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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용준 May 07. 2024

4월의 봄을 권하는 두 권의 책

'작별하지 않는다'와 '봄은 핑계고'가 전하는 4월의 봄.

계절은 언제나 정직하고 성실하다. 때가 오면 주저하지 않고 자신이 할 일을 한다. 봄이 되면 틔울 것을 틔우고, 피울 것을 피운다. 그렇게 다시 시작되는 새로운 계절의 한 주기를 선언한다. 그럼으로써 새로운 한 해의 시작을 지나쳐온 이들에게 또 한 번 출발선에 설 기회를 안기듯, 봄은 늘 설레고 벅찬 계절이다. 그러한 봄이 시작되는 것은 보통 3월부터라고 하지만 진정 봄을 만끽할 수 있는 마땅한 시간은 대체로 4월이다. 그래서 완연한 봄이 찾아오는 4월에 어울리는, 두 얼굴처럼 떠오르는 책 두 권을 펼쳐봤다. 

<작별하지 않는다> 한강, 문학동네

“눈처럼 가볍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나 눈에도 무게가 있다. 이 물방울만큼. 새처럼 가볍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들에게도 무게가 있다.”


<채식주의자>를 쓴 소설가 한강은 한국인 최초로 영국의 맨부커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한강이 쓴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는 4월과 함께 읽고 기억해야 할 책이다. ‘성근 눈이 내리고 있었다’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작별하지 않는다>는 시작부터 끝까지 내내 눈이 내리는 계절 안에 머무른다. 그 추운 계절을 배경으로 서울에 거주하던 소설가 경하가 제주로 내려가 오랜 친구 인선을 만나 겪게 되는 일련의 여정을 따라가면서 그 사이사이로 틈입하는 두 인물의 지난 사연과 내면적인 고백을 함께 듣게 된다. 그 과정에서 이 소설이 왜 제주도를 배경에 두고 있는지, 궁극적인 목적지로 당도하게 된다. 


일찍이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환기하는 애달픈 제의라 할 수 있는 소설 <소년이 온다>를 집필한 바 있는 한강은 <작별하지 않는다>를 통해 제주 4.3 사건의 참담한 역사 한복판으로 독자를 인도한다. 1947년부터 1954년까지, 난데없는 이념 갈등에 내몰려 죽은 제주도 사람만 3만 명이 넘는다. 제주도민 아홉 중 하나가 죽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갓난아이까지 무자비하게 살해됐다. 제주 4.3 사건은 한국 근현대사 안에서 가장 끔찍한 봄이었다. 무엇보다도 제주 4.3 사건은 미군정 주도하에 벌어진 민간인 학살이라는 사실 자체가 세간에 제대로 알려질 기회를 얻지 못했다는 점에서 여전한 현재진행형의 비극이다. 


하지만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 4.3 사건의 그러한 현실을 겨냥한 공분을 일으키는 소설이 아니다. 오히려 어디로 당도할지 모르는 여정 중에서 불쑥 머리를 든 역사와 마주하고 나직한 목소리로 그 안에 자리한 수많은 개인들의 비극에 귀 기울이는 체험에 가깝다. 그 과정에서 어떤 통증 같은 것을 느낀다면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유를 모르고 스러진 수많은 이들의 죽음으로 가득했던 제주도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기억은 그 고통스러운 역사로부터 작별하지 않는 이들과 함께 여전히 형형한 통증으로 보전되는 덕분이리라. 그러니 당신도 4월에는 꼭 <작별하지 않는다>를 통해 만나기를, 작별하지 않기를 권한다.

<봄은 핑계고> 이주연, 북스톤

“좋은 환경을 찾는 안목과 그것을 내 것인 양 잠시 빌려와 누리는 상상력이 있다면 사실 봄은 어디나 천국이다.”


‘놀고 먹고 일할 결심’이라는 부제를 내건 <봄은 핑계고>는 프리랜서 미식 기자로 일하는 이주연 작가의 에세이집이다. 2013년에 결혼을 하면서 신혼집을 마련한 종로구 서촌에서 터를 잡은 이후로 11년간 한 동네에서 살아가며 부제처럼 ‘놀고 먹고 일하며’ 얻은 이야기들을 솔직하고 담백한 썰로 풀어냈다. <봄은 핑계고>라는 제목처럼 봄은 거들뿐, 서촌에서 살아가며 느낀 소소한 풍류를 술술 써 내려갔다. 


요즘처럼 SNS를 통해 개인의 일거수일투족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시대에서 지극히 사적인 삶을 굳이 읽어야 할까 생각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일단 서촌이라는 지역에 남다른 애정이 있거나 특별한 관심이 있다면 주목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미식기자로 활동하는 이주연 작가가 쓴 <봄은 핑계고>는 서촌연가에 가까운 책이다. 남편과 결혼 후 처음 서촌에 터를 잡게 된 계기부터 오래된 구옥 연립주택인 옥인연립을 매입해 가히 새로 집을 짓는 수준으로 뜯어고치고 그 집에서 ‘시네밋터블(Cinemeetable)’이라는 개성 있는 소셜 다이닝 행사를 열면서 누구보다 서촌살이에 진심이기 때문이다. 


서울 한복판에 자리한 종로구에서도 경복궁 인근에 자리한 서촌은 어쩌면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동네이면서도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것이 많은 지역이기도 하지만 수많은 이들이 찾는 명소이기도 하다. 마치 작은 물길을 따라가듯 동네 곳곳을 잇는 비좁은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지극히 한국적인 풍경과 이색적인 정경이 공존하는 다양한 삶의 양식을 마주할 수 있다. 동시에 거대한 바위산인 인왕산이 내려다보는 수성동계곡을 비롯해 책에서 소개하는 서촌 곳곳의 풍류와 풍미를 즐겨보고 싶은 마음이 절로 동한다. 거기에 동네 놀이터에서 우연히 마주친 고양이를 입양하게 된 경위와 서촌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이어지고 깊어진 인연들도 하나하나 예사롭지 않다. 어쩌면 서촌에서 살고자 하는 이방인을 위한 가이드북 같다고 할까? 무엇보다도 술 좋아하는 작가 성향에 어울리듯 책이 술술 읽힌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운영하는 웹진 <K-Book Trends>에 쓴 글을 재편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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