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 플러스는 넷플릭스의 적이 아니다. 동반자다.
2019년 11월 8일에 처음으로 공식 명칭과 로고가 공개된 디즈니의 새로운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즉 OTT 서비스인 디즈니 플러스가 드디어 실체를 드러냈다. 지난 11월 12일에 1차로 미국, 캐나다, 네덜란드 오디언스를 대상으로 상용화된 디즈니 플러스는 오픈 첫날에만 가입자수가 1천만 명을 돌파한 것으로 알려졌다. 예고된 대로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의 영화에 애니메이션을 비롯해 마블 스튜디오,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작품들과 루카스 필름의 <스타워즈> 시리즈 그리고 20세기 폭스와 내셔널 지오그래픽 등 디즈니 산하의 콘텐츠를 시청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첫 해에만 7500편 이상의 TV시리즈와 500편 이상의 영화를 스트리밍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이후에도 서비스 전인 디즈니 산하의 작품들의 라인업을 늘려 나가고 새롭게 제작될 오리지널 타이틀을 순차적으로 발표할 예정이다. 무엇보다도 디즈니 플러스에서만 볼 수 있는 오리지널 타이틀을 제작한다는 사실이 관심을 끄는데 디즈니 플러스는 서비스 오픈과 함께 <스타워즈> 시리즈의 첫 스핀오프 드라마인 <만달로리안>을 공개했다.
흥미로운 건 디즈니 플러스의 월정액 구독료가 6.99달러, 한화로 약 8천 원 수준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심지어 연간 구독료 69.99달러를 결제하면 한 달에 5.83달러 수준의 금액으로 디즈니 플러스를 구독할 수 있다. 심지어 네 사람이 자신의 디바이스로 동시에 접속해 각기 다른 콘텐츠를 시청할 수 있다. 디즈니 플러스의 강력한 대항마로 꼽히는 넷플릭스가 1인 1계정 접속만 가능한 최소 금액대의 월 정액료가 9500원 수준인 것을 고려하자면 상당히 파격적인 가격대다. 심지어 6달러 정도를 추가한 12.99달러의 번들 패키지 옵션을 선택하면 디즈니 플러스 외에도 디즈니가 소유한 스트리밍 서비스인 훌루와 ESPN 플러스까지 시청이 가능하다. 자본력과 멀티채널을 소유한 엔터테인먼트 그룹으로서 장점을 극대화시켜 경쟁력의 우위를 장악하고 시장성을 빠르게 확보하겠다는 야심이 느껴진다.
디즈니 플러스는 2024년까지 최소 6천만에서 최대 9천만 명 이상의 구독자 확보를 목표로 두고 있다. 호주와 뉴질랜드에서는 11월 19일에, 영국, 프랑스, 스페인 등의 서유럽 국가에서는 내년 3월에 서비스를 오픈할 예정이며 아시아 지역은 2020년부터 2021년까지 완료할 예정이다. 그러니까 늦어도 2021년 안에는 한국에서도 디즈니 플러스를 시청할 수 있다는 것이다. 2년 안에 전 세계적인 OTT 서비스 플랫폼으로 거듭난다는 디즈니 플러스의 계획은 필연적으로 세계적인 OTT 서비스 플랫폼으로 통용되는 넷플릭스와의 경쟁이 불가피해 보인다. 동시에 디즈니 플러스보다 앞선 11월 1일에 애플 역시 OTT 서비스인 애플TV 플러스를 공개하며 100여 개 국가에서 서비스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구독료는 4.99달러로 디즈니 플러스보다도 낮다. 스타 배우들이 출연하는 오리지널 시리즈 제작과 함께 HBO, 쇼타임 등 유수의 케이블 채널에서 제작된 시리즈를 함께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 시스템을 개발 중이다. 아쉽게도 애플TV 플러스 서비스 국가에 아직 한국은 포함되지 않았지만 확실한 건 디즈니도, 애플도 OTT 서비스의 초기 단계부터 글로벌 시장에서의 서비스를 확대할 계획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오직 넷플릭스에서만
디즈니와 애플이 글로벌 OTT 서비스 사업에 진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뒤 전 세계 언론은 이들 업체와 넷플릭스의 경쟁에 관심을 가졌다. 특히 예상보다 저조했던 2019년 2분기 실적 발표와 미국 내에서만 13만 명 정도의 유료 구독자 수가 감소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넷플릭스의 미래에 빨간 불이 켜진 듯했다. 예상보다 저조한 실적을 발표하게 된 넷플릭스가 디즈니와 애플이라는 공룡과의 경쟁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의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리고 넷플릭스의 최고경영자인 리드 헤이스팅스는 이렇게 말했다. "근본적으로 큰 변화는 없다. 이건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사람들은 보다 다양해진 쇼를 즐길 것이다. ‘스트리밍 전쟁’의 매력은 이 산업을 건설해 나가는 과정을 더욱 주목받게 만드는 위대한 경쟁이라는 데 있다. 그런 이유로 소비자들은 TV 채널에서 스트리밍 서비스로 더욱 빠르게 이동할 것이다.” 그러니까 디즈니와 애플을 비롯한 수많은 기업들이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즉 OTT 서비스 사업에 뛰어들고 있는 건 넷플릭스 입장에서 결코 위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넷플릭스가 주도해온 OTT 서비스 산업의 팽창을 가속화시켜 주류 산업으로 완전히 이동할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이다.
