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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용준 Dec 25. 2019

네이버 검색어를 팝니다

네이버의 슬로건은 '세상의 모든 지식'이었다.

2018년 5월 9일, 한성숙 네이버 대표는 기자간담회를 열고 “올해 3분기 이후부터 네이버는 뉴스 편집을 하지 않겠다”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기존의 뉴스 편집 방식에서 벗어나 언론사 사이트로 연결하는 아웃링크 도입을 추진하겠다는 것과 네이버 모바일 앱의 첫 화면에서 검색창만 남기고 뉴스나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이하 ‘실검’)를 비롯한 서비스를 노출하지 않겠다는 구체적인 안을 발표했다. 그리고 10월 10일에 열린 ‘네이버 커넥트 2019’에서 검색창인 그린 윈도와 인터렉티브 버튼인 그린닷만 노출되는 모바일 앱의 첫 화면의 인터페이스를 처음으로 공개했다. 한성숙 대표는 개편 이유에 대해 이와 같이 말했다. “내부적으로 10-20대 이용자들의 움직임이 점점 떨어지면서 ‘네이버는 30-40대 서비스냐’란 의견이 많았다. 첫 화면에 들어왔을 때 주는 인상이 많은 영향을 준다고 생각했다.”


당시 네이버의 모바일 앱 개편 이슈에서 주목을 받았던 건 뉴스를 제외한 검색 위주로 전환된 모바일 첫 화면을 구성한다는 것이었다. 포털사이트 뉴스 서비스 댓글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네이버의 책임론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여론조사 공정에서 2018년 4월에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포털의 뉴스 서비스 개편 필요성을 묻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 중 64.3%가 개편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사실상 국내 포털사이트 중 압도적인 접속자 수를 가진 네이버가 여론조작을 방치하는 공범 역할을 했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정치권의 공세도 만만치 않았다. 네이버 입장에서 뉴스 서비스는 양날의 검이었다. 결단이 필요했다. 


“지금까지 뉴스 배열 담당자가 5개 뉴스와 2개 사진기사를 선정해 3천만 명의 이용자에게 동일하게 제공하던 일은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했다.” 한성숙 대표가 말하는 5개 뉴스와 2개 사진기사는 네이버 첫 화면에서 노출되는 주요 뉴스를 의미한다. 첫 화면에 노출되는 기사의 영향력은 상당한 것이었다. 그만큼 네이버가 취사선택한 기사가 여론을 좌우한다는 점에서 실질적인 언론사 역할을 하고 있다는 비난에 직면했으며 이에 따른 내부적인 고민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2013년부터 독자들이 언론사를 직접 구독하고, 언론사가 직접 자사의 뉴스 페이지를 편집하는 뉴스스탠드를 발표하며 뉴스 서비스를 개편한 것도 이런 고민의 발로였을 것이다. 모바일 앱의 첫 화면에서 뉴스 서비스를 노출하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다. “뉴스 편집 방식을 버리고 공간과 기술만 제공하는 역할로 물러나 네이버 본연의 모습인 정보와 기술 플랫폼에서 새로운 답을 찾을 것”이라는 한성숙 대표의 말에는 네이버의 모바일 앱 개편에는 뉴스 서비스 개편에 대한 의지도 반영돼 있음을 시사한다. 


네이버의 역습

지난 11월 28일 오전 6시경, 네이버가 개편된 급상승 검색어 서비스를 공개했다. 육안으로 봐도 확실한 변화가 느껴졌다. 일단 1위부터 10위까지의 실검 순위 상단에 두 개의 검색어 설정 버튼이 생겼다. ‘이슈별 묶어보기’라는 버튼은 검색어와 연관된 이슈의 키워드를 함께 보여주는 단계를 설정하는 버튼이다. ‘이벤트, 할인’이라는 버튼은 브랜드나 기업의 이벤트나 할인 행사와 관련된 검색어를 노출하는 버튼이다. 단계별로 설정이 가능한데, 해당 기능 자체를 꺼버리는 기본 설정을 포함해 검색 강도를 조절할 수 있는 다섯 단계로 구성돼 있다. 연말까지 스포츠, 시사, 엔터테인먼트까지 세 개의 버튼을 더 추가해 개인별 관심사를 더욱 다양하게 반영한 검색어 설정을 제공할 예정이다. 그에 앞서 10월 31일에는 로그인 사용자를 대상으로 10대부터 50대까지 세대별로 나뉜 급상승 검색어 순위를 선택 옵션이 아닌 기본값으로 제공하는 개편을 진행했다. 기본적으로 전체 사용자 순위를 제공했던 것을 로그인을 한 이용자에게는 이용자의 해당 나이가 포함되는 세대의 차트를 우선적으로 노출하겠다는 것이다.


