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케이션도 전략이다
들어가는 말
삶은 실수의 연속이다. 실수와 실수로 생긴 실패는 선택하고 행동하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행동하지 않는 자, 선도하지 않는 자는 실수할 수 없고, 실수를 통해 배울 수도 없다. 단지 시간 위에서 부유할 뿐이다.
그래, 실수했다. 아니 사소한 오류다. 아니다. 적확하게는 아주 작은 오해가 있었다. 그래, 그렇다고 치자. 이때에 우리는 어떻게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할까. 어떻게 하면 두 번 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
지난 번, 토스의 회원DB 유료 판매 사태를 다룬 글을 썼다. 대안 없는 비판이었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래서 오늘은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관점으로 써보려 한다. 초보 기획자의 뇌피셜이 가득한 대안이니 부디 감안하고 봐주시길 바라며.
많은 사람이 간과하는 부분이다. 커뮤니케이션에 무슨 전략이 필요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다만 우리는 진실됨과 전략이 부재해서 생긴 일련의 사건들을 간간히 보아왔다. 대중에게 알려진 사람들(유튜버, 연예인, 공직자 등)이 잘못을 저지르고 난 후 사과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무엇을 느꼈는지 떠올리면 쉽다. 그 특징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진실성은 찾아볼 수 없고, 자기 변명으로 일관하며, 남탓/세상탓만 하고, 재발 방지 노력은 일절 언급이 없는 건 기본인데, 그래도 이렇게라도 사과를 한다면 다행인 수준이고, 대개는 여론에 떠밀려 마지못해 사과하거나 문과 입을 걸어잠그고 숨어버리기 일쑤다.
그렇다면 사과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빠르게 사과하기 (모든 일에는 골든타임이 있다)
자신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고백하기
그로 인해 상대가 어떠한 상처를 입었을지 공감하고 반성하기
다시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밝히기
자, 똑같은 걸 위험(risk)에 대처하는 커뮤니케이션 담당자로 바꿔서 이해해보자.
위험(risk) 인지하자마자 여러 채널을 통해 입장표명하기
위험 발생 원인을 적시하고, 고객이 받을 피해와 급상승한 우려(pain point)를 인정하기
재발방지를 위해 어떻게 이 사안에 대처할 것인지를 소상히 밝히기
사실 위험관리로 위험발생을 최소화하는 게 우선이고,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네거티브 반응을 실시간으로 체크해야 한다. 브랜딩은 이미지 구축이다. 이미지를 쌓아올리는 건 어려워도 무너지는 건 순간임을 수많은 연예인/공인 등을 통해 우리는 보아왔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두 가지 방안은 유사하다. 잘못한 점을 사과하는 것과 발생한 위험에 대처하는 방법은 본질적으로 유사하다는 뜻이다. 공개 사과의 기술과 위험 관리의 기술이 다른 점은, 사과가 잘못을 인정하고 진심을 다해 용서를 구하는 과정이라면 위험 대응은 잘잘못을 시비가리는 일이 아니라 브랜딩을 유지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점에 있다.
위험관리에 실패해서 크게 이미지를 실추할 위기에 놓인 회사가 있다고 하자. 그 상황에서 '나는 잘못 없어! 당신들이 오해한 거야'라고 해봤자 씨알도 안 먹힐 소리임은 자명하다. 스스로 자신을 변호하고 싶겠지만 그런 변명은 오히려 독이 되어 되돌아오기 십상이다. 변명은 스스로를 위한 것이고 대안은 상대를 위한 것이다. 회사는 상대, 즉 고객을 위한 일을 해야 살아 남을 수 있다. 회사의 생명은 생각보다 그리 길지 않다.
