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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용준 May 31. 2022

세상은 더 불행해질 것이다

테라와 루나와 사라진 자산과 성공에 대한 과열이 뒤엉킨 세태에 관하여.

처음에는 새로운 맥주 브랜드 이야기인 줄 알았다. 테라라고 하니 너무 유명한 맥주 브랜드를 떠올렸고, 그래서 나란히 언급된 루나는 새롭게 출시된 맥주 브랜드라도 되는 줄 알았다. 어쩌면 차라리 맥주 이름이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아마 지난 5월 12일 이후로, 암호화폐의 ‘ㅇ’자에도 관심 없던 이들조차 테라와 루나가 암호화폐 이름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이가 없을 것이다. 일단 내가 그랬다. 그리고 이 암호화폐가 많은 이들의 삶을 절망으로 이끌었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그게 무엇이 됐건 내가 소유한 무언가의 가치가 떨어졌다는 소식이 반가울 리 없다. 그런데 그것이 중요한 자산 가치를 가져다줄 거라 기대하고 구입한 무엇이라면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까지 느낄 것이다. 다 떠나서 이름부터 화폐라 명명된 것을 그저 소유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구입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당연히 더 큰 재화 가치를 가져다줄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구입하고 소유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가치가 무려 98%나 폭락해서 자산 가치가 0으로 수렴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는 건 자고 일어났더니 누운 자리를 제외하고 집이 죄다 타버렸다는 것을 알게 되는 일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테라와 루나라는 코인 가격이 바닥을 치면서 수십억을 날렸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일면식도 없는 이들의 마음을 염려하는 동시에 역설적이지만 그것을 소유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돈을 번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정말 이상한 일이다. 이름 자체가 현실적이지 않은 가상화폐를 소유하며 부자가 되겠다는 야심을 가졌지만 되레 그것으로 인해 삶이 나락으로 떨어져 버린 듯한 사람들의 사연이 온라인상에서 삽시간에 퍼져 나가는 상황은 실체가 없는 유령에게 떠밀려 죽어버린 누군가의 사연을 전해 듣는 것처럼 허망하면서도 으스스하다. 영화보다도 영화 같다.


문득 지난 1월에 거짓말처럼 무너졌다는 광주의 어느 신축 아파트가 떠올랐다. 21세기에도 아파트가 무너지는 초현실적인 상황을 목도하며 작년에 들었던 모 건축가 님의 전언을 되새겼다. 최근 들어 아파트 소음 분쟁이 심해지는 건 실제로 아파트의 층간 두께가 얇아졌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요즘은 콘크리트 타설을 하는 과정에서 시멘트 함량을 줄여서 콘크리트 벽 자체의 견고함이 과거만 못하다는 것이었다. 결국 시공비를 아껴서 이윤을 남기려는 건설사가 보이지 않는 착복을 하는 탓에 비싼 돈을 주고 신축 아파트에 입주한 애먼 소비자들끼리 갈등을 겪게 된다는 의미였다.


실제로 모든 아파트가 그렇게 지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잘 알지도 못하면서 왠지 그럴 것 같다는 기분을 느끼는 건 지금 세상을 굴리는 욕망의 메커니즘과 부합하는 결과처럼 느껴지는 탓이리라. 더 싸게 만들어서 더 비싸게 팔겠다는 욕망은 비단 생산자와 판매자의 것에 불과하지 않다. 아파트를 사람이 사는 주택으로 보기 전에 상품으로 보는 시류는 아파트를 구입하는 소비자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살 집의 안락함을 추구하기 전에 자신이 살 집의 가격이 오르기를 기대하는 것이 요즘 아파트를 사는 이들의 심리일 수밖에 없다. 당장의 삶을 담보로 미래의 삶을 대비한다는 건 내일의 안정을 빌며 오늘의 불안을 이겨내겠다는 의지의 유사어 같은 상황일 것이다. 


문제는 그런 오늘과 내일의 악순환이 언제까지 이어지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는 사실이다. 결국 미래의 불확실성에 투자하라는 금언을 따라가는 현재를 도돌이표처럼 살아가는 이들이 많을 수밖에 없는 건 불확실한 현재를 견디라고 조언하는 이들이 그만큼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부자가 되고 싶다는 욕망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모두가 부자가 되기만을 꿈꾸는 세상이라면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기분을 느껴야 마땅하다.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구태의연한 말을 전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테라와 루나 사태는 ‘그저 막연하더라도 성공이라는 결승선을 향해 뛰어가기만 하면 된다는 믿음이 어떻게 눈을 멀게 만드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현실적인 답변처럼 보인다. 이런 믿음이 만연한 세상에서 과연 희망이라는 단어는 얼마에 팔릴 것인가.


누군가는 주식을 해서, 코인을 사서 돈을 벌었겠지만 누군가는 잃을 것이다. 재화가 한정된 세상에서 부유함과 가난함은 덧셈과 뺄셈 문제다. 부자가 늘어나면 빈민도 늘어난다. 결국 적당한 부를 나눌 수 있는 세상 안에서의 안정감을 추구하지 못하는 사회의 양극화는 피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공평한 분배를 믿지 못한다. 그래서 부자가 될 것이라는 허망한 꿈을 꾼다. 그리고 애써 모은 재산을 어딘가 다 밀어 넣고 기도한다. 누군가는 그렇게 성공했을 것이다. 하지만 성공해서 부자가 됐다는 소식은 별로 들어본 적이 없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렇게 망했다. 그렇게 망한 사람이 수두룩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성공할 것이라 믿는다. 그렇게 아파트도 무너지고, 하루 아침에 재산을 날리는 사람도 생긴다. 세상은 더 불행해질 것이다. 무운을 빈다.


(명지대학교에서 발행하는 학보신문 <명대신문>에 쓴 '민용준의 허허실실' 칼럼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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