이번 개편은 올해 들어 네이버 실검이 광고창으로 변질됐다는 세간의 비판을 의식한 결과처럼 보인다. 지난 10월 2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 위원회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한성숙 네이버 대표에게 네이버 실검이 정치적, 상업적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9월 1일부터 19일까지 매일 오후 3시 기준으로 네이버 실검 키워드를 분석한 결과, 1위에 해당하는 19개 검색어 키워드 중 15개가 기업이나 브랜드 상품을 홍보하고자 동원된 특정 플랫폼의 초성 퀴즈 이벤트를 통해 발생한 키워드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같은 기간 20위까지의 전체 키워드 수는 380개였는데 그중 96개가 홍보성 초성 퀴즈 이벤트로 인해 발생한 키워드였다고 한다. 실제로 기업 광고나 브랜드 제품 홍보와 관련된 키워드가 1위부터 10위까지의 실검 순위를 점령해버린 이미지가 SNS를 통해 심심찮게 유포되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정감사에서 한성숙 대표는 “지금은 (실검을) 너무 전체 값으로 제공한다. 연령대별로 나눈다던지, 개인 요구에 맞는 형태로 개편할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이번 개편은 국정감사에서 한성숙 대표가 말한 바가 고스란히 반영된 결과에 가깝다. 네이버 검색을 활용하는 유저들이 가진 동시간대 관심의 평균값을 보여주던 기존의 실검 서비스 방식에서 벗어나 연령과 취향에 따른 검색어를 분류하고 특정 검색어에 관심이 쏠리는 현상을 방지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결국 네이버의 실시한 실검 서비스 개편은 네이버 역시 해당 서비스가 본래의 목적과 다른 취지로 악용됐다는 것을 네이버 스스로 인정하는 모양새가 됐다. 다만 매크로 프로그램에 의한 네이버 실검의 외부 조작 개입 가능성은 확실하게 부인하며 선을 그었다. 그리고 문제가 된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지난해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실시간 검색어를 보고 뉴스를 이용한다는 응답한 이들이 전체 응답자의 69.5%를 차지했다. 국내에서 실검 서비스를 제공하는 포털사이트 중에서 영향력이 있다고 여길 수 있는 포털사이트는 네이버와 다음 정도이다. 그런데 네이버와 다음의 점유율은 각각 57.95%와 6.22%로 무려 10배 가까이 차이가 된다. 사실상 네이버 실검이 압도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광고성 검색어들로 도배되며 실검을 광고 상품으로 판매하고 있다는 의혹까지 받은 네이버에 비해 다음 실검에서는 상대적으로 그런 문제가 좀처럼 발생하지 않는다. 이유는 명확하다. “한국에서 가장 많이 쓰는 플랫폼이 네이버로 알려져 있고, 그만큼 여전히 큰 영향력이 발생하는 만큼 마케터 입장에서도 네이버 외에 특별한 대안이 없는 경우가 생긴다. 브랜드 검색이든, 뉴스든 한 곳에 모여 있는 서비스라는 점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익명을 요구한 브랜드 마케터 A의 말이다. 정리하자면 브랜드 연관 키워드가 네이버 실검을 지배한 건 관련 이벤트의 검색을 실행한 유저들이 그만큼 네이버로 몰렸기 때문이란 말이다. 


네이버가 실검을 상품화해서 판매하는 건 아니지만 실검에 올라오는 광고성 검색어들은 해당 업체에서 돈을 지불하고 마케팅을 의뢰한 결과다. 토스, 캐시슬라이드, OK캐시백 등의 앱 플랫폼에서 특정한 검색어를 제시하는 퀴즈 이벤트를 열면 포털에서 검색어를 입력해 정답을 찾아낸 뒤 다시 퀴즈를 낸 플랫폼에 방문해 정답을 기입하고 일정한 현금을 보상으로 받는다. 실물적인 보상이 있는 이벤트이다 보니 유저들의 참여도가 높고, 해당 이벤트가 종료되기 전에 움직여야 보상을 받을 확률이 높아지니 참여도 신속하다. 이벤트를 대행하는 플랫폼에서 요구하는 비용은 대략 3천만 원에서 6천만 원 선으로 알려져 있는데, 무신사와 같이 접속자 수가 많은 이커머스 플랫폼에서도 실검에 영향을 주는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네이버가 실검 서비스를 개편하기 전까지 실검 서비스에 즐비했던 브랜드나 제품과 관련된 검색어들은 사실상 이러한 이벤트를 통해 검색된 결괏값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브랜드 홍보를 염두에 두고 실검 노출 이벤트를 진행하는 B업체와 접촉해본 적 있다는 브랜드 마케터 C는 B업체에서 요구하는 비용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아서 진행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브랜드 패키지가 여러 개인데 기본적으로 자사 플랫폼에 입점하고, 배너 광고까지 집행해야 한다고 했다. 기본적으로 이벤트를 진행하는 플랫폼과 연관성이 있는 브랜드라는 것을 보여줄 명분이 필요하다는 건데 단순히 해당 이벤트 진행에만 들어가는 비용만을 요구하는 게 아니었다.” 그러니까 대동강 물을 파는 봉이 김선달처럼 몇몇 플랫폼 서비스가 포털사이트의 실검 서비스를 팔아서 자기 사업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실검을 판매한다는 의혹까지 받으며 여타의 주요 서비스에 대한 신뢰성마저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커진 네이버 입장에서는 신속하게 대응해야 하는 사안이었다.


