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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용준 Jun 08. 2022

이제 다시 대화를 시작해야 할 때

젠더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세대 갈등을 기피해선 안된다.

‘한 상태에서 다른 새로운 상태로 옮아가거나 바뀌어 가는 도중의 시기. 흔히 사회적인 질서, 제도, 사상 따위가 아직 확립되지 않은 불안정한 시기를 이른다.’ 과도기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이렇다. 그러니까 뭔가 새롭게 변화하는 과정이란 늘 불안정하기 마련이다. 변화란 변화를 모색하는 이들에게서 시작된다. 변화를 모색하는 이들에게는 변화하지 않는 세상을 견딜 수 없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그러한 변화를 받아들이기 거부하는 이들도 존재하기 마련이다. 결국 변화를 원하는 이들과 변화를 바라지 않는 이들은 서로 마주 보고 달리는 기차처럼 충돌한다. 갈등하기 마련이다. 그러한 충돌과 갈등이 구체적인 양상으로 드러나는 시기를 우리는 흔히 과도기라고 말한다.


지난 3월 9일에 실시한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그런 과도기의 징후가 드러났다. 구체적으로 세대별 지지율 차이를 색깔로 투표 결과를 정리하고 구분한 그래프에서 흥미로운 차이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30대부터 60대 이상까지는 성별에 따른 지지 후보 차이가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아무리 커도 7% 차이밖에 벌어지지 않았다. 30대부터 60대 이상의 나이대에 속하는 유권자 사이에는 지지 심리의 세대 차이는 보여도 동세대 안에서의 성별 차이는 크게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20대 이하부터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20대 이하의 투표 결과를 보면 이재명 후보를 지지한 남녀의 비율은 각각 36.3%와 58%였고, 윤석열 후보를 지지한 남녀의 비율은 58.7%와 33.8%로 집계됐다. 성별에 따른 지지도 차이가 20% 넘게 드러난 것이다. 이는 지금 우리 사회 안에서 20대 이하 세대가 겪고 있는 남녀 갈등이 생각 이상으로 극심하다는 걸 보여주는 상징적인 지표나 다름없다. 

지난 5월 13일 <조선일보>에서 결혼정보업체 선우에 가입한 20~39세 회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30 세대가 이성과 사귈 때 부정적으로 보는 요소로 조사에 응답한 남성 중 80%는 ‘상대 여성이 페미니스트’라고 답했고, 여성 중 69.5%는 ‘반 페미니스트’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리고 남성 응답자 중 48.7%만 ‘성평등 의식이 낮다’는 것을 부정적으로 본 반면, ‘상대 남성의 성평등 의식이 낮다’는 것을 부정적으로 본다는 여성 응답자는 93.8%에 달한다. 비교적 젊은 층에 속하는 2030 세대에게 이성 교제를 결정하는 조건에는 ‘페미니스트’와 ‘성평등’에 대한 견해차가 중요하게 작동한다는 것이다.


지난 2017년 전 세계적으로 촉발된 미투 운동 이후로 대두된 페미니즘은 대한민국 사회에서도 뜨거운 감자다. 사회 각계에서 성차별과 성폭력 피해 경험을 폭로하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쏟아졌고, 사회적인 각성이 이어졌다. 하지만 동시에 이에 대한 반발도 적지 않았다. 남성을 잠재적 성범죄자 취급한다는 일부 남성의 반발은 각성을 촉구하는 페미니즘 진영과 갈등 양상을 빚었다. 그리고 이러한 양상은 기성세대로 분류되는 40대 이후 세대보다는 20대와 30대 이하의 젊은 세대 안에서 더욱 치열해지는 양상이다. 

페미니즘(Feminism)을 한국어로 번역하면 여성주의 정도가 적절할 것이다. 누군가는 이에 반발한다. 여성주의는 존중하면서 남성주의는 왜 무시당하는가. 그렇다면 한 번 생각해보자. 흑인 영화는 있는데 왜 백인 영화는 없을까? 여성영화는 있는데 왜 남성영화는 없을까? 애초에 백인 영화와 남성영화를 명명할 필요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미 영화에는 백인과 남성이 즐비하다. 그런데 보이지 않던 흑인과 여성이 보이기 시작하니, 그런 희귀함이 장르처럼 불리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남성주의라는 말이 사용되지 않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여전히 우리는 여성보다 남성의 의견이 반영될 가능성이 높은 사회 구조 안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월 9일 여성가족부에 발표한 ‘2020년 한국의 국가성평등지수’에 따르면 100점 만점 기준의 국가성평등 점수는 전년보다 1점 상승한 74.7점을 기록했지만 사회 구조 안에서 지속되는 성차별 양상을 의미하는 ‘구조적 성차별’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가장 취약한 부분은 ‘의사결정’ 분야인데 이에 해당하는 지수 중 하나인 국회의원 성비는 22.8점으로 모든 세부지표 안에서 가장 낮은 것이기도 하다. 이는 OECD 평균 비율인 28.8점과 비교해도 낮은 수치다. 그 외에도 24.8점을 기록한 관리자 성비와 31.3점을 가사노동시간 성비 수치도 현저히 낮다. 성별임금격차는 전년에 비해 0.1점 떨어진 67.7점으로 후퇴하는 경향까지 보였다. 반면 2015년부터 100점을 기록한 고등교육기관 진학률 성비는 2020년에도 100점을 유지했다. 