“넷플릭스가 2016년에 글로벌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하기 전까지 미국 내에서 훌루와 아마존 프라임과 경쟁해왔다. 그런데 2019년에도 그 모든 회사가 이상해진 곳 하나 없이 각자의 위치에서 잘해오고 있다. 아마존 프라임은 플랫폼 운영에 잘 집중해왔고, 훌루는 라이브 중계 콘텐츠에 진출하며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마련했다. 그리고 넷플릭스는 <기묘한 이야기>처럼 독자적인 타이틀을 개발하며 콘텐츠 시장을 확보해 나갔다. 결국 그렇게 자기가 잘하는 걸 해 나가면서 OTT 시장성을 점점 키워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리드 헤이스팅스는 디즈니 플러스나 애플TV 플러스가 OTT 서비스 산업에 들어오면 시장의 규모가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얘기를 한 것이다.” 넷플릭스 코리아의 언론담당 매니저 조현준의 말처럼 넷플릭스는 그리고 OTT 서비스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산업이다. 포화상태의 광장이 아니라 여전히 물음표로 남겨진 미지의 영토라는 것이다. 물론 디즈니 플러스나 애플TV 플러스의 성장이 넷플릭스에 손실을 입힐 확률이 있겠지만 OTT 서비스의 인식과 경험을 확대하면 오히려 동반 성장의 가능성도 무궁무진하다. 이는 넷플릭스가 지난 경험을 통해 얻어낸 확신이기도 하다.
미국 내 DVD 대여 서비스로 시작된 넷플릭스의 사업은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로, 케이블 채널의 콘텐츠를 중계하는 것을 넘어 오리지널 타이틀을 제작하는 사업으로, 미국 내에 거점을 둔 서비스에서 세계 각지로 진출해 거점을 확장하는 지금의 단계로 이르렀다. OTT 서비스라는 것이 익숙하지도 않던 시절에 해당 산업을 견인한 기업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면에서 넷플릭스는 OTT 서비스 산업의 스타벅스나 다름없는, 이거 정말 상징적인 이름으로 인식되는 업계의 선두주자인 셈이다. 지난 10월 16일에 발표한 2019년 3분기 실적에서 넷플릭스는 역대 3분기 실적 중 사상 최대치를 달성했다고 공표했다. 2분기에 전망한 700만 명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677만 명의 유료 구독자가 증가했고 이로서 전 세계적으로 1억 5천8백만 명 이상의 유료 구독자수를 확보했다. 넷플릭스는 이런 성장의 배경에는 <기묘한 이야기> 시즌3을 비롯한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타이틀을 비롯한 매력적인 콘텐츠의 힘이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디즈니 플러스와 애플TV 플러스를 비롯한 OTT 서비스와의 경쟁에서 자신감을 피력하는 것도 바로 좋은 콘텐츠의 저력을 믿기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넷플릭스의 자신감은 현지화 정책을 통해 오리지널 타이틀을 제작하고 수급하는 과정에서 확보한 콘텐츠의 다양성이 시장성의 확대로 이어진다는 경험에서 비롯된다. 이를 테면 지난 1월에 공개된 <킹덤>은 넷플릭스 최초의 한국 오리지널 타이틀이란 점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드라마 <시그널>의 김은희 작가가 대본을 쓰고, 영화 <터널>의 김성훈 감독이 연출을 맡았으며 주지훈, 류승룡, 배두나 등의 톱배우들이 출연한다는 점만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킹덤>의 화제성은 넷플릭스에 대한 인지도나 다름없었다. 