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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용준 Feb 13. 2022

계속 살아가고, 사랑하기 위하여

영화 <월-E>와 <인터스텔라>로 보는 기후위기 시대의 인류의 미래.

“한 사람에게는 작은 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거대한 도약이다.” 이는 한국 시각으로 1969년 7월 21일 오전 11시 56분 20초, ‘고요의 바다’라 일컬어지는 달 표면 착륙에 성공한 아폴로 11호의 선장 닐 암스트롱이 인류 역사상 최초로 달에 첫 발을 내딛고 남긴 말이다. 그러니까 한때 인류에게 있어서 우주라는 영역이 꿈처럼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다. 우주 탐사라는 단어가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낭만으로 다가오는 시대가 있었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우주는 미지의 세계다. 다만 우주로 나아간다는 것이 마냥 낭만적이라고 여겨지는 시대는 아닌 것 같다. 

픽사의 장편 애니메이션 <월-E>는 우주로부터 불시착하듯 지구로 떨어지는 시선과 함께 시작되는 영화다. 지구의 궤도를 잔뜩 메운 우주 쓰레기를 헤치고 지구로 진입한 시선은 먼지로 뿌연 하늘 아래 산처럼 쌓인 쓰레기 더미를 지나 홀로 조용히 움직이는 어떤 존재에게 초점을 맞추기 시작한다. 마치 거대한 쓰레기섬이 된 듯한 지구에서 작은 로봇 하나가 분주히 움직인다. 쓰레기를 모아 압축해 질서 정연하게 쌓아 올린다. 그렇게 쌓아 올린 쓰레기가 고층 빌딩보다 더 높고, 더 많다. 


하늘 위에도, 하늘 아래에도 쓰레기로 가득한 지구는 고요한 섬과 같다. 인류는 쓰레기장이 된 지구를 청소해줄 로봇들만 남겨두고 거대한 우주선을 만들어 지구를 탈출했다. 로봇들이 쓰레기를 정리하고 지구를 정화하면 다시 돌아온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쓰레기는 너무 많았고, 로봇들은 낡아갔다. 그리고 단 한 대의 로봇만이 남아서 자신의 할 일을 한다. 월-E가 바로 그 로봇의 이름이다. 월-E는 지구에 남겨진 유일한 로맨티시스트다. 쓰레기를 치우는 일과가 끝나면 자신의 숙소로 돌아와 수집한 물건을 정리하고 오래된 고전 뮤지컬 영화 <헬로 돌리>의 한 장면을 보며 절로 기계손을 포개며 감화된다. 말 그대로 사랑을 꿈꾸는 로봇이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SF 블록버스터 <인터스텔라>는 어떤 노인의 음성으로 시작되는 영화다. 자신의 아버지가 농부였다고 고백하는 노년의 여성은 막을 수 없는 병충해와 끊임없이 날아드는 흙먼지로 인해 옥수수 농사밖에 지을 수 없는 어떤 시대를 회상한다. 관객의 시점에서 보자면 연원이 불명확한 근미래의 어떤 시절일 것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원래 농부가 아니었다. 나사의 비행사였다. 하지만 그가 농부로 기억된 건 그가 살아가는 세상이 더 이상 나사도, 비행사도 필요 없는 시대가 돼 버린 탓이다.


쿠퍼(매튜 맥커너히)는 똑똑한 딸 머피(매켄지 포이)에게 어울리는 꿈을 안겨주고 싶다. 하지만 우주로 나아가는 낭만보단 지구에서 살아남을 문제가 시급해진 시대는 닐 암스트롱의 달 착륙마저 위장된 역사라고 교육하며 현실의 중력에 삶을 가둔다. 그런 어느 날 우연한 기회로 머피와 함께 나사(NASA)의 위치를 찾게 된 쿠퍼는 이로 인해 우주 탐사 계획에 동참하게 되고 돌아올 수 있다는 기약조차 어려운 여정으로 떠나는 아버지를 원망하는 머피를 등지고 우주로 떠난다. 사랑하는 가족에게 더 나은 미래를 선사하고자 지구의 중력으로부터 멀어진다.

<월-E>와 <인터스텔라>는 각기 다른 이유로 황폐해진 지구 상의 인류가 우주에서 희망을 찾는 이야기라는 공통분모의 설정 위에 놓여있는 영화다. 무분별한 소비로 인해 감당할 수 없게 쏟아지는 쓰레기로 가득해진 <월-E>의 지구와 원인은 알 수 없지만 급격한 사막화로 농작물조차 자라기 힘들어진 <인터스텔라>의 지구는 더 이상 인류를 위한 안온한 보금자리가 아니다. 그리고 두 영화가 그리는 지구의 풍경은 스크린 밖의 동시대 관객에게 현실적인 공감대를 안겨주는 풍경에 가깝다. 


