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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레인 Dec 28. 2021

어쩌다 몰타살이

1. 초스피드로 가게 된 해외연수

몰타라는 낯선 나라 이름이 가끔 들렸다.

당시 블록체인 기술이 핫한 관심을 받던 때여서 몰타는 최초로 블록체인에 관한 입법을 한 나라로 일터에서 종종 몰타라는 나라이름을 듣게 되었다.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도 몰랐고 그냥 스쳐 지나쳤었다.


그러다가 오랜만에 여행 이야기가 읽고 싶어서 갔던 도서관 여행서적이 모여있는 서가에서 '아무도 모르는 누군가의 몰타'라는 제목이 눈에 띄었다. 들어봤는데 하면서 어떤 나라인지 궁금해져서 책을 빌렸다. 몰타는 이탈리아와 아프리카 대륙 사이에 지중해에 있는 섬나라다.


저자는 몰타가 오래전에 영국 식민지였고, 그래서 몰타어와 함께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며, 영어 어학원이 많고 유럽인들의 피서지로 유명하고 무엇보다 매우 안전한 나라라고 했다. 작은 나라고 산업이 발달하지 않아서 블록체인, 금융을 발전시키려고 하는구나 생각하고는 몰타는 그렇게 또 잊혔다. 

나를 몰타로 이끌어 준 책




떠나야 할 때


어느 날 학교를 다녀온 둘째 녀석이 학교를 다니는 게 너무 힘들다 했다.  해 에도 녀석이 힘들어 보여서 연수든 파견이든 사는 지역을 잠시 떠나려 했었다. 시도들이 실패로 끝나기도 했고 녀석이 한동안 잘 지내는 것으로 느껴져서 걱정을 내려놓은 참이었다. 다시 여건을 확인해 봤지만 파견 갈 수 있는 마땅한 곳이 없었다. 해외연수 외에는 길이 없었다.  


12월 초에 해외연수 프로그램 신청이 공지되었다. 다행히 토익점수가 있어서 신청이 가능했다.

1년 전 미국으로 해외연수를 간 동기가 딸이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겪었던 일을 들으니 미국이나 영국 같은 나라의 학교는 자폐증이 있는 큰 아이에게는 무리일 것 같았다.


아! 몰타는 어떨까?

불현듯 몰타가 떠올랐다.

몰타는 영어권이고 작고 여유롭고 안전하다고 했지! 블록체인 입법을 연구주제로 삼아 해외연수 신청서를 급히 작성하여 제출하였다. 그리고 해외연수로 몰타를 간 블로거를 통해서 유학원 정보를 얻었다.


아직 연수가 확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단 가능한 학교와 어학원이 있는지를 알아보았다. 다행히 둘째는 정규학교에 등록이 가능했고,

큰 아이는 어학원에 다닐 수 있었다.

해외연수 조건이 대학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만 가능하여 나는 몰타 대학으로 결정했다. 몰타는 학교나 어학원에 등록이 되어야만 6개월 이상 체류할 수 있다.


눈물 나게 힘든 출국 준비


신청한 지 20일 만에 해외연수 대상자에 선정되었다. 몰타의 학교는 1월 초에 시작되기 때문에 준비할 시간이 너무 짧았다. 선정 통보를 받고 2주 만에 몰타 가는 비행기를 탔다. 업무를 마무리하여야 했고 아이들 학교와 어학원을 등록도 해야 하고, 해외 갈 때 송금받을 통장을 만들고 혹시나 급전이 필요할까 해서 마이너스통장 한도를 늘리고...... 할 일이 태산이었다.


둘째는 정규학교에 편입하기로 하니 학교에 생활기록부와 접종 확인 증명서를 제출해야 했다.

생활기록부 영문 번역을 해서 제출해야 하는데 번역업체에 맡길 시간이 없었다.  

내가 구글 번역기와 파파고를 이용해서 새벽 3시까지 생활기록부를 영문으로 번역했다.

유학원 담당자가 일단 제출해 보자고 했는데 다행히 직인이나 번역 공증을 요구하지 않아

내가 번역한 생활기록부로 입학이 가능하였다(우리나라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유학원 담당자가 내가 번역한 생기부가 훌륭해서 놀랐단다. 구글 번역기와 파파고를 이용한 더블 체크 덕분이다.


보건소에 입력 안 된 접종기록들이 있어서 어릴 때 다녔던 소아과 병원에 일일이 전화를 해서

기록을 받아 보건소에서 제출하여 겨우 날짜를 맞춰 증명서를 발급할 수 있었다.


진짜 하루 24시간이 모자랐다.


출국 전 겨우 3일의 휴가를 받아, 제주도에 두고 갈 짐들과 가구를 지인의 컨테이너로 옮기고 몰타에 가져갈 옷들을 쌌다. 쿠쿠밥솥까지.....

