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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otbus Apr 15. 2022

누가 발작 버튼을 눌렀을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한 꺼풀 들춰보기, 두 번째 이야기

 2022년의 러시아는 ‘타타르의 멍에’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지난 2022년 2월 말 우크라이나를 무력 침공한 지 어느덧 두 달이 다 되어가고, 러시아군은 공세 종말점에 도달하여 전열 재정비에 들어갔다. 블라디미르 푸틴은 왜 무력 침공이라는 악수(惡手)를 두면서까지 우크라이나에 집착하는 것일까? 단순히 경제적·지정학적 이유만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풍부한 자원에 초점을 맞추거나, 대륙의 모스크바 턱밑까지 미국이라는 해양세력이 영향력을 끼치는 것을 막으려는 것은 개별적인 요인에 불과하다. 근본적으로 러시아라는 국가의 정체성에 더욱 천착하여 생각해보면, 옛 키예프 루스와 슬라브 문명의 유일한 계승자임을 강조하는 러시아에게 누군가 공포심을 자극해 그들을 ‘발작’하게 만든 것이다. 그 누군가는 곧이어 후술 할 외부세력인, 미국과 EU이다.

 

 반면, 미국과 EU는 그들의 집단안보동맹인 NATO의 구성원도 아닌, EU의 회원국도 아닌 우크라이나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크라이나 주권의 유린을 보호하고자 하는 것은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하다. 이 또한 기독교 문명권의 서유럽을 매우 놀라게 만든 누군가가 있었기에 이들이 ‘무척 예민’해진 것이다. 바로 전술한 러시아 때문이다.


1차세계대전 이후 20세기 초중반의 유럽 세력구도를 보여준다. (당시 우크라이나는 소련의 영토에 편입된 상태에 있었다.)


 서유럽 문명권과 슬라브 문명권의 충돌은 비단 오늘날 푸틴에 의해 촉발된 사안이 아니다. 시간을 거슬러 나폴레옹이 유럽 전체를 혼란으로 빠뜨렸던 19C 초반으로 눈을 돌려보자. 1815년 나폴레옹 몰락 이후 엉망이 된 유럽의 세력 질서를 정리하기 위해 영국·오스트리아·러시아 등의 열강들이 오스트리아 빈에 모여 새로운 국제질서에 합의한다. 이것이 바로 빈 체제로 불리는 ‘Concert of Europe'의 탄생이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에서 영국과 프랑스 등 서유럽의 통치자들은 러시아 군대에 의해 보수·반동적인 빈 체제가 자리 잡아가는 광경을 바라보며 생경함과 더불어 공포심을 가지게 된다. 자신들의 문명권과 달리 야만적이고 덜 계몽되어있다고 생각해온 슬라브 문명의 세력이 유럽 대륙 깊숙이 돌아다니며 각 지역의 질서를 위압적으로 정리하는 모습에서 두려움을 느낀 것이다. 이후 서유럽 열강은 러시아의 팽창과 남하를 미리 예방하고자 사력을 다한다. 

 1856년 크림전쟁은 제정 러시아가 흑해 방면의 진출을 도모하기 위해 남하하여 오스만 투르크제국과 벌인 전쟁이지만, 그 이면에는 서유럽 문명의 대(對) 러시아 예방전쟁의 성격이 강하다. 슬라브 문명의 맹주를 자처한 러시아를 견제하려던 영국과 프랑스는 오스만 투르크를 지원하여 ‘슬라브 봉쇄’를 성공적으로 이끈 것이다. 이후에도 러시아의 흑해 방면의 팽창은 사사건건 좌절된다. 


