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소멸시대는 단순히 인구수 감소만으로 비롯된 문제가 아니다.
1. 고령화사회와 수도권 쏠림 현상
‘노인과 바다’, 그 유명한 헤밍웨이의 소설을 언급하는 게 아니다. 요즘 부산에 거주하는 젊은 세대는 자신들의 고향을 이렇게 정의한다. 부산에는 노인과 바다밖에 없다는, 조소에 가까운 말이다. 그러니까 부산에서 나고 자란 젊은 세대에게 있어서 그들의 고향이란 머무르는 곳이 아니라 떠나야 할 곳처럼 여겨지는 실정이다. 느낌적인 느낌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 현재 부산은 대한민국 특별시와 광역시를 포함한 특광역시 중에서 가장 먼저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도시로 꼽힌다.
65세 인구가 전체 인구수의 14% 이상이 되면 고령사회로 분류되고, 20%가 넘으면 초고령사회로 분류된다. 부산은 통계청 인구추계상 2021년에 20%를 돌파하며 특광역시 최초로 초고령사회로 분류되는 도시가 됐다. 부산을 제외한 초고령사회는 2023년 기준으로 전남, 경북, 전북, 강원, 충남 순으로 부산은 초고령사회로 분류된 유일한 특광역시이기도 하다. 인구 300만 명 이상의 한국 제2도시로 꼽히는 부산의 입지가 예전 같지 않다. 심각한 저출산도 문제이지만 청년층이 부산을 떠나가고 있다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다. 그렇다면 부산의 청년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행정안전부 발표에 따르면 2023년 특광역시 중에서 인구수가 증가한 도시는 인천과 대구 단 두 곳이다. 이 중에서 대구는 경북 군위군이 편입되면서 증가한 것이기에 이주 인구 유입에 따른 증가세를 보인 도시는 인천밖에 없는 셈이다. 그리고 올해 인천광역시는 인구수 300만 명 이상을 기록하며 국내에서 세 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가 됐다. 1980년 부산시 이후로 44년 만에 처음으로 300만 명 이상의 인구수를 가진 도시가 등장한 것이다. 심지어 국내에서 인구수로 봤을 때 제2도시로 꼽히는 부산과 29만 명 차이에 불과한 상황이다.
실질적인 경제지표로 봤을 때에는 인천이 이미 부산을 넘어서고 있다는 조짐이 보인다. 지난 2023년 12월 통계청에서 발표한 ‘2022년 지역소득’ 자료에 따르면 인천의 지역 내 총생산은 104조 원 규모로 부산과 동일했지만 1인당 지역 내 총생산은 3529만 원으로 3161만 원으로 집계된 부산보다 높았다. 부산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구수는 적지만 경제 활동을 하는 인구의 비율은 오히려 인천이 더 높다는 의미다. 인천의 경제규모가 이처럼 부상한 이유는 아무래도 수도권의 영향력이 큰 것으로 보인다. 서울과 경기, 인천을 비롯한 수도권의 지역 내 총생산은 1137조 원으로 전국의 52.5%에 달한다. 소위 일컫는 ‘수도권 쏠림 현상’이 가중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영향력은 수도권 이남의 지방간 격차로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 2월 26일 통계청에서 발표한 ‘통계적 지역분류체계로 본 도시화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1년 기준으로 전체 인구 중 도시에 거주하는 비중을 의미하는 도시화율은 90.7%에 달한다고 집계됐다. 그리고 이중 53.5%는 수도권에 몰려 있다. 흥미로운 건 수도권 외에 충청권의 인구 점유율이 확대됐다는 것이다. 지난 2000년부터 2021년 사이 충청권 인구점유율은 8.6%에서 10%로 증가했다. 경상권이 27,6%에서 24.5%로 3.1% 감소한 것과 대조적이다. 이는 충청권이 경상권에 비해 수도권과 지리적으로 가깝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은 현상으로 보인다. 도시 인구 절반이 수도권에 몰린 상황에서 충청권이 새로운 대안처럼 떠오르고 있다는 말이다.
