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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용준 Jul 31. 2023

'무빙' 강풀 작가 인터뷰

'무빙'의 원작자이자 각본가인 강풀 작가를 미리 만났다.

웹툰 <무빙>의 원작자 강풀 작가는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 <무빙>의 각본을 직접 썼다. 웹툰 작가에서 드라마 각본가로, 자신이 창작한 세계를 더 너르고 깊은 너비와 밀도로 재창조한 강풀 작가에게 미리 <무빙>에 대해 묻고, 들어봤다.

<무빙>의 원작자로서 직접 드라마 각본까지 쓰게 된 과정이 궁금합니다.

먼저 제안을 받아서 제가 역으로 다시 제안했어요. 2화까지 써볼 테니까 그걸 보고 판단해 달라고.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인데 섣불리 수락했다가 큰돈을 들인 작품을 망치면 안 되잖아요. 그런데 평소 드라마를 잘 안 보는 편이라 그 뒤로 OTT를 죄다 구독해서 숙제하듯 드라마를 봤어요. 기존 드라마의 각본 어법을 모르니 보내줄 수 있는 각본을 다 달라고 부탁해서 공부하듯 읽었고요. 그렇게 세 달 만에 2화까지 써 보냈고 그때까지 계약도 안 했죠. 그걸 보고 맡길 마음이 들면 그때 계약하자고요. 결국 그렇게 시작됐고, 제 입장에서는 웹툰 연재까지 포함해 거의 3년간 <무빙>을 쓴 셈이죠. 촬영 종반까지도 수정하고, 작품이 끝날 때까지 같이 작업했으니까.


웹툰 <무빙>이 ‘액션만화’를 표방했던 만큼 드라마에서도 액션 신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지금까지 실사화된 작가님의 작품 가운데 연출 난이도가 가장 큰 작품이 될 것 같고요.

개인적인 견해로는 지금까지 한국에서 나온 영화나 드라마 중에서 가장 난도가 높은 편 아니었을까 싶어요. CG 작업이 되지 않은 가편집본으로 20화까지 다 봤는데 이 정도로 액션신이 계속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놀랐어요. 사실 욕심도 있었어요. 어떤 화는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볼거리로 채우자고 생각하며 막 썼거든요. 웹툰 작업이었다면 그리기 힘들겠다고 판단할 장면까지 각본에는 다 쓴 거예요. 웹툰은 제가 다 그려야 하니까 힘들거든요.(웃음) 마감 일자도 지켜야 하니까 적당히 포기하고 덜어낼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드라마는 알아서 만들어 주실 거라 믿고 막 지른 거죠. 


예고편을 보면 원작에 등장하지 않았던 프랭크(류승범)라는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드라마 <무빙>은 원작 웹툰과 상이한 작품일 것 같습니다. 

저는 항상 본격적인 웹툰 연재에 들어가기 전에 스토리를 다 완성해 뒀어요. 그 과정에서 작업 여건상 물리적으로 도저히 넣을 수 없는 것들은 덜어낼 수밖에 없었죠. 저를 도와주는 어시스턴트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1인 체제 작업이라 마감 기한을 엄수하려면 어느 정도 포기해야 하는 부분들이 있거든요. 그래서 드라마 각본에 웹툰 작업 때 못했던 걸 원 없이 썼어요. 프랭크뿐만 아니라 더 많은 인물이 추가됐죠. 전반적인 줄기는 비슷하지만 원작에서 풀지 못한 아쉬움을 각본으로 풀고 싶었어요. 드라마는 더 풍부하게 확장돼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새로운 캐릭터들을 추가한 만큼 이야기의 너비도 그만큼 늘어났을 거 같은데 주요 캐릭터와 관련한 변화는 없을까요?

제 작품을 제 입으로 뭐라 하는 것 같아서 좀 그렇지만 원작에서는 캐릭터들이 어쩔 수 없이 납작해진 부분이 있어요. 분량이나 연재 속도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인물의 전사를 대체로 짧게 건너뛰었거든요. 인물의 감정을 더 파고 들어가 볼 수 있었다면 훨씬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았죠. 그래서 드라마 각본에서는 개인사를 더 파고들었어요. 덕분에 원작보다 이야기 볼륨도 훨씬 더 커졌죠. 아마 원작과 비교하면 거의 두 배 이상 늘어났을 거예요.


<무빙>은 초능력을 가진 평범한 사람들의 고군분투를 그리는 작품입니다. 그런데 대자본이 투자된 대작 드라마로 제작이 확정된 만큼 한국형 히어로물이라는 수사를 보다 거창하게 부각한 작품으로 각색될 가능성도 다분했을 거예요. 결과적으로 원작자가 각본 작업을 하지 않았다면 작품의 성격 자체가 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죠. 

그게 싫어서 제가 각본을 맡았어요. 제작진과 얘기하면서 항상 말한 게 이건 슈퍼히어로 이야기가 아니라 ‘슈퍼’를 뺀 히어로 얘기라는 점이었어요. 처음 웹툰을 연재할 때부터 그렇게 생각했고요. 2013년에 <마녀> 연재를 끝내고 구상을 시작했으니까 <무빙>은 제가 10년간 고민한 이야기이고, 히어로 만화를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보니 결국 제가 좋아하는 이야기로 돌아가게 되더라고요. 저는 협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걸 늘 중요하게 생각해요. 함께 힘을 합쳐서 뭔가 해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늘 생각하는 거죠. 이들이 해내는 게 무엇일까 고민하다 보니 자기 가족을 구하는 것이 이들에게는 우주를 구하는 일과 같을 거라는 결론을 내렸어요. 그래서 결국 가족 이야기가 됐고, 다들 적당한 한계가 있어야 된다고 판단했어요. 김두식은 하늘을 날지만 우주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건 아니고, 장주원은 초재생 능력을 갖고 있지만 맞으면 아픈 거죠. 결국 그런 한계를 극복하면서 누군가를 구하고 가족을 지키는 게 히어로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원작에서도 나오는 ‘가장 중요한 초능력은 공감 능력’이라는 대사를 드라마에도 썼어요. <무빙>을 대변하는 가장 중요한 대사라고 생각하니까요.