 시간이 지나 냉전적 질서가 시작되자 미국은 영국·프랑스를 위시한 서유럽 국가들과 NATO의 원형이 되는 안보협의체를 결성한다. 그 목적은 소련에 의한 공산화의 압박에서 서유럽 문명을 지키고자 하는 것이었다. 북대서양 조약기구 (NATO) 형성 초기에는 서유럽 국가들은 이러한 소련의 안보위협을 체감하지 못했다. 하지만, 소련의 지원에 힘입어 발발한 한국전쟁으로 인해 슬라브 문명권의 팽창 욕망이 정치 이념을 넘어서도 존재함을 확인하자 NATO의 제도화를 서둘렀다. 물론 김일성의 불법 남침이 한국전쟁의 근인(近因)이겠지만, 이 전쟁을 후방에서 지원한 스탈린의 소련이 가진 의도는 동북아시아로 자유 진영의 시선을 돌려 동유럽지역의 영향력 확대에 집중하고자 한 것이었다. 그 결과, NATO는 냉전기 소련으로 포장된 슬라브 문명권의 팽창 위협으로부터 방어하는 서유럽 문명권의 안보정책의 산물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NATO는 우크라이나를 통해 팽창하려는 푸틴의 러시아를 다시금 막아서려고 후방에서 지원하고 있는 것이다.



 20세기에 제정·공산주의 연합의 리더·민주주의의 다양한 정치체제를 거쳐온 러시아는 이제 푸틴에 의한 권위주의 정권으로 변모한 상태이다. 그러나 러시아의 정체성은 변하지 않았다. 제정 러시아 당시 자국의 팽창을 방해하는 서유럽 열강에 대한 불편한 심기는 소비에트 러시아(소련)에도 이어졌다. 물론 2차 세계대전을 맞이하여 나치 독일에 의해 다소 사그라들었으나, 소비에트 러시아는 종전 후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주의 진영에 대한 공포심을 다시 느끼고 냉전의 한 축에서 공산주의 진영의 맹주로 20세기 중후반까지 호령한다. 소련의 급작스러운 해체 이후 경제적으로 형편없는 현실을 마주한 러시아는 푸틴을 만나 ‘신 유라시아 주의’라는 개념을 주창하며 서유럽과 (궁극적으로 미국)에 대한 적대감을 다시금 극대화하고 있는 상태다.


 푸틴과 러시아의 위정자들은 서유럽 문명권에 대한 공포심에 기인한 러시아 민족주의의 지지에 힘입어 우크라이나를 희생양으로 삼아 그들의 두려움을 방출하고 있다.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한 러시아인들은 과거 몽골의 지배를 무려 300여 년 동안 받았던 ‘타타르의 멍에’를 치욕의 역사로 기억하고 있으며, 타 문명에 대한 경계심이 높다. 그동안 이들은 슬라브 문명의 오랜 영역인 우랄산맥 서쪽, 볼가강 유역의 터전을 가장 중요한 사활적 이익으로 삼고, 동유럽·발칸반도·흑해 및 코카서스 지역· 중앙아시아지역을 방어선으로 설정해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슬라브인의 발원지라고도 할 수 있는 우크라이나가 서유럽 문명의 영향력에 편입될 가능성이 커지자 민족주의적인 일부 러시아 민중들이 크게 자극받은 것이다. 

 본래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함께 키예프 루스의 후예이나 그 이후 러시아와는 독자적인 역사를 구축해온 국가이다. 그런데 러시아인에겐 우크라이나는 자국의 역사에서 회복해야 할 고토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내재해있다. 이러한 비뚤어진 민족주의는 푸틴의 권위주의 정권에서 정당성 확보의 중요한 명분이 되었고, 이들의 지지에 힘입어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전격 침공했다고 할 수 있겠다.


# 참고 문헌
- 김용구, 『세계외교사』
- 에릭 홉스봄, 『자본의 시대』,『제국의 시대』,『극단의 시대』
- 폴 케네디, 『강대국의 흥망』
- 이수형.(2010).유럽과 동북아 안보에 미친 한국전쟁의 영향 : 냉전의 평화와 갈등의 비대칭 구도 정립.GRI 연구논총,12(3),229-248.
- 신범식.(2010).다자 안보협력 체제의 이해.국제관계연구,15(1),5-43.

@Brotb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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