2. 함께 일어나고 벌어지는 지방 소멸과 지역 격차
이처럼 부산 같은 대도시조차 고령화사회와 인구 감소 추이를 걱정해야 하는 세태다. 가히 지방 소멸의 시대다. 지난 2023년 한국고용정보원에서 발행한 ‘통계로 본 지역고용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소멸위험 지역은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전국 대부분이 해당되는 상황임을 알 수 있다. 심각한 저출산 문제로 인구가 감소하는 것에서 지방 소멸의 원인을 찾기도 하지만 지방의 젊은 인구가 점점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혹은 그 인접지역으로 몰려들고 있다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일 것이다. 실제로 농어촌 낙후지역을 비롯해 젊은 여성 인구의 일자리 기회가 적은 곳일수록 소멸 위험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에서 비수도권 지역으로 인구를 분산시킬 수 있는 정책이 절실해지고 있다.
지난 2022년 정부에서는 2031년까지 10년간 매해마다 1조 원 규모의 지방소멸대응기금 집행할 것이라 발표했다. 지자체에서 계획을 수립하면 이를 평가한 뒤 적정 금액을 분배하는 방식으로 기금을 운용한다. 2022년과 2023년에 제출한 투자계획 현황에 따르면 문화/관광 사업과 관련한 계획이 25% 이상으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시에 정부에서는 지난 2023년부터 4대 지방특구를 조성하겠다고 약속했다. 기업의 지방 이전을 염두에 둔 기회발전특구와 교육에 중점을 둔 지역으로 특성화하는 교육자유특구 그리고 대도시를 거점으로 지방 발전을 촉매하는 도심융합특구와 관광자원과 문화를 기반에 둔 문화특구가 이에 해당한다.
흥미로운 건 지방소멸을 막기 위한 핵심적인 키가 일자리 문제로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문화나 관광 산업을 발전시키는 계획이 오히려 주요한 방법론으로 제시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청년 인구가 지방을 떠나는 이유가 비단 먹고사는 문제만은 아니라는 공감대가 있다는 의미다. 중소기업중앙회가 2019년부터 3년 5개월 동안 소셜미디어나 온라인상에서 MZ세대의 중소기업 취업과 관련한 데이터 26만여 건을 분석한 결과 MZ세대는 급여 수준보다 근무 시간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한다. 물론 낮은 연봉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존재했지만 워라밸이 보장되지 않는 조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더 강하게 나타났다고 한다.
정해진 근무 시간이 지나면 충분한 여가 시간이 보장되는 워라밸에 대한 선호도는 결국 업과 낙을 모두 충족할 수 있는 환경에서 거주하길 선호하는 경향도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예측할 수 있다. 지방에서 살아가는 젊은 세대가 수도권으로 이주하거나 이주를 희망하는 이유는 수도권 지역에서 선택가능한 할 일이 많은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그만큼 선택가능한 놀거리도 많기 때문일 것이다. 단순하게 비교하자면 극장에서 개봉하는 영화의 다양성만 봐도 그렇다. 서울에서는 발품을 팔면 찾아볼 수 있는 예술영화 중 지방에서는 접근 자체가 불가능한 작품들이 적지 않다. 공연이나 전시는 더더욱 그렇다. 누군가에게는 사소한 문제일지 몰라도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과업처럼 느껴지는 고민거리일 것이다.
3. 문화 접근성이 떨어지는 고향을 떠나는 새로운 세대
지난 몇 년 사이 유료로 모집하는 독서 모임 서비스가 성행했다. 다소 개인적인 이야기이지만 해당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의 의뢰로 영화 관련 독서 모임을 6년째 운영하고 있다. 영화와 책을 보고, 읽은 뒤 모인 멤버들이 작품에 관련한 대화를 나누는 자리를 마련하고 준비하는 것이 내 역할이다. 그런데 지난 6년 동안 꾸준히 해당 모임에 참석한 멤버 중 한 분은 서울에 거주하고 있지 않다고 한다. 수도권 지역에 사는 것도 아니다. 한 달에 한 번씩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지방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온다. 이유는 간단하다. 해당 멤버가 사는 지역에서는 다양한 영화에 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이가 없다는 것이 요지였다.
