동생들 밥차려주던 그 시절에서 벗어나, 잊고 살던 돈까스를 다시 튀기게 된 건 그가 한국에 온 후부터다. 거의 10년 만이었다.
요즘 내가 만드는 돈까스는 그때와는 조금 다르다. 그땐 시판 빵가루를 썼지만 지금은 얼려둔 식빵을 강판에 갈아서 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젠 굽는게 아니라 튀길수 있다.
어릴적엔 엄마가 위험하다고 기름을 붓고 튀기는 요리는 못하게 했다. 지금이야 에어프라이어라도 있지만 그때는 그런건 없었다. 징징대는 막내에게 돈까스는 먹여야했고, 그래서 나는 전 부치듯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튀긴다기 보다는 구워줬다.
그래서 내가 만든 돈까스는 늘 가장자리가 탈 듯 말 듯 했고, 가운데 부분은 팬에서 떠서 하얬다. 어떻게 하지 하다가 애초에 돈까스 고기를 작은 조각으로 잘라서 작게 만드니 좀 나았다.
튀긴 돈까스를 도마 위에서 작게 잘라 접시에 산처럼 쌓아주면 동생들이 소스에 찍어 샐러드와 밥과 함께 연신 먹었다.
하지만 이제는 기름을 부어 튀겨도 뭐라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 온전한 조각의 돈까스를 기름에 푹 담궈서 튀긴다. 역시 기름을 많이 쓰니 고르게 잘 튀겨진다.
남자친구는 실처럼 가늘게 썬 양배추 샐러드를 정말 좋아한다. 사실 양배추샐러드에 대해 연구하게 한 사람도 내 막내동생이었다. 양배추를 조금만 두껍게 썰면 사먹는거랑 다른 맛이 나고 뻣뻣하다고 투정을 부렸었다. 그래서 채칼을 알게 되었는데 어릴때 쓰던 시모무라 채칼은 뒷판에 나사조절이 되어서 실처럼 채쳐졌다. 지금은 그 채칼을 아무리 찾아도 못찾겠다. 같은 브랜드로 옆면에 나사를 돌리는 것도 사보고 다른 모델도 써봤는데 예전의 그 채칼만큼 가느다랗게 채쳐주지 못한다.
가끔은 예전에 만들었던 기억이 남아있어 그에게 돈까스를 조각으로 잘라준다. 그는 어른이니 좀 크게 자른다.
막내는 돈까스접시에 샐러드와 방울토마토를 넣어달라 했는데 사먹는 돈까스의 모습이 그랬기 때문에 그대로 재연된걸 먹고 싶어했다. 나는 해달라는대로 해주고 동생한테 힘든 티를 냈다.
남자친구는 나와 달리 요리를 하고 아기자기하게 내놓는걸 좋아한다. 요리를 시작하기 전에 그릇도 미리 골라놓는 스타일이고 음식의 색도 조화롭게 맞춘다. 나는 그를 만나기전에는 플레이팅이라는 개념이 없었는데 그의 담음새를 보며 많이 따라하게 됐다.
그렇지만 돈까스만은 내가 만든 구성으로 나온다. 그는 그래서인지 돈까스 한 접시의 아기자기함을 좋아한다.
내겐 두명의 남동생이 있다. 어릴적 막내는 늘 메뉴를 야무지게 요구하는 반면 둘째는 내가 힘들 걸 먼저 생각했다. 항상 주는대로 먹었고 칭얼대는 막내까지 단속했다.
지금도 남자친구가 동생들에게 용돈을 주면 둘째는 손사래를 치며 그러지말라고 하는데
막내는 덥석 받고 ‘고마워 형’하면서 껴안는다.
그래서 늘 둘째에게 더 마음이 쓰인다.
둘째는 초등학생 시절 운동을 했다. 한창 자라나는 어린이가 운동까지 해서 그런지 고기반찬을 유독 좋아했다. 소불고기나 제육볶음을 해주면 두세공기를 먹어서 자주 해줬었다. 함께 운동부이던 친구를 집에 자주 데려왔는데 우리집에 밤 늦게 까지 있어도 그 애를 찾는 전화 한통이 안왔다. 얘도 집에서 엄마밥 못먹는 애구나 싶었고 내 동생처럼 시커멓게 탄 얼굴로 급하게 밥을 먹는게 세트로 짠했었다. 상추를 씻어줘도 손도 대지 않고 고기만 연신 먹던 애들은 제육볶음을 남겨서 잘게 잘라 김을 부숴 넣고 볶음밥을 해주면 이미 맨밥을 먹고도 순식간에 먹었다.
