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밥 기록

by 강원도감자

작년 늦가을 그와 함께 살게 되었다. 커플에서 동거하는 커플이 됐다. 따로 사는 동안도 서로의 집에 며칠씩 머물렀기 때문일까? 생각보다 많은 변화는 느끼지 못하고 오래부터 동거했던 것 처럼 살고 있다.


하지만 내 일상에 크게 달라진게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이젠 매일 아침밥을 챙겨 먹는다는 것이다.


대만은 아침밥이 매우 중요한 나라다. 아침밥을 위해 아침에만 문을 여는 아침 식당(早餐店)도 발달해있다. 대만에 처음갔을 때 새벽 다섯시반에도 열려있는 아침식당에 놀랐던 기억이 난다.

아침 식당은 활기를 띄며 매우 붐빈다. 학생, 부부, 어린 아이들과 다함께 아침을 사먹는 가족들이 보인다. 심지어는 커플들도 아침 식당에서 짧은 데이트를 한다.

집에서나 식당에서 아침을 못먹고 나오면, 학생과 직장인들은 도시락을 포장해 오전 강의 시간과 업무시간에도 아침을 먹는다. 내가 이 이야기를 듣고 놀라 한국에선 그럴 수 없다 하니 반대로 그가 놀라 질문을 던졌다.

'그럼 만약 늦잠을 자서 밥 먹을 시간이 없으면 아침밥은 어떻게 먹어?'

'...그냥 굶고 점심때까지 기다리는 거지.'

그러자 그는 슬퍼했다. '사람이 살다보면 늦게 일어날수도 있는데 그렇다고 굶어야 한다니... 잔인해!'


이렇게나 소중한 아침밥을 그는 24년간 꼭꼭 챙겨먹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맛있는걸로 말이다.

그러다 작년 이맘때쯤 그는 한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는 데, 그건 바로 매끼니를 다 행복한 식사로 채우면 자기가 원하는 몸을 갖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침을 건너 뛸 순 없었다.

그래서 그는 큰 결심을 했다. 주중엔 저녁 한끼만 먹고 싶은 걸 마음껏 먹고 아침과 점심 두끼를 다이어트 식으로 먹기로 한것이다.

나와 함께 살기 전에도 그가 이미 그렇게 지내왔기에 나는 우리가 동거를 시작하면 그가 아침엔 혼자 다이어트 식사를 챙겨먹을 줄 알았다.


그런데 이사를 준비하던 중 그가 앞으론 내 아침을 책임지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글쎄. 평생 아침을 안먹고 살아서 먹으면 더부룩할것 같기도 하고... 그가 출근 전에 요리를 하며 진을 빼는게 싫었다.


그래서 거절했지만 그의 한번 먹어보라는 권유가 이어졌다. 아침밥을 먹지 않으면 우울감이 올라가고 비만 확률이 높아진다는 (신빙성이 있는건지는...) 이유를 대며 아침밥은 꼭 먹어야한다 했다.

그렇게 그의 뜻대로 처음 며칠간 아침밥을 얻어먹다보니 생각보다 더욱 행복했고, 황송하게도 매일 아침 그에게 아침밥을 얻어먹고 있다.


그는 아침 5시면 눈을 뜨고 하루를 시작한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전형적인 대만사람의 생활방식이다. 그는 일어나자 마자 두부가 주가 된 식사를 챙겨먹고 조깅을 하러 간다. 갔다와서 몸을 씻고 나와 여러일을 한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책도 읽는다. 라디오와 뉴스로 대만의 소식도 살핀다. 그리고는 나를 위한 아침을 요리한다.

그래서 우리가 함께 아침을 먹는 일은 드물다. 그렇지만 가끔은 기회가 온다.

그와 함께 하는 식탁은 이렇다. 그가 가끔 조깅을 가기 싫어하는 날에 기회가 찾아온다. 자주 있는 일이 아니라 더 귀하다. 매일 아침 혼자 맛있는걸 얻어먹는게 미안해서 주말이면 그가 좋아하는 야채 반찬을 만들어놓고 계란을 쪄놓는다. 그럼 그가 옆에서 지켜보며 '감자는 날 너무 좋아해?' 한다.



보통의 아침엔 나 혼자 식사를 하고 그는 내 옆, 혹은 맞은편에 앉아 수다를 떤다.