“이런 자리가 만들어지길 간절히 기다렸어요.” 지난해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에서 열린 제1회 문경가은영화제에서 만난 현지 주민으로부터 들었던 말이다. 영화제에 출품된 작품들의 수상 여부를 가리는 심사위원을 맡거나 상영작을 만들고 출연한 감독이나 배우와 함께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는 모더레이터 역할을 맡아 영화제에 참여할 기회가 종종 생기는데 그 덕분에 문경시 가은읍에 방문할 기회도 생겼다. 작은 영화제였고, 처음 개최된 해라 홍보가 미흡했는지 영화제를 찾은 외부 관객이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서 오히려 인근에 사는 주민들의 참여가 눈에 띄었다. 극장도 없는 곳이라 200석 규모의 주무대를 만들고 야외 상영 프로그램을 기획하기도 했지만 동네에 있는 아담한 성당에서 영화를 상영하기도 했다. 관객이 많지는 않았지만 적극적으로 영화제에 대한 반가움을 토로하는 이들이 적지 않아 놀랐다. 극장이 없는 곳으로 찾아온 영화제를 귀중한 기회비용처럼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위에 열거한 경험은 지나치게 단편적이고 보편적인 사례라고 말하긴 어렵겠지만 확실한 건 이런 문화 소비에 갈증을 느끼며 살아가는 이들이 지방에 적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에 익숙한 젊은 세대라면 자신의 거주지가 이러한 문화 접근성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에 박탈감을 느낄 확률이 클 것이다. 문화 소비의 접근성이 거주지를 옮기는 문제에도 충분히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인이 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취미를 영위하는 수준을 넘어 삶의 가능성을 좌우하는 문제로 여겨질 것이다. 서울에서는 볼 수 있는 것을 볼 수 없고, 입을 수 있는 것을 입을 수 없고, 먹을 수 있는 것을 먹을 수 없다는 사실에서 느끼는 바가 상당할 것이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대에는 몰랐기 때문에 원할 수도 없었던 것을 이제는 속속들이 알 수 있는 시대가 됐다. 단지 거기 있다는 것만으로 가능한 것이 여기 있다는 이유로 불가능하다면 결국 여기 있을 이유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는 단순한 추측이 아니다. 숫자가 말해주고 있는 사실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지난 2023년 12월에 발표한 ‘2022년 문화예술 활동 현황조사’에 따르면 2021년 한 해 동안 전국에서 개최된 시각예술 전시는 1만 6151건이라고 하는데 그중 41%에 해당하는 6699건의 전시가 서울에서 열렸다고 한다. 공연예술도 서울에서만 8678건이 개막했고 수도권에 포함되는 경기도까지 포함하면 1만 1341건으로 그다음으로 꼽히는 부산의 2096건과 비교해도 압도적인 수치다. 그런데 ‘인구 10만 명당 문화예술 활동 건수’을 참고하면 서울은 164.4건으로 역시 1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146.9건으로 2위를 기록한 제주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광주와 대전 역시 110.7건과 102.8건으로 상대적으로 높았지만 수도권에 포함된 경기는 되레 31.6건으로 가장 낮았다. 문화적 접근성이 높다고 해서 문화예술 활동 건수가 비례하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4. 지역에 없는 콘텐츠를 찾아내고 만드는 것이 지방소멸 시대의 백년지대계