아마 토스 내부 관계자는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정책과 법률 검토는 충분히 했고 법률자문으로 법적 문제(이슈) 없음을 판명받았어. 제 3자에 정보 제공 동의도 고객에게 받았다고. 이건 업계 관행이라고. 다 오해에서 비롯된 일이야. 잘 모르는 기자가 우리를 구렁텅이에 밀어넣은 것에 불과해라고. 이는 보도자료의 구성을 보면 바로 이해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공식입장문은 전형적으로 자기 중심(공급자 중심)의 마인드다. '내가 한 행동은 모두 합리적인 판단 하에 한 행동이고, 세세하게 따져보더라도 내 잘못은 없고, 다 너희들이 잘못 이해해서 생긴 일'이라고 치부하는 것이다. 중요한 부분은 브랜딩을 책임지는 오너나 대고객 커뮤니케이션 담당자는 '자신의 입장' 혹은 '회사의 입장'을 대변하는 사람이 아니라 '고객의 입장'과 '고객의 불안'을 이해하고 유연하게 대처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내 입장'을 고수할수록 '고객 입장'은 이해 불가의 영역에 다다르고 만다. 허구헌 날 데이터분석한답시고 트래픽과 이탈률, MAU만 봐서는 고객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다. 고객의 심리를 이해하지 못하면 서비스는 존속할 힘을 잃고 표류할 수밖에 없음은 자명하다.
중요한 것은 ‘제 3자 제공 동의를 받은 개인정보만 판매했기 때문에 문제 없다’는 데 있지 않다. 이는 커질 대로 커진 고객의 우려(pain point)를 하나도 해결해주지 못하고 오히려 증폭시킬 뿐이다. 이미 마이데이터 이슈로 개인정보 보안 위험관리 실패를 보여준 토스 입장에서 첫번째 문단에 쓸 내용이 ‘우리는 문제 없어’ 밖에 없었을까.
나는 커뮤니케이션 전략가로 일해본 경험이 없다. 전문가도 아니고, 그쪽으로 커리어를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다만, 기획자가 되려는 입장에서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하고 고민해본 결과를 적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1. 고객에게 미리 알리거나 공지하지 않고 개인정보를 판매한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한다.
고객은 내 개인정보를 토스가 자기 마음대로(?) 돈 받고 팔았다는 사실에 불만이라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제 3자에게 정보제공을 했다는 사실에 더해 돈까지 받으며 팔았다는 사실인데, 그 보다 중요한 점은 그 사실을 고객에게 알리지 않고 행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법적으로 문제될 건 없어도 도의적인 문제는 잔존하는 일이다. 결국 토스는 이러한 사실이 외부에 알려졌을 때 나타날 수 있는 위험요소를 미리 파악하고 고객에게 알림을 제대로 줬어야 하고, 알림을 정보제공 시에 한 번, 서비스 이용 중에 한 번 등 여러 차례 알림을 줬다고 하더라도(사실은 그렇게라도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지만) 고객이 인식하지 못했다고 한다면, 고객에게 더욱 잘 전달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방안을 고민했어야 한다.
2. 이슈가 된 개인정보의 수집, 관리, 파기, 제 3자 제공 등의 방법을 소상하게 공개한다.
되도록 요약한 정보를 제공하고, 더 불안한 고객을 위해 상세 정보가 담긴 정책 링크를 제공한다. 대부분의 회사는 스스로에게 불리한 내용은 동의서 구석에 박아넣거나 아주 작은 글씨로 눈가림을 하곤 하는데, 혁신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홍보하기 전에 기본부터 지키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현재 고객의 정보가 어떻게 관리, 파기, 제공되고 있는지를 공유해서 고객이 느끼는 불안을 해소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모든 걸 고객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뜻이다.
3. 고객이 불안을 느낄 수 있는 위험요소를 앞으로 어떻게 관리하고, 대응해나갈 것인지 세부적인 대책을 공개한다.
앞뒤 다 잘라먹고 ‘부족한 부분은 개선해나가겠습니다’는 말만 하는 것은 하나마나한 말을 한 셈과 같다. 이는 마치 ‘잘못했어’라고 말하는 남편에게 아내가 '뭘 잘못했는데?'라고 할 때 우물쭈물하는 모양새와 같다. 부족한 부분은 사실이 아니다. 어떠한 부분이 부족했는지 객관적 인식을 회사에서 먼저 해야 한다. 스스로 무엇이 부족한지 모르는 사람이 도대체 어떻게 그것을 개선할 수 있다는 말인가?
다시 말하지만, 중요한 것은 기업의 잘잘못을 떠나 고객이 느낄 불안부터 이해하고 해소할 노력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이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하는 사람은 기획자와 오너, 커뮤니케이션 담당자임은 두 말 할 나위 없다.