<26년>처럼 역사적 배경을 주요한 소재로 내세운 작품은 아니지만 안기부에서 국정원으로 변화하는 시대상을 주요하게 제시한다는 점에서 <무빙> 역시 한국의 현대사와 분명한 접점이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면모가 한국형 히어로물의 개성을 강화하는 면모도 있기 때문에 드라마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질 것 같습니다.

당연하죠. 작가 입장에서도 그런 설정이 중요했어요. 우리나라는 여전히 특수한 이데올로기 갈등을 겪고 있는 나라이니까 그런 역사적 배경에 초능력자를 연결하면 흥미롭겠다는 생각이 웹툰 <무빙>을 시작하게 된 주된 이유였거든요.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시대의 흐름에 휩쓸린 사람들이 있잖아요. 결국 그 흐름의 중점에 있거나 접점에 있는 사람들을 작가로서 창조해 내고 풀어본 거죠.


그런 작품을 글로벌 OTT인 디즈니 플러스에서 공개한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기대하는 부분도 있을 거 같습니다.

확실히 궁금한 부분이죠. 전 세계가 한국의 상황을 아는 만큼 그런 나라에서 만든 히어로물을 어떻게 볼까 말이에요. 그래서 <무빙>이 처음 드라마로 기획될 때부터 월드 와이드로 가면 좋겠다고 제안했어요. 결과적으로 디즈니플러스와 손을 잡게 되니 좋았고요. 자막을 통해서라도 내가 만든 이야기를 외국에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있었으니까. 


OTT에서 공개되는 오리지널 시리즈로 각본가 데뷔를 하게 됐는데 아무래도 기존의 방송사 드라마 각본 작업과는 환경적인 차이가 있을 거 같습니다

방송사 드라마 각본을 써본 적 없어서 비교할 수 있는 경험치는 없지만 OTT 오리지널 시리즈 각본을 쓰면서 보다 자유로운 부분일 거 같다고 느낀 건 두 가지였어요. 웹툰을 그릴 때 어떤 화는 길게 스크롤을 내려도 끝나지 않는 화가 있다면 어떤 화는 필요에 의해 짧게 끊어야 되는 화가 있어요. 만약 <무빙>이 방송사 드라마로 만들어졌다면 모든 화가 동일한 시간 안에 시작되고 끝나야 하니까 끊고 싶어도 끊을 수 없는 화가 있었을 텐데 OTT는 각각의 화마다 분량이 달라져도 되니까 필요하면 짧게 끊거나 길게 늘여도 된다는 점이 각본가로서는 좋았죠. 더 좋은 건 PPL이 없다는 거. 물론 TV드라마가 제작 여건 때문에 갑자기 홍삼 짜 먹고 그런 장면을 넣을 수밖에 없다는 건 이해해요. 그런데 저는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으니 너무 좋았죠. 표현 수위도 더 높여도 되고, 여러모로 자유로웠어요.

웹툰 원작 영화나 드라마가 상당수 제작되는 요즘 상황을 보면 스토리 기반의 K콘텐츠 산업에서 K웹툰이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런 흐름을 어떻게 보시나요?

산업적인 측면에서 영화나 드라마 쪽에서 다들 웹툰을 주목할 수밖에 없을 거 같아요. 영화나 드라마는 큰돈이 들어가는 산업인데 대중적인 반응을 확인할 수 있고 어느 정도 검증된 것처럼 보이는 이야기가 웹툰에 존재하니까요. 심지어 이미지까지 있는 작품이니 연출에도 참고할 수 있고요. 이런 상황은 당분간 계속될 거 같아요. 다만 웹툰이 드라마나 영화를 위한 사전 단계처럼 여겨지진 않았으면 좋겠어요. 온전히 웹툰으로서 작품의 가치가 인정받고 계속 발전해 나가길 바라죠.


<무빙> 단행본 1권의 작가의 말에 이렇게 쓰셨더라고요. ‘더 허황된 이야기, 더 뻥 같은 이야기, 더 만화 같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말이죠. 만화가가 아닌 각본가로 도전하게 된 것도 그 각오와 무관하지 않을 거 같습니다.

기술이 발전하고 제작 환경이 노련해진 덕분에 예전에는 만화에서나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이야기를 이제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할 수 있겠더라고요. 만약 10년 전에 <무빙> 같은 작품을 드라마로 만들겠다고 했다면 이게 과연 제대로 만들어질 수 있을까 의심했을 텐데 지금은 믿을 수 있는 거죠. 덕분에 이야기를 계속 만들고 싶은 작가 입장에서 봤을 때 꼭 만화만 고집할 필요는 없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무빙>이 만들어지는 걸 보면서 더 그런 믿음이 생겼고요. 영화나 드라마가 만화보다 말이 안 되는 걸 더 놀랍게 보여줄 수 있는 시대가 된 거죠. 그래서 <무빙>이 어떤 반응을 얻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 결과에 따라 제 행보도 결정될 거 같다는 예감도 들어요. 가장 중요한 건 작가로서 <무빙>을 계속 이어 나가고 싶다는 거겠죠. 그게 어디가 됐든, 어떤 방식으로든.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운영하는 웹진 <N콘텐츠>에 쓴 인터뷰 기사를 재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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