그가 차려주는 아침은. 어느날은 한식, 어느날은 대만식, 어느날은 양식.

어떨때는 다 못먹을 만큼 푸짐하고 어떨때는 간단하다. 주는대로 먹는다.


아침 식사 사진을 찾다보니 제일 많은 수육사진.
그는 겉절이와 함께 먹는 수육을 특히 좋아한다. 그가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지낼때부터 함께 온갖 레시피를 다 시도해봤다. 삶고, 찌고, 한 번 더 삶고 찌고, 야채 위에 올려 무수분으로 찌고...

해볼 수 있는 레시피를 다 해본 끝에 3분만 살짝 삶은 뒤 건져내서 된장과 향신료를 바르고, 야채 위에 무수분으로 쪄내는 레시피로 정착했다.

오래 만나면 대부분의 취향이 맞춰졌는데도 하나 다른 점이 있다. 나는 삼겹살 수육보다 앞다리살이나 사태 수육이 훨씬 맛있다 생각하는데 그는 그걸 납득하지 못한다.


얼마전엔 가계부를 쓰던 그가 어디서 지출을 줄일까 고민하길래 내가 나혼자 먹는 건데 아침엔 너무 비싼 재료로 차려주지 말라고 했다. 그러자 그가 대뜸 나에게 물어보았다.

'감자 혹시 수육먹을때 삼겹살이 더 비싸서 그냥 앞다리살이 맛있다고 하는거야?'

깜찍한 추측이지만 정말 앞다리살이 더 맛있는데... 그에겐 그렇게나 삼겹살이 최고인걸까?


외국인인 그는 한국 음식 중 어떤 게 ‘아침에 먹는 음식’인지 잘 모른다. 그래서 가끔 그가 차린 식사는 시간대를 잘못 만나기도 한다. 하루는 그가 아침부터 두부김치를 해줬고, 나는 일어나자마자 막걸리가 생각났다. 냉면과 돼지갈비도 아침 메뉴로 먹었다. 예상치 못한 식사는 웃음을 준다.


우리가 제일 좋아하는 빵집에 들른 다음 날 아침. 성수동 ‘온더’ 베이커리.

나는 뺑오쇼콜라를 좋아하고,

그는 달달한 아몬드 잼이 들어있는 아몬드 크루아상을 너무나 좋아한다.

주말이면 종종 온더에 들러 뺑오쇼콜라와 아몬드 크루아상을 산다. 온더의 유일한 단점은 가끔 이해할 수 없는 시간대에 빵이 품절된다는 것이다. 하루는 품절된 아몬드 크루아상을 먹겠다는 의지로 2호점이 위치한 동대문까지 달려간 적도 있었다. 가는동안 그곳에 과연 크루아상이 남아있을까 마음졸이는 그를 보며 몰래 웃었다.


글을 쓰면서 사진을 들여다보니 그가 아침으로 빵을 준 날에는 본인의 소중한 양식인 계란을 하나 줬다.



그가 만들어주는 지탕(雞湯). 대만식 닭곰탕이다. 처음 지탕을 먹은 건 2019년 여름이었다. 그가 군대에 간 사이에 나는 그의 부모님집에서 얹혀 살고 있었다.

처음 겪어본 험악한 대만의 여름 날씨와, 동시에 24시간 가동되는 에어컨에 적응하는걸 실패했다. 대만에 도착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몸살이 단단히 났다. 그때 그의 아버지께서 몸보신을 시켜주겠다고 하셨다. 그 말씀과 동시에 고추를 튀기시길래 어리둥절 했는데 튀긴 고추의 껍질을 벗기고 그 고추를 닭과 푹 끓여 참기름 지탕을 만들어주셨다.

남자친구는 내가 일때문에 지쳐있을때 종종 지탕을 만들어준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아침 메뉴는 마파두부덮밥이다. 두반장의 짠맛과 굴소스의 감칠맛에 정신이 확 든다. 두그릇 세그릇 퍼먹고 싶은 맛이다. 그는 마파두부를 만들때 웍으로 휘리릭 만든다. 재료준비에서 그릇에 담기까지 10분도 안되는 듯 하다. 그가 주방에 웍과 함께 있을때면 새삼 그가 정말 대만사람이구나 싶다.


가끔 만들어주는 양식. 파스타 혹은 리조또.