여기까지 읽었다면 이런 반응일 수도 있겠다. '뭐야, 윗글과 다른 건 순서 밖에 없잖아?!'
그렇다. 순서와 디테일. 그것이 전부다. 글의 특성상 처음부터 하나씩 읽어내려갈 수밖에 없다. 여러 장의 그림을 두고 보게 하지 않는 이상, 중간부터 위 아래로 훑어가며 읽거나 마지막 문단부터 역으로 읽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그것이 맹점이고 주요 포인트다.
고객이 이번 토스의 입장문을 읽고 느끼는 첫감정은 '고객 동의 하에 제공(사실 판매가 맞는 말이다)했기 때문에 문제 없다'라는 말이다. 그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회사의 공식 입장문이 단지 자기 변명으로 읽힐 소지가 다분하다는 말이다. 많은 이들이 첫문단을 읽고 나름의 판단을 하고는 '더는 읽을 가치가 없다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고객은 회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판단은 재빠르고, 한 번 내린 판단은 쉽사리 뒤바뀌지 않는다. 마켓의 냉엄한 현실이다.
위와 같은 글의 흐름은 곧 하나마나한 사과를 하는 꼴이고 해도 쓸모 없는 말을 나열하는 꼴에 지나지 않는다. 저 글의 흐름을 거칠 게 요약하면, '당신들의 동의를 받아 정보 제공을 했기 때문에 문제 없어 -> 게다가 안심번호를 제공했어 -> 너희들이 상담받기를 원하지 않으면 정보는 바로 폐기되니까 걱정 마 -> 그럼에도 문제라고 한다면 개선해나갈게' 정도이다. 더 축약하면 '이번 일은 법적으로 문제 없는 일이야, 우린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노력하고 있어, 그럼에도 문제라고 하면 개선해나갈게' 정도다.
이 글을 접한 고객은 불안이 해소되었을까. 외려 불만을 가중시키지는 않을까.
반면 나의 접근을 거칠게 요약하면, '너희들에게 미리 알리지 않고 이번 일이 진행되었어, 미안해 -> 사실 우리는 너의 정보를 이렇게 관리하고 있어, 걱정마 -> 너희들이 느끼는 불안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그 점을 보완하기 위해 이러이러한 장치를 마련할 거야' 정도다. 여기에 덧붙인다면 '다시 한 번 이런 일로 토스를 이용하는 고객분들에게 심려를 끼치게 만들어서 죄송하다'라는 말이 전부다.
무엇부터 말하고 어떤 것을 나중에 말할지 판단하고, 그 결과물을 간결하고 핵심만을 담되 진심과 성의를 빠트리지 않는 일. 거기에 쓸데 없는 '자기 변명'은 빼버리는 용기를 가지는 것. 그것이 시작이자 끝이다.
CX 담당자가 아니면서도 구구저절 써보았다. 나 또한 토스 열혈 이용자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더 아쉬었다. 그간 더딘 발전과 불편 요소가 산적해있던 송금과 간편결제 시장에서 수많은 이슈를 하나하나 멋지게 해결해왔던 토스이기에 이런 문제도 좀 더 유연하고 멋지게 해결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었던 거다. 오늘의 글은 그 질문에 대한 내 나름의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소통의 기술은 어렵다. 변화무쌍한 자연만큼 사람도 변화무쌍하고 제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나 또한 눈치 없고 소통할 줄 모르는 인간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지내왔다. 그때마다 억울하고 괴로웠다. 나의 뜻이 곡해되어 상대에게 전달되는 것도 모자라 나를 오해하는 상대를 보며 하염없는 좌절감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러한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사고의 전환과 사고 훈련을 이어나갈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로써는 많은 사람에게 오해받고 거부당하는 일상에서 벗어나고픈 궁극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인생은 미생에서 완생으로 가는 과정이다. 완생은 결코 이룰 수 없는 꿈이지만 완생으로 갈 수 있다는 믿음때문에 우리는 늘 역사를 통해 배우고 실수를 통해 개선하는 법을 익힌다. 더 나은 삶을 만들어가는 즐거움은 무엇과도 바꾸기 어렵기 때문이다. 위험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또한 그래야 하지 않을까.
공개 사과의 기술 저자 바스텔라 교수, “유감과 통감은 사과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