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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용준 May 27. 2024

K콘텐츠의 위기는 어디 있는가

'K'라는 알파벳으로 위시한 산업은 문화에 대한 인식을 어떻게 지우는가.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것이 바로 한국영화 위기론이다. 물론 지난 어느 때보다도 한국영화 위기론이 분분한 작금의 상황이 위태로워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팬데믹 이후로 바닥을 친 극장 관객수는 엔데믹 이후에도 팬데믹 이전 상황과 비교했을 때 반토막 수준에 머무르고 있고, 개봉 시기를 잡지 못한 몇몇 작품의 개봉 소식은 여전히 요원하며 덕분에 새롭게 제작되는 작품수도 예년에 비해 감소세가 역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위 천만영화라 불리는, 10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가 등장한다. 작년에는 한 편도 아니고, 두 편이나, <범죄도시3>와 <서울의 봄>이 천만영화에 등극했고, 올해에는 연초부터 <파묘>가 그랬고 <범죄도시4>가 바로 뒤를 이어 천만영화의 흐름을 이어갔다. 시간 간격으로 보자면 불과 1년여 사이에 네 편의 영화가 천만영화로 등극한 것이다. 한국영화 위기론과 천만영화 대흥행이 정체불명의 상태로 공존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 같은 한국영화 산업을 보고 있는 것만 같다.


물론 앞서 기술한 것처럼 현재 한국영화 위기론은 허상이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위기는 팬데믹 이후로 극장 관람 경험이 단절된 관객들이 엔데믹 이후로 예년처럼 극장으로 돌아오지 않는 상황에서 비롯된 문제라는 점에서 근본적인 위기감을 부채질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렇게 사라진 관객은 어디로 간 것일까? 극장에서 영화를 보던 이들은 대체 어디서 무엇을 보고 있는 걸까?

지난 2023년 미국의 유명한 엔터테인먼트 전문 매체들은 한국의 스트리밍 서비스 분야가 지속적인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는 기사를 발표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지역 컨설팅 기업인 미디어 파트너스 아시아(MPA)에서 발표한 보고서를 인용했는데 <버라이어티>의 해당 기사에 따르면 한국의 OTT서비스 구독자가 2023년 3분기에만 70만 명 이상 증가했고 전체 구독자 수가 1900만 명 이상에 달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OTT 서비스 시장을 주도하는 건 시장의 선두주자로 꼽히는 넷플릭스다. 넷플릭스는 2023년 3분기 전체 신규 구독자 중 29%를 끌어들이며 650만 명에 달하는 구독자를 확보했다. 각각 380만 명과 300만 명이 구독한 티빙과 웨이브가 그 뒤를 이었고, <무빙>으로 한국 시장에서 처음 의미 있는 반향을 일으킨 디즈니플러스도 한국 OTT 시장의 성장을 견인했다고 평가했다. 이렇듯 팬데믹으로 인해 보편화된 OTT 관람이 극장 관람 수요의 감소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할리우드 리포트>의 기사에 따르면 2022년 1월부터 2023년 3월까지, 아시아 태평양 일대에서 구독형 스트리밍 서비스(SVOD)를 소비하는 국가 중 자국 규제가 심한 인도와 중국을 제외한 주요 시장으로 꼽히는 10개 국가에서 한국 콘텐츠가 미국 콘텐츠보다 높은 점유율을 차지했다고 한다. 미국에서 제작한 콘텐츠가 10개 국가의 총 시청률 중 30%를 차지한 반면, 한국 콘텐츠는 40%의 점유율을 기록했으며 대부분의 카테고리에서 최상위권을 차지했다는 것이다.


<데드라인>에서도 2023년 상반기 아시아 전역에서 한국 콘텐츠의 점유율이 상당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냈다. 구체적으로 <더 글로리>와 <모범택시> 같은 작품이 반향을 일으켰으며 이는 스타 파워와 독점 플랫폼의 집중력 그리고 현지 더빙 등의 요인이 작용한 덕분이라 분석했다. 동시에 이보다 앞선 2021년경에는 <오징어 게임>과 <동네변호사 조들호> 같은 작품이 한국 콘텐츠의 흥행을 주도했다고 덧붙였다.