앱/리테일 분석 서비스 ‘와이즈앱/와이즈리테일’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2018년 12월까지 국내에서 넷플릭스를 사용하는 유료 구독자수는 90만 명 남짓으로 추산됐지만 2019년 2월에는 121만 명으로, 4월에는 170만 명까지 증가했다. 그 뒤로 지속적인 상승세를 기록하며 지난 10월에는 200만 명 이상의 유료 구독자수가 추정되는 것으로 발표됐다. 이는 넷플릭스의 국내 구독자를 늘리는데 <킹덤>의 영향력이 적지 않았을 것이라 짐작된다. 동시에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타이틀은 넷플릭스가 서비스되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든 존재한다. <킹덤>은 27개 언어의 자막과 11개 언어의 더빙을 통해 전 세계 190여 개 나라의 넷플릭스 구독자들에게 공급된다. 덕분에 미국 내에서 <킹덤>을 본 넷플릭스 구독자들로 인해 ‘갓’이 주목을 받기도 했는데 박준형의 출연하는 <와썹맨> 광장시장 편에서 그 영향력을 체감할 만한 순간이 등장한다. 광장시장의 전통한복 가게 주인이 <킹덤>을 본 외국인들이 갓을 많이 사간다고 말하는 것. 뜻밖이지만 글로벌 OTT 서비스의 영향력이 피부로 와 닿는 순간이었다.
“넷플릭스는 한국 시장만큼이나 한국 콘텐츠도 소중하게 생각한다. 인도나 말레이시아 사람이 자기 방에서 한국 콘텐츠를 볼 수 있는 세상이 됐기 때문이다. <킹덤>은 한국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었지만 아시아와 미국을 비롯한 해외에서도 인기를 얻었다. 전 세계적으로 한국 콘텐츠에 대한 요구가 상당하다. 그만큼 넷플릭스에서는 한국시장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조현준 매니저의 말은 넷플릭스가 바라보는 한국시장에 대한 매력이 시장성만큼이나 역동적인 콘텐츠 생산기지로서의 역할에 있다는 의미처럼 들린다. 실제로 아시아에 넷플릭스 사무실이 자리하는 지역은 허브 오피스가 존재하는 싱가포르를 제외하면 일본, 인도, 한국뿐이다. 일본의 애니메이션과 인도의 발리우드 그리고 한국의 K콘텐츠까지, 세 나라는 각기 다른 강점이 있는 영상 콘텐츠 생산이 활발한 국가라는 공통점이 있다. 다양한 킬러 콘텐츠를 발굴하고 구비하는 것이 OTT 서비스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라는, 경험에서 비롯된 확신이 느껴진다.
OTT 서비스의 뉴웨이브
국내 OTT 서비스 산업에도 새로운 물결이 일고 있다. 지난 9월 18일에 론칭한 국산 OTT 서비스 플랫폼인 웨이브는 KBS, MBC, SBS 지상파 방송국 3사가 운영하던 ‘푹’과 SK브로드밴드에서 운영하던 ‘옥수수’를 통합한 OTT 서비스다. 지상파 3사의 지분 합작 구조에 SK텔레콤이 지분 증자 형식으로 손을 잡은 것으로 방송국 3사의 콘텐츠를 기반으로 운영되며 SK텔레콤에서 마케팅에 힘을 싣는다. 매월 구독료 100원으로 3개월간 이용할 수 있는 혜택을 SK텔레콤 이동통신 가입자에게 제공하는 프로모션을 진행하기도 했는데 이는 디즈니 플러스가 미국 최대 이동통신사 버라이즌과 무제한 데이터 이용 고객에게 1년간 디즈니 플러스 이용권을 제공하는 제휴를 맺은 것과 유사한 전략이다. 모바일 빅데이터 업체 아이지에이웍스에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9월 한 달 동안 웨이브 사용자가 264만 명에 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217만 명으로 추측되는 넷플릭스 사용자보다 높은 수치이기도 하다. “가입자 수로만 보자면 당초 기대보다 분명 폭발적이다. 정책상 정확한 수를 밝힐 수는 없지만 상당히 많은 구독자 증가가 발생했다. 2023년까지 500만 명 이상의 유료 구독자를 확보하는 것이 목표인데 일단 올해 목표는 무난하게 달성할 거 같다.” 웨이브 커뮤니케이션 전략부 김용배 부장의 말이다.