네이버가 실검 서비스를 개편한 이후에도 초성 퀴즈를 비롯한 검색 이벤트는 계속 진행되고 있지만 검색어 노출이 줄어드니 확실히 유저들의 불만도 줄어든 것 같다. 하지만 새로운 물음표가 하나 남아있는 것 같다. 이번 사태에서 네이버 실검이 한국사회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건 확실해졌다. 그렇다면 과연 네이버 실검은 한국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광고성 키워드들이 실검 순위를 장악할 때마다 그와 관련된 기사들 또한 적지 않게 검색된다. 기사의 형태는 매우 단순한데, 대체로 어느 플랫폼에서 이러한 초성 퀴즈 이벤트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과 초성 퀴즈의 정답을 기재하는 방식이다. 화제성이 있는 이슈를 기사화하는 것이 문제라는 게 아니다. 화제성이 없는 이슈를 화제성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그러니까 정보의 거품을 만드는데 언론이 일조하는 듯한 모양새는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라는 것이다. 


네이버의 방관

지난 11월 12일에 열린 ‘미디어 커넥트 데이’에서 한성숙 대표는 네이버 뉴스의 수익모델 개편을 발표하며 이와 같이 말했다. “네이버가 뉴스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뉴스가 네이버 플랫폼으로 들어오다 보니 통칭해서 ‘네이버 뉴스’라고 언급되기도 한다. 이번 개편은 언론사의 브랜딩을 돕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네이버는 IT 기업으로서 광고 소비 패턴을 분석해 필요한 툴을 제공하고, 언론사는 전문적이고 좋은 콘텐츠를 만들면 더 많은 수익 배분을 받을 수 있는 구조로 바꿔 나가고자 한다.” 여기서 수익모델의 개편 대상은 네이버에 인링크 방식으로 뉴스를 제공하는 콘텐츠 제공사업자, 즉 CP 언론사들이다. 뉴스스탠드나 뉴스 검색 제휴를 포함한 기타 제휴 언론사들은 해당사항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CP 언론사 선정 유무에 따른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가중될 것이란 우려도 나오는 상황이지만 확실한 건 뉴스 서비스의 질적 향상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시도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기존의 뉴스 서비스를 제공하는 언론 매체들이 해당 기사의 페이지뷰를 최대한 늘려서 해당 페이지의 광고 노출률과 클릭률을 통해 수익을 증진시키는 방식으로 수익을 창출했다면 새로운 개편안은 매체에 대한 신뢰도와 충성도를 바탕으로 지속적으로 매체를 구독하고 재방문하는 유저가 많을수록 더 많은 광고 수익률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뉴스 기사 본문과 언론사 홈페이지의 광고뿐만 아니라 네이버에서 제공하는 마이뉴스판이나 언론사 편집판의 광고 수익 역시 해당 언론사의 몫으로 보장한다. 무엇보다도 실검의 화제성에 기대서 양산되는 무분별한 낚시성 기사들을 걸러내는 필터링 기준을 통해 실검 키워드에 맞춰 양산된 기사나 가십성 기사를 걸러내고 이런 류의 기사를 양산하는 언론사는 광고 수익을 깎는 페널티를 적용할 예정이다. 