그리고 이제 그때 익힌 제육볶음을 남자친구에게 실컷 써먹고 있다.
다 먹으면 그때처럼 밥도 볶아준다. 모짜렐라 치즈도 쟁여두고 밥이 안보일정도로 뿌려 치즈볶음밥으로 먹는다.
양념은 고추장2T, 고추가루2T, 간장1T, 다진마늘 1T, 설탕1T, 미림1T 에 맛소금과 후추가 조금씩 들어가면 딱 좋다. 딱 좋다의 기준은 내 동생들의 만족도였다.
언젠가부터 유튜브를 보면 제육볶음은 고기를 먼저 볶고 양념을 뿌리라고 한다. 한 영상을 보는데 한 유튜버가 나름 과학적인 설명을 하며 아직도 제육볶음 만들때 미리 양념에 재워 볶는 사람들은 바보라고 했다. 재수 없었다.
내가 아는 제육볶음은 미리 재워놓는 음식이라 지금도 그렇게 만든다.
5년전 남자친구가 한국에 교환학생을 왔을때 한번 해줬었는데 마음에 들었는지 내 레시피를 가져가 본인이 해줬다. 이제는 한식은 내가 하려 한다.
국물이 자작한 제육볶음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던데 그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내 동생들도 그랬기때문에 어릴적 레시피를 그대로 쓸 수 있다.
사실 나는 제육볶음 자체를 별로 안좋아한다. 입안에 텁텁함이 남는게 싫다. 고추장 때문인걸 알고 간장과 고추가루로만 해서 먹어도 봤는데 나만 좋아하고 다들 별로 안좋아했다. 그래서 지금은 제육볶음을 만들면 남자친구만 준다. 우리가 함께 살면서 만들었던 규칙 중 한가지는 꼭 매끼니마다 둘이 같은 음식을 먹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처음에 집을 합치며 가끔은 내가 소고기를 먹도록 그가 배려해준 규칙이었는데 은근 많은 음식에서 적용되고 있다.
돈까스는 나도 좋아해서 같이 먹지만 제육볶음은 남자친구만을 위한 음식이기 때문에 요리하는 시간이 즐겁다.
남자친구는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 한끼 해주면 내가 자기를 위해 직접 요리했다고 싱글벙글인데 그 단순함이 참 귀엽다. 제육볶음 정도의 요리를 해줘도 그러니 말이다. 글을 쓰다 든 생각인데 그가 국밥을 안좋아하는건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동생들과의 시간에서 익힌 요리를 그가 좋아할때면 가끔 어린 시절의 시간들이 그렇게 암울하지만은 않았다고 마음에 다시 쓰게 된다.
채칼을 쓰다가 살점을 날렸던 일이나 여러번의 양념 조합으로 맞춰보았던 시간들이 모여 지금 그가 즐거우니 말이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때면 한편으론 동생들에게 밥을 해먹였던 그 자체로 그 시간을 의미있다 여기지 않는것이 좀 미안하다.
얼마전 군복무중인 막내가 휴가를 나온다고 연락이 왔다. 첫 휴가엔 눈물이 날정도로 애틋했는데 두번 세번 나오니 감흥이 사라진다. 돈까스가 먹고 싶다길래 사주겠다 말하니 서운한 티를 팍팍냈다.
'옛날에 누나가 해준 후추맛 많이 나는게 먹고 싶단말이야.' 라고 하길래 집으로 오라고 해서 튀겨주었다.
돈까스를 튀기며 실시간으로 쌓아주는데 남자친구와 동생이 연신 먹는 모습을 보니 만족감이 가득 찼다.
동생은 남자친구를 잡고 일렀다. "형, 누나가 뭐라했는지 알아? 나보고 귀찮다고 그냥 사먹으래."
남자친구는 사람좋은 웃음을 짓더니 동생에게 말했다. "내가 돈까스 먹고 싶다고 그러잖아? 그럼 감자는 바로 만들어 줘."
황당해하던 막내의 얼굴. 나도 황당했다. 그 말이 나오는게 맞아...?
한술 더 떴다. “다음에 먹고 싶으면 형한테 말해. 내가 먹고싶다고 해달라고 할게." 라고 말하며 승리한 표정을 짓던 그. 이럴때는 정말 초딩같다.
한국에 온 그에게 특별히 잘 해주는게 없는데 돈까스라도 튀겨줄 수 있어 다행이다.
한국에서 벌써 두번의 봄을 보낸 그가 아직까진 돈까스를 물려하지 않아 또 다행이다.
오랫동안 좋아하도록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