연애 초반, 그가 한국에 올 때 간단하게 차려준 음식들. 우연히도 그때마다 밥과 계란, 김치가 꼭 들어갔던 모양이다. 어느 날, 그가 물어봤다.

"한국은 꼭 식사때마다 계란과 김치가 있어야 하는 거야?"

그러고보니 그랬다. 내가 그에게 해준 음식은 간장계란밥. 계란말이. 볶음김치. 그리고 그가 좋아하는 김치찌개.

계란은 자취생에게 가장 고마운 식재료였고 김치는 엄마가 주기적으로 보내줬기에 남아돌았을 뿐인데

남자친구는 그 조합을 꽤나 좋아했다.


그때 당시 주말 오전이면 나는 과외수업을 하러 갔고 남자친구는 혼자 집에 있었기에 일어나 먹으라고 주먹밥을 만들어놓고 나갔었다.


그때로부터 5~6년이 지나, 이제는 그의 손을 거친 그때의 음식이 내 입으로 들어온다. 내가 만들었던 그 모양과 맛 그대로라 오묘한 기분이 든다.



그의 말에 따르면, 어릴 적 그의 아침밥은 거의 이랬다고 한다. 나는 그가 어릴 때 매일 대만식 가정식을 먹으며 컸을 줄 알았었어서 의외였다.


얼마 전 남자친구 아버지와 통화를 하며 이런 저런 수다를 떨고 있었다.
통화가 끝나갈 무렵, 아버지가 갑자기 말했다.

'남자친구한테 까다롭게 좀 굴어봐.'

내가 어리둥절 해 하자 아버지가 답하셨다.
'걔가 너무 얄밉잖아.'


그 이유는 이랬다. 남자친구의 어린시절 아침밥 담당은 아버지였다고 한다. 온 가족 아침상을 책임지느라 매일 아침이 얼마나 힘드셨을까? 남자친구가 한국에 와서 내 아침밥을 차려준다는 얘기를 들은 아버지는, 남자친구에게 물어보았다.

'힘들지? 네 여자친구 밥 차려보니까 출근 전 매일 아침 준비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겠지?'

그러자 남자친구가 아주 태연하게 대답했다.

'아니? 하나도 안 힘든데?
아빠는 귀찮아서 우리 아침 안해주고 밖에서 사먹게 했지만,
나는 매일 요리해줘.'

...


가끔 보면 그는 등짝 맞을 일을 발랄하게 한다.


아버지는 한사람 먹을 식사와 5인 가족 식사를 만드는게 같냐는 얘기를 하셨고 나는 열심히 맞장구를 쳤다. 그리고 나서 그의 형과 누나가 한 편식들까지 풀 스토리를 들을 수 있었다. 다들 얼마나 까다로웠는지와 그리고 그 중에서도 유독 까다로웠던 그의 맞춤으로 아침밥을 해주느라 얼마나 고생하셨는지도. 그말을 들으며 나는 왠지 유년시절의 그가 부러웠다.


전화를 끊기 전 아버지의 당부.

'꼭 까다롭게 굴어봐. 토스트 하나 굽는 것도 너무 구워 빵이 딱딱하다고 트집 잡아봐. 본인이 똑같이 당해보면 그제야 진짜 아침밥 차리기가 어떤 건지 알겠지.'


아버지께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아직 시비를 걸어보진 못했다. 괜히 트집 잡았다가 그 다음부터 안해주면 어떡해요...



그가 차려준 식사를 보며 문득 실감이 났다. 이런 다정함이 아침 매일 반복되었는데 몇달이 지나니 어느순간 습관처럼 여기고 있었다.

작년 봄, 그는 한국에 와서도 여전히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대만인의 삶을 고수했고

어느 날 나는 그에게 물었다.

'일찍 자면 재밌는 일을 하나도 못하고 잠에 들어야 하잖아. 너무 아쉽지 않아?‘라고 했을때 그는,

‘그 재밌는 일을 일찍 자고 상쾌하게 일어나서 아침에 하면 더 재밌어‘ 라고 했다.


그런 상쾌한 아침에, 재밌는 일들이 가득 있는 쌓여있는 가운데에 시간을 내어서 내 식사를 만들어주고 있었다. 매번 새로이 고맙고 조금 미안하다 느끼려한다.




독자님들 잘 지내셨나요? 그와의 동거일기를 써보려고 해요.

심심할때 스쳐가듯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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