이는 포털사이트에 종속된 언론사들이 클릭을 유도하기 위해 자극적인 제목을 남발하고, 실검 키워드를 바탕으로 불필요한 뉴스를 발행하며 쓰레기 무덤 같은 정보들로 가득해진 포털사이트 뉴스 서비스를 정화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사실 이러한 상황을 초래한 1차 주범은 해당 언론사이겠지만 네이버에도 그에 못지않은 책임이 있다. 언론사들은 네이버에서 뉴스 정책을 바꿀 때마다 긴장한다. 네이버가 아닌 곳에서 돈을 벌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언론사의 주요 기사를 무작위로 노출하던 뉴스캐스트에서 사용자가 직접 매체를 선택하고 구독할 수 있는 뉴스스탠드로 개편했을 당시에도 대다수의 매체들이 네이버가 제시한 기준에 맞추는데 노력하는 수밖에 없었다. 네이버가 뉴스 서비스의 변화를 시도하는 건 당연히 플랫폼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다. 페이스북이나 유튜브 등 네이버가 아닌 SNS에서 선별된 뉴스를 접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만큼 질적인 차별화를 가져갈 필요성을 어느 때보다 절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분별하게 늘어나는 온라인 매체들은 네이버가 요구한 허들을 넘은 뒤에는 싸구려 기사를 양산하기 시작했다.


“과거에 기자로 일했던 온라인 연예매체에서는 하루에 누구는 보도자료 몇 건, 누구는 실검 기사 몇 건, 누구는 기획 기사 몇 건, 이런 식으로 배당을 준 뒤, 로테이션을 돌렸다. 그러면 보도자료면 보도자료, 실검이면 실검, 배당받은 대로 써내는 거다. 그런데 실검 같은 경우 차트가 오랫동안 변동이 없을 때가 생긴다. 그럴 때에는 실시간 검색어를 만들어내는 작업을 한다. 예를 들면 연예인의 SNS 계정에 찾아가서 별것도 아닌 내용을 가지고 그럴듯한 제목을 붙인 기사를 쓴다. 누가 셀카를 올렸는데 뽀얀 피부가 야릇하다는 식의 기사를 쓰는데 이런 게 다 실검에 반영될 수 있도록 없는 이슈를 만드는 거다. 기본적으로 ‘아티스트 이름 뒤에 그럴듯해 보이는 명사를 붙이는 식으로. 그렇게 하면 클릭수가 높아지고, 그런 기사는 다른 매체의 기자들이 따라 베껴 쓴다. 그렇게 하다 보면 실검에 올라갈 때가 있다.” 과거 온라인 연예매체에서 일한 경력이 있는 전직 기자 C의 변이다. 


이슈가 없으면 이슈를 만든다. 하지만 그것은 실상 이슈가 아니다. 알 필요도 없다. 그런 기사들이 하루에도 셀 수 없이 쏟아진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그렇다. 그리고 이런 내용을 바탕으로 기사를 양산하는 매체에서 필요한 인력은 무언가를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저 당장 빠르게 써낼 수 있는 감각만 있으면 된다. 간단히 말해서 기획을 하고, 취재를 하고, 기사를 완성할 기자로서의 자질이 없어도 된다는 말이다. 그저 네이버에서 검색만 된다면. 그래서 언제부턴가 기사를 기자가 쓰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됐다. 기자라고 불릴 뿐, 기자가 아니기도 하고, 심지어 기자가 없어도 기사가 송고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내가 일을 그만둘 때쯤 기사를 제작해주는 대행사도 나왔다. 그 전에는 재택근무하는 알바를 고용해서 시답지 않은 가십 기사들을 쓰게 하고 기자 이름 대신 온라인 신문팀이라고 이름을 박아서 기사를 내보냈는데 이게 혼자서 하다 보니 만만치 않았던 거다. 그래서 기사를 써주는 대행사를 고용했는데 거기는 주로 가짜 이름을 써서 기사를 내보냈다.” 과거에 온라인 연예매체에서 기자 생활 경험이 있는 D의 말이다.