MPA의 보고서는 한국 콘텐츠의 성공 요인을 ‘자국의 대규모 잠재 고객과 결합된 방대한 도달 범위(a large domestic audience combined with massive reach)’라 꼽았다. 구체적으로 부연하자면, 한동안 한국 드라마의 주장르는 로맨스와 코미디였지만 한국 콘텐츠에 투자하는 플랫폼 투자가 증가하면서 기존 콘텐츠와 다른 차별화와 고급화를 꾀하는 기획이 확대됐고 이로 인해 범죄, 스릴러, SF, 판타지 등 기존에 없던 콘텐츠들이 부상하며 한국 콘텐츠를 소비하는 시청자층이 보다 다양하게 확대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이 있고, 상승장 뒤에는 언제나 하락장이 오기 마련이다. 그래서 위기론은 늘 무언가 괜찮다고 여겨지는 시점에서 대두된다. 소위 말하는 K콘텐츠의 영향력이 반감될 수 있다는 기우도 지금 K콘텐츠가 그 어느 때보다 너른 영향력을 행사하는 시대를 지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우는 막연한 예감에 불과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실제로 달갑지 않은 소식들이 심심찮게 들려오고 있다.


지난 팬데믹 동안 극장을 주요 플랫폼으로 둔 영화 업계의 침체는 뚜렷한 반면 OTT 플랫폼의 콘텐츠 수요 증대와 함께 드라마 업계는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코로나19 유행은 전 세계적으로 콘텐츠 제작 환경을 악화시키는 영향력을 발휘했지만 한국은 예외적으로 되레 드라마 제작 편수가 증가하는 상황을 맞이했다. 보다 정확하게는 OTT 플랫폼에서 제작하는 오리지널 시리즈 제작이 활발해졌다. 2021년에는 140편에 달했던 드라마 제작 편수는 2022년에 160편으로 증가했고, 플랫폼의 투자와 함께 제작 비용도 함께 상승했다. 팬데믹으로 인해 방구석 OTT 구독자가 전 세계적으로 늘어나는 가운데 새로운 콘텐츠 수급이 되레 어려워진 상황 속에서 한국은 그러한 수요를 충족시켜 주는 공급이 원활한 주요 공장이 된 셈이다. 팬데믹은 확실한 기회가 됐다.


위기란 대체로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시작된다. 최근 들리는 소식에 따르면 제작이 됐지만 방영될 기회를 잡지 못한 드라마가 적지 않다고 한다. 지난 몇 년 사이 콘텐츠를 필요로 하는 선택지는 무궁무진했다. 시류에 맞춰 성장을 견인하기 위한 투자를 마다하지 않는 OTT 플랫폼들의 자본력이 기획과 제작을 부추긴 덕분이다. 하지만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팬데믹 기간 동안 출혈을 감수하며 플랫폼 성장에 투자를 거듭했던 OTT 업계는 숨을 고르고 있다. 엔데믹 이후로 만회가 필요한 적자 구조를 개선하고 긴축경영에 들어가면서 작품 선별에 보다 신중해진 OTT 플랫폼의 사정과 함께 공급망을 찾지 못한 콘텐츠들이 갈 길을 잃고 방치되는 상황이다. K콘텐츠를 위한 기회의 땅처럼 여겨진 OTT 플랫폼은 예전만큼 너그럽지 않다.