과거 우주 SF영화가 그리는 디스토피아란 대체로 우주 외부로부터 날아오는 무언가로 인한 재앙에 가까웠다. 이를 테면 <아마겟돈>이나 <딥 임팩트>처럼 우주에서 지구를 향해 날아오는 거대한 운석으로 인해 벌어지는 일련의 위기 상황을 그린 작품이 있다면 <인디펜던스 데이>나 <우주전쟁>처럼 외계인의 침공으로 인해 벌어지는 인류의 위기를 그린 작품이 있었다. 대체로 우주에서 등장한 무언가를 통해 벌어지는 재난 혹은 재앙이 우주 SF영화의 단골 소재였다. 하지만 오늘날의 우주 SF영화가 그리는 인류의 위기는 먼 우주가 아니라 지구에서 비롯되는 것이 다반사다. <월-E>나 <인터스텔라>처럼 지구를 이미 탈출해 우주에서 살아가거나 지구를 탈출해 생존할 수 있는 탐사를 시도하는 인류의 모습이 공감대를 얻는 시대가 된 것이다.

지난 2021년 11월에 열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회의에서는 이색적인 연설이 진행됐다. 남태평양의 섬나라 투발루의 외무장관이 정장 차림으로 바다에 들어가 연설하는 영상이 중계된 것. 해수면 상승으로 1년에 5mm씩 바다에 잠기고 있다는 투발루는 이미 2000년에 공항이 자리했다는 섬 하나가 수몰되는 경험을 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에베레스트의 만년설이 녹고 있다. 덕분에 1970년경에 실종됐다는 영국 탐험대원의 시신이 드러나 이를 수습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당연히 반가운 상황이 아니다. 북극의 빙하도 녹고 있고, 80년 안에 몰디브가 수몰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왔다. 


이렇게 물에 잠기는 걱정을 하는 나라가 있다면 매년마다 심각하게 번져 나가는 산불로 인한 피해를 호소하는 국가도 늘고 있다. 특히 2019년 9월경에 발생해 2020년 5월에 이르러서야 진화된 호주 남동부 일대에서 일어난 산불은 대한민국 면적의 80% 이상에 달하는 18만 6천㎢의 임야를 태워버렸다. 시드니와 브리즈번을 비롯한 인근 도시의 공기질도 심각하게 악화돼서 호흡기 질환 문제가 불거졌고, 인근의 뉴질랜드는 물론 칠레,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남아메리카 대륙까지 영향을 미칠 정도였다. 


해수면은 높아지고, 토지는 불타간다. 그 사이에서 인류의 미래가 암담해진다는 전망은 가속화되고 있지만 청사진을 논의하는 목소리에는 쉽게 힘이 실리지 않는다. 문제는 기후 변화로 인한 인류의 위기가 먼 미래가 아닌 지금 당면한 현실이라는 것이다. 지난 2019년 한 국제과학학술지에 전 세계 과학자 1만여 명이 공동으로 낸 성명에 따르면 ‘기후변화 위기는 이미 우리 앞에 도달했고, 과학자 대다수의 예상보다 훨씬 빠르고 심각하게 진행 중이며 생태계와 인류의 운명을 위협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기후 변화 위기의 주요 요인으로 ‘과도한 소비’를 지적했다.

다행히 탄소 배출과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는 예년보다 거세지고 있지만 우리에겐 생각보다 시간이 별로 없다. 이제 ‘지구를 보호하자’는 거창한 표어 같은 걸 구상할 시간은 지났다. 먼 미래의 후세를 위해 남겨줄 지구가 아니라 당장 현재를 위한 생존을 고민할 시간이 임박했다. 우리가 사는 현실에서는 전인류가 함께 우주로 도피할 우주선을 마련할 수도 없고, 중력의 비밀을 밝혀줄 먼 우주로 인도할 웜홀이 등장할 리도 없다. 대체 가능한 우주에서의 삶을 구상하기 전에 지속 가능한 지구에서의 삶을 고려해야 한다.


<월-E>와 <인터스텔라>는 인류의 위기를 그리는 근미래의 영화라는 세계관 외에 또 하나의 공통점을 가진 영화다. 바로 사랑에 관한 이야기라는 사실이다. 월-E가 우주로 나아가 끝내 인류의 지구 귀환을 이끄는 건, 쿠퍼가 우주로 나아가 끝내 인류의 미래를 위한 단서로 다다른 건 구하고 싶은 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월-E가 이브를, 쿠퍼가 머피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가 이 세상을 지키고자 하는 건 대단한 인류애가 아니라 사소한 애정의 발로일 것이다. 먼 미래의 후손을 위한 행동이 아니라 당장 내 곁에 두고 계속 사랑하고 싶은 누군가를 위한 절박함이어야 한다. 환경의 위기는 지구의 위기가 아니라 인류의 위기이며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위기다. 고로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구할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더욱 노력해야 한다. 당신과 우리 모두가 지구에서 계속 살아가고, 사랑하기 위하여.


(환경부 공식 블로그 '지구랩소디' 섹션에 게재한 칼럼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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