국가성평등지수는 모든 분야에서 100점 만점을 기준으로 두는데 여기서 100점은 완전평등지수를 의미한다. 그러니까 여성의 구조적 불평등이 여전한 지금 유일하게 완전평등지수를 이룬 건 교육 분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성별로 교육받을 권리를 가늠하는 시대를 확실히 벗어났다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이는 상대적으로 젊은 20대 이하 세대가 이전 세대에 비해 보다 공평한 교육 기회를 누리며 자라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런 의식을 갖고 사회에 진출할 준비를 하거나 진출한 20대 여성이 성차별을 느끼는 건 당연할지도 모른다. 교육 과정에서 성차별을 체감하지 못한 세대의 여성이 사회적으로 공고한 구조적 성차별을 체감할 확률은 보다 뿌리 깊은 차별을 경험해온 기성세대 여성에 비해 더욱 클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이는 당연한 갈등이다. 남성과 동등한 입장에서 충분한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이 성장해 사회로 진출할 때 그 사회에 만연한 구조적 성차별에 예민한 건 당연한 일이다. 앞서 제시한 모든 사회적 지표가 그러하듯이 우리 사회의 성평등지수는 온전하지 않다. 필연적으로 일어날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여기서 짚어야 할 문제는 20대 여성이 저항하는 구조적 성차별에 대항하는 계층이 20대 남성이라는 사실이다. 본래 대부분의 사회적 갈등은 비기득권이 기득권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며 시작된다. 빈민이 부자에게, 시민이 권력자에게 불평등을 해소하고 평등한 권리를 요구하며 일어난다. 그런데 현재 우리 사회의 젠더 갈등의 축이 20대 안에서 치열하게 전개된다는 건 어딘가 왜곡된 흐름이 존재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한국리서치에서 실시한 ‘우리 사회 젠더갈등 정도’에 대한 정기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1000명 중 79%가 향후 젠더갈등은 더 심각해질 것이라 답변했다고 한다. 그중 18~29세 응답자의 52%가 지금보다 심각해질 것이라 답했고, 32%는 지금과 비슷할 것이라 답했다. 20대가 바라보는 젠더 갈등에는 희망이 없다. 갈등이 해소될 것이라는 가능성이 부재한 상태다. 앞서 말했듯이 갈등은 결코 나쁜 일이 아니다. 갈등은 갈등이 필요한 자리에서 촉발되는 법이다. 하지만 거세지는 갈등을 옆집 불구경하듯 바라보는 사회란 언젠가 잿더미가 된 집처럼 황량해질 것이다. 


구조적 성차별의 주체는 이제 막 사회로 진출하거나 진출할 준비를 하는 새로운 세대로부터 만연한 것이 아니다. 기성세대를 주축으로 벌어진 구태다. 그러므로 이런 구태를 해결해야 할 주체는 분명 기성세대여야 한다. 결국 20대 이하 남녀의 젠더 갈등을 방치하는 건 기성세대가 자기 책임을 다하지 않는 결과일 것이다. 그리고 그 책임을 다하는 방식은 구조적 성차별의 구조를 하나씩 철거해 나가는 것이어야 한다. 차별당하고 있다는 인식을 거부하지 말고 경청해야 한다. 20대의 젠더 갈등은 20대의 문제가 아니다. 그들의 갈등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기성세대의 방관과 무지에서 비롯된다. 그러니 인정해야 한다. 그것이 더 큰 세대 갈등으로 번질 수 있다 해도 그 갈등을 피하지 말아야 한다. 젊은 세대의 갈등을 방관하는 늙은 세대의 미래도 결코 편안할 리 없다. 다소 거칠지 몰라도 더 늦기 전에 당장 대화를 시작할 때다.  


(한국인사관리협회에서 발행하는 월간 <인사관리>의 별책부록 <CHRO>에 쓴 칼럼을 재편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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