최근에는 지상파 방송국도 드라마 편성 비중을 확 줄이는 추세다. 평일 밤시간에 당연히 방영됐던 미니시리즈 드라마는 대부분 자취를 감추었다. 해당 시간 편성이 예능 프로그램으로 대체된 탓이다. 제작 비용이 증가한 반면 시청률은 좀처럼 오르지 않는 드라마 대신 상대적으로 제작비 부담이 덜하고 방영 후 유튜브 같은 플랫폼을 비롯한 다경로 채널로 재활용이 가능한 예능 프로그램들이 드라마보다 가성비가 좋다고 여긴 탓이다. 그로 인해 업계에서는 공개되지 못한 드라마가 100여 편에 달한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 그만큼 새로운 작품을 기획하는 움직임도 둔화되는 상황이다. 사실상 K콘텐츠가 동맥경화 상태에 빠진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은 K콘텐츠의 신선도를 떨어뜨리고 그 영향력을 지워버릴 수 있는 악재가 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그런데 이런 위기 상황 덕분에 깨닫는 바도 있다. ‘K’란 무엇인가. 한국영화, 한국드라마 등 한국에서 만든 콘텐츠를 우리는 언젠가부터 K라는 알파벳을 위시해 명명하고 있다. 무비, 드라마, 포괄적으로는 K콘텐츠, 모든 것이 K로 통합되고 수렴한다. K팝의 영향 덕분일 수도 있겠지만 언젠가부터 한국에서 제작하고, 소비하고, 유행하는 대중예술이나 라이프스타일이 K로 묶이는 것에 대해 우리는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이를 테면 <기생충>이나 <오징어 게임>은 K콘텐츠이기 이전에 <기생충>이고, <오징어 게임>일 것이다. 한국에서 만든 무엇이기 전에 어느 창작자 개인으로부터 시작된 고유명사인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K콘텐츠의 영향력을 논하기 시작하면서 창작적 결과로써 작품을 언급하기보단 산업적 성취를 우선 주목하는 것에 익숙해진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K콘텐츠의 위기라는 말 자체가 본질적인 위기의 징후처럼 느껴진다. 지나친 비약처럼 들릴지 몰라도, 지금 실제로 콘텐츠 산업에 위기가 도래했다면 그건 우리가 지나치게 K로 위시한 산업적 가치에 골몰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물론 돈 되는 문화가 있죠. 그러나 산업적으로 얼마만큼 수익성이 발생한다는 식의 경제적 효과 여부로만 따지면 문화는 그런 사람의 논리를 따라갈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제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 문화적인 마인드를 가져야 산업도 발전하는 시기가 온다는 거였죠. 문화가 산업을 이끈다는 인식이 소위 말하는 콘텐츠 산업이라는 거예요.” 몇 해 전 인터뷰차 만난 이창동 감독에게서 들었던 말이다. 결국 문화라는 인식이 결여되면 콘텐츠 산업의 위기는 자연스레 찾아올 것이다.


K콘텐츠라는 정의는 간편하지만 'K'라는 알파벳은 가끔씩 지나치게 산업적 관점으로 문화를 바라보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그러한 경향 안에서 대두되는 위기론 역시 근본적인 창작 현실을 들여다보는 계기를 외면하고 성과라고 여겨지는 숫자를 셈하는 데 집중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그것이 되레 위기론조차도 무색한 현실을 부를지도 모를 일이다. 고로 위기를 논할 수 있을 때, 어쩌면 그때가 새로운 기회일 것이다. 바로 지금 말이다. 산업적 규모가 커질수록 최소한의 가능성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되새겨야 할 때는 바로 지금이다. 칸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이나 수상의 영광을 목도할 수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국의 작은 영화제에서 발견하고 함양할 원석의 가능성을 간과하지 않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최근 그러한 가능성에 지원하던 작은 고리들이 끊어지고 있다는 소식이 적지 않게 들려온다. 거기서 K콘텐츠의 위기를 느낀다. 한국영화든, 한국드라마든, 성공한 K콘텐츠란 기발하고 탁월한 발상을 지닌 작가와 감독이 만들어낸 것이니까, 결국 사람이 미래다. K콘텐츠의 청사진도 결국 그들이 그릴 미래일 것이다. 위기도, 기회도,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그걸 알아야 한다.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운영하는 웹진 '한국영화'에 쓴 칼럼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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