웨이브는 지상파 3사에서 방송되는 콘텐츠의 실시간 방송과 지난 프로그램의 스트리밍 서비스는 물론 일부 종편과 케이블 채널의 콘텐츠의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한다. 또한 국내외 영화와 TV시리즈를 수급해 함께 서비스한다. 다만 지상파 3사의 프로그램을 독점적으로 제공하는 스트리밍 서비스 플랫폼인 것만은 아니다. 지난 9월 30일에 KBS에서 방영된 드라마 <조선로코-녹두전>은 웨이브에서 100% 제작 투자한 첫 오리지널 타이틀로 TV로 방영하기 전 웨이브에서 스트리밍 서비스로 선공개됐다. “2023년까지 3천억 규모의 제작비를 투자해 오리지널 타이틀을 확보해서 완전히 유통망의 역할을 할 예정이다. 아무래도 국내에서 지분을 가진 OTT 서비스인 만큼 국내 콘텐츠에 직접 투자하거나 투자를 끌어와서 작품을 공급하는 구조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보고 있다. 단순히 마케팅을 통해 플랫폼 구독자를 늘리는 것보다 콘텐츠에 투자해서 웨이브 오리지널 타이틀의 패키지를 강화해 나가는 게 목표다. 그런 과정이 2~3년 누적되면 웨이브 콘텐츠에 대한 인식이 생기고 해외 유통까지도 가능한 수익 모델을 찾아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김용배 부장의 말은 콘텐츠를 통해 OTT 서비스 생태계의 비전을 확보하려는 넷플릭스의 방법론을 떠올리게 만든다.
몇몇 언론 매체에서는 웨이브가 넷플릭스의 대항마라 언급하는 경우도 있는데 실제로 웨이브가 출범한 배경에는 국내 콘텐츠 시장에서 확대되는 넷플릭스의 영향력에 대한 위기의식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해외자본으로 투자받는 걸 부정적으로 볼 일은 아니지만 넷플릭스에만 의존하는 경향이 생기는 건 문제라는 인식이 있었다. 물론 글로벌 사업자로서 넷플릭스가 전략적인 선택을 하는 건 당연하다. 다만 넷플릭스의 투자 여부에 따라 국내 제작사나 방송사가 휘청거려선 안 되는 거니까 지속적으로 국내 기반으로 서비스하고 투자와 공급의 선순환이 가능한 수준으로 성장할 수 있는 OTT 서비스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김용배 부장의 말처럼 최근 국내 드라마 제작 환경에서 넷플릭스가 미치는 영향력은 상당하다. <킹덤>이나 <좋아하면 울리는>과 같은 오리지널 타이틀의 제작에 참여하기도 하지만 제작비를 투자하는 형식으로 작품의 스트리밍 판권을 구입하는 경우도 많다. <지정생존자 60일> <보좌관> <아스달 연대기> <봄밤> <베가본드> <동백꽃 필 무렵> 등이 그런 작품인데 공중파와 종편, 케이블 채널까지 넷플릭스의 영향력이 닿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다. 결국 넷플릭스라는 초국적 OTT 서비스에 대항하기 위한 자국 OTT 서비스가 등장한 셈이다.
사실 넷플릭스의 제작 투자 방식이 국내 콘텐츠 제작 생태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건 아니다. 국내에서 가용할 수 없는 규모의 제작비를 충당함으로써 제작 환경의 스케일이 달라지고 다양한 제작 종사자들의 먹거리가 늘어남으로써 제작 생태계가 원활해지는 측면도 있다. 다만 콘텐츠 제작 환경의 자생력이 필요하다는 위기의식도 분명 유효한 관점이다. 동시에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도태될 수 있는 기성 매체의 한계를 돌파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모바일 리서치 기관은 오픈서베이에서 제공한 콘텐츠 트렌드 리포트 2019에 따르면 동영상 콘텐츠를 시청하는 디바이스로 중고생과 대학생들이 주로 활용하는 건 스마트폰이라 답한 비중이 전체 응답자 1000명 중 67.9%를 차지했는데 응답자 대부분이 중고생과 대학생 군으로 집계됐다. 연령대가 높을수록 TV 시청률이 높게 파악됐다. 또한 월정액 유료 시청 비중이 전년 대비 20% 증가 추세를 보인다고 발표됐다. 이는 스마트폰과 같은 포터블 디바이스를 통한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를 소비하는 계층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의미다. 그런 면에서 OTT 서비스의 강화는 시대적 흐름에 부합하는 시도인 셈이다. CJ ENM과 JTBC가 합작하여 CJ ENM 계열 방송사 프로그램을 스트리밍 서비스하던 플랫폼 티빙을 새로운 OTT 서비스 플랫폼으로 출범하자는 MOU를 체결한 것 역시 이런 시대적 요구에 적응하기 위한 필연적 선택일 수밖에 없다.