네이버의 역할

그러니까 독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의 관심을 뜯어먹는 것이 포털 뉴스의 생태계에서 살아남는 법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일반화의 오류가 될까? 물론 모든 기자가 이런 식으로 기사를 쓰진 않을 것이다. 모든 매체가 이런 식으로 기사를 제작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 많고, 심각하다. 불필요한 수준을 넘어 뉴스가 사람을 사지로 내몰았을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 정도라면 그런 것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운영하는 뉴스 빅데이터 분석 시스템 빅카인즈를 통해 설리가 사망하기 전날인 10월 13일을 기준으로 지난 1년간 보도된 설리 관련 기사를 검색하고, 키워드 분석을 시도한 결과 설리가 언급된 기사는 1666건이 검색됐다. 이렇게 검색된 기사를 키워드 추출 시스템으로 분석한 결과 지난 1년간 설리에 관한 기사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는 2264회 등장한 악플이었다. 두 번째는 841회 등장한 인스타그램이었다. 다른 연예인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굉장히 높은 수치였다. 그러니까 설리의 기사에 달린 악플과 설리의 일상이 담긴 인스타그램 계정을 주된 먹거리로 삼은 기자들과 매체들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설리의 죽음이 그들의 기사 때문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설리의 죽음과 그 책임에 대한 논의를 떠나서 그런 류의 기사들이 기사라는 이름으로 양산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 아닐까? 언제부터 언론은 연예인의 SNS 계정에서 주요한 기사 소재를 찾게 된 것일까? 언제부터 언론사는 연예인의 기사에 달린 악플을 기사의 주요한 소재로 다루게 된 것일까? 기자가 기레기가 된 건 과연 기자만의 문제일까? “사실 설리 씨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는 좀 충격이었다. 주변에 있는 기자들도 놀랐다는 얘기를 많이 했다. 사실 설리 씨가 죽기 전에 방송 보도자료를 받아서 기사를 쓴 적 있는데 나중에 봤더니 굉장히 악플이 많이 달려서 마음이 좀 불편했다. 나쁜 소식도 아닌데, 굳이 왜 이렇게 악플을 많이 달까. 그런데 며칠 뒤 그런 소식을 듣게 되니까 마음이 안 좋더라. 그리고 설리 씨 죽음을 애도하는 기사를 썼더니 자극적인 기사를 써서 사람을 죽인 기레기 주제에 죽음까지 팔아먹냐는 댓글이 달렸다. 그래서 마음이 복잡했다.” 현직 연예부 기자로 일하는 E의 말이다.


“전에 같이 일했던 데스크는 기사가 날카로워야 한다는 말을 많이 했다. 처음에는 기사의 관점이 정교해야 한다는 얘기를 하는 건가 싶었는데 결국 그냥 비판적이어야 한다, 좋게 말하면 안 된다는 말을 날카로워야 한다고 말하는 거더라. 그러니까 무조건 세고, 자극적이어야 한다는 거다. 그리고 가끔씩은 데스크가 개인적으로 소속사와 사이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해당 소속사와 관련된 뉴스는 비판적인 논조를 요구할 때가 있었는데 괴리감이 들더라. 개인적인 이해관계에 대한 복수를 내가 기사로 대행해주는 느낌이니까.” 현직 연예부 기자로 일하는 F의 말이다.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다.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마음을 다칠 수밖에 없다. 싸구려처럼 생각을 굴리고, 싸구려처럼 언어를 굴리고, 싸구려처럼 사람을 굴린다. 그저 빠르고 신속하게, 양 많이. 기자가 기레기가 된 건 기자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언론이 스스로 쓰레기 같은 기사를 양산하는 것에 대한 의문을 갖지 않았기 때문이다. 네이버에 입주하는 것이 목표가 되고, 실검에서 기사의 소스를 찾는 것이 업무가 된 매체와 기자들 그리고 네이버. 네이버는 과연 이런 상황을 어떻게 판단하고 있을까?


한성숙 대표는 “언론사가 사용자를 직접 만날 수 있도록 돕는 게 네이버의 역할”이라고 정의했다. 어쩌면 네이버는 지금 방송국을 제외한 언론사들의 중계권을 가진, 가장 덩치가 큰 미디어일 것이다. 스스로가 그런 정체성을 부인한다 해도 실질적으로 그렇다. 언론사가 아니라 해도 미디어로서의 사명감이 필요하다. 그리고 뉴스를 볼 수 있는 곳은 더 이상 네이버만이 아니다. 불필요한 정보들로 왜곡된 실검 장사가 이어진다면 네이버 입장에서도 달가운 일은 아닐 것이다. 결국 언론의 경쟁력은 장기적으로 네이버의 경쟁력일 수밖에 없다. 무분별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 점차 분별력 있는 정보에 대한 갈증이 커지는 상황에서 네이버는 좀 더 적극적으로 선택할 필요가 있다. 지난 10월 여론조사기관 엠브레인에서 실시한 ‘실시간 검색어 소비자 인식조사’에 관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응답자 대부분이 실검 폐지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을 보였다. 동시에 실검 규제 주체로 포털 사업자의 자율 규제가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했다. 사람들은 아직 실검을 믿는다. 그러므로 네이버는 확실히 결정해야 한다. 이제 네이버 차례다. 쓰레기통을 비울 것인지, 계속 방관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세상의 모든 지식’이라는 슬로건으로 시작했던 네이버에 어울리는 역사를.


('ESQUIRE KOREA' 매거진 2020년 1월호에 쓴 칼럼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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