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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마빈 Jan 26. 2019

콤플렉스, 욕망이란 이름의 축성

소설 <잠실동 사람들> 정아은 장편소설 (한겨레출판, 2015)


한국 사회에서 이번 겨울을 가장 뜨겁게 불태운 이야기는 단연 JTBC 드라마 <SKY캐슬>이라 평할 수 있겠다. 그간 상류사회의 일상과 로맨스에 치중했던 한국 드라마의 전형성에서 벗어나, 특정 전문직(의사)들의 폐쇄된 환경과 입시경쟁이라는 한국적 상황을 담아내 인간의 욕망을 잘 보여주는 드라마로서 호평과 화제를 몰고 있다. 작중 제목인 <SKY캐슬>은 '주남대 의대 교수'들에게 주어지는 가상의 주택단지의 이름이자 주요 배경이다. 실제 사건이나 지명 등을 의미하진 않는다고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교육에 관심이 많은 부유층이 사는 곳, 대표적으로 대치나 반포와 같은 서울 강남구를 떠올리게 한다. 


높은 빌딩과 과도한 사교육 시장으로 대표되는 강남은 흔히 우리 사회의 욕망의 분출지로 표현된다. 타워팰리스의 도곡동과 사교육의 대치동은 한국 사회의 가장 노골적인 욕망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이 지역은 그렇기에 '성공'을 이룬 곳이 되고, 드라마가 보여주듯이 극도로 화려한 면면이 부각된다. 그렇기에 드라마는 현실을 참조하긴 했지만 심히 판타지스럽고, 많은 이질감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좀 더 실증적으로 한국 사회의 아파트와 교육으로 대표되는 욕망을 보여줄 장소는 어디일까. 정아은 작가의 시선은 강남과 탄천을 사이에 두고 넓게 자리 잡은 동네, 잠실동으로 향한다.



소설 <잠실동 사람들> (한겨레출판, 2015)은 잠실동, 특히 잠실2동 '리센츠' 아파트를 배경으로 여러 인물들의 삶을 그려간다. 각 장의 제목에 등장하는 인물만 16명이다. 이들은 누군가의 엄마나 아빠로 등장하거나 그들의 삶과 관계를 맺는 다양한 직업군으로 나온다. 초등학교 교사, 과외 교사, 학습지 선생, 카페 주인, 원어민 강사, 파견 도우미들이 리센츠에 거주하지 않으나 잠실동과 연결되면서 생존하는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소설은 각 장의 제목을 사람의 이름과 그들을 부르는 호칭으로 정했다. 여러 사람들 가운데 이야기를 중심적으로 이끌어나가는 사람은 3번 등장한 지환엄마 박수정이지만, 그가 연결되지 않더라도 다양한 연결지점이 사람들 간의 관계를 유기적으로 이어간다. 특히 이 작품에서 주목하는 계층은 '엄마'들이다. 지환엄마 박수정을 비롯해 해성엄마 장유미, 태민엄마 심지현, 그리고 경훈엄마 강희진까지. 물론 '아빠'들도 등장하지만 어디까지나 그들은 작품을 보조하는 역할이다. 그들의 본명보다 먼저 불리는 아이들 역시 '엄마'들의 상승 욕망을 위한 도구로만 그려진다.


작품의 엄마들은 대부분 초등학생 아이의 엄마로 그려진다. 수정과 유미, 태민은 아이들을 사교육에 크게 의존한다. 이들은 아이들이 영어학원의 레벨테스트에 통과하지 않아 속상해하거나, 유명한 수학학원에 들어가 있다는 사실에 매우 자랑스러워한다. 이들은 자신의 교육철학에 매우 확고해하며 '자신이 유별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나, 외부의 시선에서 바라보았을 때 그들의 모습은 계속 삐걱거리는 부조리의 연속이다. 이들이 아이들에게 이렇게 사교육에 열중하는 것은 결국 그들의 상승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함이다. 잠실의 고층 아파트 단지에 들어와 거주하고 있지만, 이들을 강하게 압박하는 것은 '더 좋은 곳으로 가지 못했다'라는 콤플렉스의 발현이기 때문이다.


작품의 무대가 '강남'이 아닌 '잠실'인 것도 그 때문이라고 읽힌다. 강남은 우리 사회에서 이미 '최고'라는 지위를 얻어낸 지 오래다. 그렇기에 강남을 옆 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아무리 자신이 부촌이라 하더라도 여전히 바라 볼 어딘가가 있다. 지방에서 올라온 지환이네는 외국계 기업 차장이라는 지위를 얻었지만, 잠실에서의 삶이 빠듯한 월소득에 허덕이고 있다. 집안의 재력이 있는 해성이네도 판사 출신 남편이 변호사로 내려오면서 대치동으로 이주하지 못했다. 태민이네는 합법적이지 못한 일로 돈을 벌고 있고, 맞벌이 의사 가족인 경훈이네 역시 아이 교육을 위해 페이닥터로 내려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 겹친다. 그들의 이룩하지 못한 상승 욕구는 결국 아이에게 투영되어, 아이를 끊임없이 이어지는 사교육의 구덩이로 빠트리고 만다.


상승 욕구는 '리센츠 사모님'들에게만 허락된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그들과 관계 맺고 있는 다른 사람들의 삶에도 상승 욕구는 동반된다. 과외 교사 김승필은 아내와 함께 통번역대학원을 준비하였으나, 생계를 위해 포기한 뒤 이혼 후 보습학원을 전전하게 된다. 그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대치동의 유명 학원 출신으로 신분을 위조해 지환이의 과외 교사로 재취업한다. 대학생 이서영은 자신의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매춘을 감내한다. 이방인인 원어민 교사 지미 더글라스나 방관할 수 있는 카페 주인 이태용의 경우 정도가 되어서야 이들의 상승 욕구를 바깥에서 바라볼 수 있다. 잠실이란 공간, 아니 한국 사회 속에서 인간의 상승 욕망은 모두에게 잠재된 콤플렉스로 남는다.



잠실동의 수많은 고층 아파트들은 이들의 이런 상승 욕구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서양에선 서민들의 집단 거주공간으로 시작한 '아파트'는 한국에 들어와서 '캐슬' '팰리스'이란 호칭을 얻고 고급 주택단지로 승화된다. 저 높은 하늘을 향해 치솟는 고층 아파트는 드넓은 잠실을, 서울 전체를 휘감고 있다. 욕망의 전시장으로 전락해 버린 한국 사회에 브레이크는 걸려있지 않다. 마천루의 끝은 무엇이 될까. 소설은 작중에서 가장 많이 불렸지만 단 한 번도 주인공이 되지 못했던 '초등학생 허지환'을 마지막 챕터의 주인공으로 삼았다. 결국 어른들의 부조리 속에서 아이들만은 그대로라고 말하는 것은 아닐까. 결국 잠실동 안에서 가장 자유로운 존재는, 가장 낮은 땅에 관심을 가진 초등학생 허지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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