문화 사업이 수도권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건 그만큼 인구수가 많기 때문이다. 잠재 수요가 큰 만큼 공급도 활발해진다. 이런 상황에서는 수도권과 지방의 문화 격차는 점점 커질 수밖에 없다. 수도권으로 혹은 최대한 수도권과 가까운 지역으로 이주하는 이들은 늘어날 것이기에 상대적으로 비수도권 지역의 수요는 소외될 가능성이 클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수요가 마땅치 않은 곳에 공급을 요구할 수도 없을 것이다. 방법은 인프라를 조성하는 것이다. 단발적인 효과도 미비한 무분별한 지역 축제로 예산을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에 어울리는 스토리를 개발하고 이를 토대로 로컬의 정체성을 확고히 다지는 밑그림을 그려 나가는 밑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물론 어려운 일이다. 당장 가시적인 성과를 바라는 여론도 있을 것이고, 4년마다 바뀌는 지자체장의 임기마다 사업 방향성이 바뀔 수 있다는 변수도 분명한 걸림돌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의미 없는 낭비보다는 의미 있는 시도가 낫지 않을까? 이를 테면 여기서 말하는 의미 없는 낭비란 이런 것이다. 지난 2023년 경남 거제시 조선해양문화관 광장에 있던 120t 무게의 거북선이 철거돼 폐기된 상황 같은 것 말이다. 2011년 경남도에서 ‘이순신 장군 기념사업’ 일환으로 16억의 예산을 들여 만든 것이 결국 10여년 만에 쓰레기가 된 것이다. 이런 경우는 비단 경남도만의 문제가 아니다. 주민이 바라지도 않았고, 외지인의 관심도 끌지 못할 시설이나 조형물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밑도 끝도 없는 공약 아래 숱하게 낭비되는 사례는 차고 넘친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역사는 콘텐츠가 된다. 하지만 모든 곳에 역사가 있는 건 아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시대의 역사를 만들어야 한다.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어쩌면 가까운 일본에서 힌트를 얻을 수도 있겠다. 시코쿠 지방의 가가와현 인근에 자리한 섬 나오시마는 한동안 버려진 섬이었다. 1900년대 초에는 구리제련소를 활발하게 가동하며 3000여명의 주민이 살았다. 하지만 중공업 산업의 하락과 함께 섬의 경기도 쇠퇴하면서 구리제련소에서 나온 산업폐기물로 뒤덮힌 채 버려진 섬이 됐다. 젊은이들은 떠나가고, 노인들만 남아서 300여명에 불과한 사람만 남게 됐다. 하지만 오늘날 나오시마는 매년 전 세계에서 수십만명이 찾아오는 예술 관광지가 됐다.
일본 베네세그룹의 회장 후쿠다케 소이치로는 나오시마 출신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이 섬을 재생시킬 방안을 구상하게 된다. 그래서 평소 친분이 있었던 건축가 안도 다다오에게 고민을 의뢰했고, 안도 다다오의 지휘 아래 미술관과 호텔을 건축하며 자연 경관을 정화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 결과 버려진 섬이 아니라 미술과 건축의 메카로 탈바꿈하며 새로운 명성을 얻었고 사람들을 다시 불러들이는 땅이 됐다. 페리를 타고 섬에 정박하자마자 보이는 쿠사마 야요이의 유명한 땡떙이 호박부터 눈길을 끄는 나오시마에는 베네세 하우스 뮤지엄과 지중 미술관과 이우환 미술관 등 미술 애호가라면 꼭 한 번 들려야 한다는 명소들이 있지만 더 흥미로운 건 섬 곳곳을 연결하는 예술 프로젝트가 평범한 풍경 속에 비범하게 자리하며 여행의 동선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훌륭한 대가의 결과물을 본다는 기대 이전에 흥미로운 이야기를 듣는 재미가 주어진다. 훌륭한 콘텐츠란 결국 이런 것이다.
그러니까 귀를 기울이게 만드는 이야기를 찾아야 한다. 그렇기 위해서는 지역에 무엇이 있는가를 잘 알아야 되겠지만 지역에 정말 필요한 게 무엇인지 면밀히 듣고 상상하는 것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자연에 기대는 한철 축제가 아니라 그 자연 속에 함께 자리할 수 있는 만년의 이야기를 발견하고 개발하는 것이 결국 그 지역의 역사를 만드는 과정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한 지자체의 노력도 중요하겠지만 중앙 정부의 적절한 후원과 감시도 필요할 것이다. 적어도 돈을 쓴다면 의미 없는 낭비가 아니라 의미 있는 시간을 벌어야 할 것이므로, 당장 지금을 위한 탑을 쌓는 것이 아니라 다음을 잇는 다리를 건설한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가시적인 성과가 아니라 장기적인 대비를 시작한다는 안목이 필요하다. 그렇게 지방소멸 시대의 백년지대계를 세워야 할 것이다.
(한국산업기술재단에서 운영하는 균형발전종합정보시스템 NABIS 뉴스레터 커버스토리에 실린 글을 재편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