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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칸나의 그림책방 Oct 13. 2018

농부가 되고 싶은 아이

아이에게 배우는 꿈꾸는 삶, 그 행복에 관하여

내가 가르치는 아이 중 초등학교 2학년 남자아이가 있다. 똘똘하고 공부도 잘하는. 일반적으로 봤을 때 모범생에 속하는 그런 아이. 호기심도 많고, 책도 많이 읽는 똑똑한 친구다. 공부만 잘할 것 같지만 축구도 엄청 잘하고, 새침할 것 같지만 본인 동생은 엄청 챙기는 그런 반전 있는 아이.  


요즘 식물 키우기에 맛 들인 그 친구가 꿈이 의사에서 농부로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수업시간에 식물에 관련된 그림을 그리면 어떨까 하고 아이의 엄마께서 제안을 해주신 것이다.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라 농촌에는 가보지도 못한 친구인데 농부가 되겠다니.  이렇게 빠르게 급변하는 4차 혁명 시대에. 초등학생 장래희망 1위가 '크리에이터'인 이 시대에. 모든 아이들이 코딩 학원을 다니는 이 시대에 '농부'가 되겠다는 아이!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나는 피식 웃었다. 귀엽기도 하고, 엉뚱하다는 생각도 들어서. 공부를 잘하니까 식물학자나 식물과 관련된 연구를 하는 사람이 되려나 보다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큰 고민 없이 농사에 관련된 그림을 그려보자고 수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수업시간 내내 정말 열심히. 열정을 담아서 상상하고 그려보는 아이를 보니, 처음의 그 웃음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이 아이는 진심으로 사랑하는 무언가를 찾은 것처럼 보여서.


왜 농부가 되고 싶냐는 물음에, 넓은 땅에서 여러 가지 작물들도 키울 수 있고, 본인이 수확한 농작물을 직접 먹을 수도 있고. 또 자연과 함께 살 수도 있어서. 식물학자보다는 직접 농사를 짓는 농부가 되고 싶다는 아이. 시골에 살아본 적은 없지만, 시골도 나름의 장점이 분명 있을 거라고 똑소리 나게 대답한다.


평생을 농부로 살아온 나의 할머니를 보면서,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정말 고되기만 한 것이라는. 농사란, 농부의 모든 삶을 땅에 바쳐야 하는 육체노동이라고만 생각해온 나였다. 나의 부모는 적어도 농사는 짓지 않으려 도시로 이주했고, 도시의 노동자로 나를 키웠기에. 농사를 짓는 것은 다시 뒤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은연중의 인식이 있었던 것이다.


농부가 된다는 아이에게 어떤 반응을 보이는 것이 적절할까. 순간적인 고민이 들었다.  엄마가 뭐라고 말씀하시냐고 물으니 '농사는 정말 힘들겠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이 맞는 것이라'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이상적이고, 올바른 대답이었다. 문득 이 엄마에 대한 존경심이 들기도 했다. 어쩌면 아이가 아직은 어리기 때문에 이런 멋진 대답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아이가 자라서 농부가 될지 아닐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분명한 사실은 자라면서 수십 번 꿈이 바뀔 것이고, 어떤 순간이 되었을 때는 현실과 타협도 하게 될 거라는 것이다.


비록 한 시간 수업하는 미술 선생일 뿐이지만, 아이를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어떤 생각과 태도로. 어떤 철학을 가지고 아이를 대해야 할지 언제나 고민한다. 그리고 매일매일 아이들에게 정말 많은 것을 배워간다.


삶은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누군가 말했던 것처럼,

이렇게 자신이 좋아하는 일. 사랑하며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알아가는 그 과정을 연습시켜주는 것이 내가 할 일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무언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이 있는 것. 열정을 쏟을 수 있는 일이 있는 삶이란 정말 축복받은 것 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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