비행기 수하물 비용이 안 나가도록 이민가방에 옷을 가득 담고 체중계로 무게를 확인했다.

제주도를 떠나기 전 마지막 밤에는 호텔방을 빌려 아이들을 재우고 나는 다시 집에서 짐을 고 이사하고 남은 쓰레기들을 치웠다.


새벽이 다가오는데 마무리가 안되고 며칠 동안 이사하고 짐 정리하느라 잠도 못 잔 터라

지치고 피곤했다. 정리할 게 아직도 많아 내일 비행기를 탈 수 있을까...... 눈물이 터졌다.

그 새벽에 친구에게 전화하여 펑펑 울었다.

친구로부터 다음날 자신이 치울 테니 그만 자라고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냐는 위로를 받고는

다시 힘내서 또 정리를 하였다. (최종 마무리는 친구가 해주었다.)


결국 그 밤을 꼬박 새웠다.


무사히 짐을 부치고 이스탄불행 비행기에 탑승할 때까지 긴장감에 졸린 줄도 몰랐다. 하지만 환승에 대한 걱정도 피곤함을 이기지는 못했는지 어느새 잠이 들었다.


환승의 복병

해외여행 경험도 별로 없고 그나마도 단체여행 이어서 비행 편을 환승해 본 적이 없었기에 여러 번 환승에 대한 정보를 담은 블로그를 읽고 또 읽었다.

그런데 이스탄불 공항에 내렸더니 블로그에서 봤던 사진과 안내판이 달랐다.


 우왕좌왕하다가 사람들이 많이 가는 쪽으로 따라가서 줄을 섰다. 작은 녀석은 통과, 그런데 내 여권을 보더니 여기가 아니란다. 아들 여권을 다시 달래서 찍었던 도장에 빨간펜으로 엑스 표시를 하고 가야 될 방향을 알려준다. 그쪽으로 가보니 엄청 긴 대기줄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순서가 다가오면서 사람들이 어떻게 통과하나 유심히 살폈다. 사람들은 기내용 짐을 다시 검색대에 올리고 여권에 도장을 받고 있었다.

총을 멘 사람들이 검색대에 직원들과 함께 있었다.

작은 아들이 캐리어를 하나 맡고 내가 또 하나의 캐리어와 캐리어 위에 올리는 가방을 맡았는데 검색대에서 가방이 통과된 후에 나를 다른 곳으로 데려가서는 가방 속을 보여달라고 한다. 그 가방 속엔 소중한 쿠쿠 전기밥솥이 들어 있었다. 


빨리 꺼내란다. 엄청 당황했다.

깨질까 봐 뽁뽁이로 싼 전기밥솥을 보고 이게 뭐냐고 묻는다. 밥을 만드는 거라고 해도 포장을 뜯으라고 했다.  그 많은 사람들 속에서 뽁뽁이를 뜯어서 보여주니 밥솥뚜껑을 열어보고는 패스. 

아들들은 총을 멘 사람이 옆에서 지켜보니 무섭고 놀란 것 같았고 나는 밥솥으로 생긴 당황이 어느새 부끄러움으로 변하고 있었다.  


드디어 몰타


그렇게 우리는 무사히(?) 비행기를 환승하고 몰타에 도착하니 아침이었다.

공항에서 짐을 찾아서 다시 검색대를 통과하고 나오니 집을 구하는 동안 지낼 임시숙소로 데려다줄 분이 내 이름이 적힌 종이를 들고 서 계셨다.

온통 황토색인 건물 사이를 여기저기 누비던 차가 어떤 건물 앞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황토색 건물에 원색 창틀이 알록달록하다

임시숙소는 건물의 1층이었지만

엘리베이터 없이 아파트 입구에서 1층까지 5개 정도의 계단을 올라가야 했다.

힘겹게 짐을 다 옮기고 임시숙소에 도착하니 그제야 안도가 되었다.

우리는 사발면으로 점심을 먹고 가져온 햇반과 참치캔으로 저녁을 먹었다.


다음날은 일요일이었고, 월요일부터 작은 아들이 학교를 가야 했기 때문에 걸어서 학교 위치를 확인했다.  편의점에서 파는 찰기 없는 쌀로 한 밥을 아이들이 먹지 않아서 돌아오는 길에 아시안 마켓에서 쌀 10kg을 사서 들고 숙소로 오는데, 쉬었다 걸었다를 여러 번 반복한 끝에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아들과 함께 걸어서 학교에 갈 때 풍경이 잊히지 않는다.

학교는 해안가에 있는 슬리에마라는 마을에 있었는데 바다 위에 요트들과 햇살이 아름다웠다.


슬리에마에서 본 일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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