한편 2012년에 서비스를 시작한 영화 평점 앱 왓챠에서 운영하는 영화 OTT 서비스 왓챠플레이는 2년여 만에 빠르게 성장한 플랫폼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유저들이 직접 영화의 별점을 매기고 리뷰를 작성하는 앱 서비스였던 왓챠는 스마트폰 시대에 적합한 서비스 모델을 기민하게 찾아낸 사례라 할 수 있다. 이런 사업성을 기반으로 2017년 왓챠플레이를 론칭한 뒤 2년 만에 국내 OTT 서비스 시장에 자리 잡았다. “2012년부터 왓챠를 운영하면서 축적한 데이터를 분석하면서 사람들의 수요를 파악할 수 있게 됐다. 오래전에 개봉한 영화라 해도 관람을 원하는 수요가 분명 존재한다는 걸 확신했고 이걸 해결해주자는 전략이 잘 먹혔다고 본다. 동시에 2년 전만 해도 국내 OTT 서비스 시장의 경쟁이 지금만큼 치열하지 않았기 때문에 운도 많이 따라준 것 같다.” 왓챠 홍보팀의 허승 매니저의 말이다. “작품을 수급할 때 데이터를 참고해서 얼마나 많은 구독자가 감상을 원할지 미리 예측해본다. 유명한 작품이라 해도 왓챠플레이 구독자들의 선호도가 떨어지는데 가격대가 비싸다면 수급할 필요성이 떨어져 보인다. 세부 데이터가 작품 수급 여부를 결정하는데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 셈이다.” 왓챠플레이는 박찬욱 감독의 드라마 <리틀 드라마 걸>을 비롯해 <체르노빌>이나 <킬링이브>를 독점으로 스트리밍 서비스하며 주목받았다. 구독자들이 선택한 작품을 통해 확보된 취향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다른 스트리밍 서비스 플랫폼에서 쉽게 선택하지 못한 수작들의 수요가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파악해냈다는 사실이다.
넷플릭스가 전 세계적인 콘텐츠 파급력을 보여주면서 OTT 서비스의 생태계에 보다 역동적인 흐름을 형성됐다. 그리고 OTT 서비스의 경쟁이 심화되고, 콘텐츠 제작의 수준이 높아진다는 건 결국 소비자들에게는 어떤 식으로든 이로운 일이다. 다양한 플랫폼이 등장하고 저마다 좋은 콘텐츠를 확보하거나 제작하기 위한 노력이 보다 중요하게 여겨진다는 건 그만큼 수준 높은 콘텐츠를 볼 기회가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쩌면 취향이 전부인 거 같다. 넷플릭스에 보고 싶은 콘텐츠가 있다면 그걸 보기 위해 구독하는 거다. 하지만 1년 약정으로 가입하는 게 아니니까 한 달 동안 볼만큼 봤다고 생각하면 구독을 끊을 수도 있는 거고, 다른 플랫폼으로 이동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조현준 매니저의 말처럼, OTT 서비스가 확대되고 경쟁이 심화될수록 소비자의 선택지는 넓어질 것이다. 동시에 기존의 방송사 채널과는 다른 방식으로 콘텐츠를 선택하는 경험이 쌓여간다는 건 미디어 생태계가 이미 새롭게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리드 헤이스팅스의 말처럼 “TV 방송 시대는 2030년까지만 지속될 것”이라 장담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이미 TV가 없어도 볼 수 있는 시대가 온 것만큼은 확실하다. 어쩌면 TV 자체가 방송을 수신하는 매체가 아니라 스마트폰과 함께 선택 가능한 디바이스로 이미 변모한 것일지도 모른다. 무엇보다도 감상의 선택지는 점점 넓고 다채로워질 것이다. 그에 따라 다양한 플랫폼을 구독해야 한다는 피로감이 커질지도 모르겠지만 다양한 콘텐츠를 선택할 수 있다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이에게 이는 반가운 변화임에 틀림없다. 심지어 불필요한 광고를 보지 않아도 된다. 그렇게 이미 혁신은 시작됐다.
('Esquire Korea' 2019년 12월호에 게재된 칼럼을 재편집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