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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용준 Apr 04. 2018

<블레이드 러너 2049>로맨틱한 유전자

<블레이드 러너 2049>는 뜻밖의 가능성을 일깨운 속편이다.

1982년에 처음 공개된 <블레이드 러너>는 2019년의 미래를 배경으로 한 영화였다. 그러니까 2017년이 지나가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 <블레이드 러너>의 세계란 불과 2년 뒤의 미래인 것이다. 덕분에 <블레이드 러너>가 그린 미래와 동시대 풍경의 간극이 보다 명확해졌음을 실감하게 됐지만 반대로 영화가 던지는 물음표는 보다 유효해지는 인상이기도 하다.



<블레이드 러너>가 그리는 2019년의 인류는 고도로 발달한 인조인간을 지칭하는 리플리컨트를 군대로 조직해 포화 상태의 지구를 대체할 식민지 행성, 즉 오프월드 개척에 박차를 가한다. 그리고 식민지 행성으로 이주할 권한을 갖지 못한 이들만 지구에 남아 살아간다. 그러니까 <블레이드 러너>의 LA는 사실상 선택받지 못한 낙오자들의 영토다. 빽빽하게 이어지는 마천루들이 휘황찬란하게 두른 소비 지향적인 광고들은 미래 사회의 풍요를 속삭인다. 하지만 협곡처럼 깊고 길게 이어지는 빌딩 사이의 골목에 드리운 음침한 풍경은 자본주의가 약속한 풍요를 좇으며 끝없이 빈곤과 허무에 허덕이는 어두운 미래를 예언하는 것만 같다. 한편으론 인간보다도 더 인간다운 삶을 갈망하고 고찰하는 듯한 리플리컨트의 비애를 통해 인간성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다는 점에서 고도화된 기술적 편의 속에서 되레 지적인 빈곤함과 심리적인 허무를 체감하는 현대인들의 고민과 어울리는 작품이기도 하다.


<블레이드 러너 2049>는 전편으로부터 30년 뒤인 2049년의 LA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보다 정확하게는 영화사의 취향대로 편집해낸 1982년의 개봉판이 아니라 감독인 리들리 스콧이 자신의 비전에 따라 재편집하고 몇몇 장면은 재촬영까지 감행해 다시 완성한 감독판 중에서도 최종 버전이라 할 수 있는, 2007년에 공개한 ‘파이널 컷’을 잇는 속편이다. 영화 도입부에선 2019년과 2049년 사이, <블레이드 러너>의 세계관에서 30년 동안 벌어진 서사를 몇 줄의 자막으로 간단히 압축해 설명한다. 수명 제한이 없는 리플리컨트 모델 넥서스8의 출시 이후로 위기의식을 느낀 인간들의 인류 우월 운동이 벌어졌고, 2022년 LA에는 원인 불명의 대정전 사태가 벌어진 탓에 전자 기록물이 대거 훼손됐으며 경제난과 식량난까지 도래했다. 이로 인해 리플리컨트에 대한 불신은 극심해졌고 이는 리플리컨트를 생산하던 타이렐사의 도산으로 이어졌다. 폐기 대상으로 분류된 리플리컨트들은 블레이드 러너의 추적을 받게 된다. 그리고 합성 농법을 제시하며 인류의 식량난을 해결한 과학자 니안더 월레스(재러드 레토)는 타이렐사를 인수해 리플리컨트 연구를 이어받고 완벽하게 인간에게 복종하는 리플리컨트 모델 넥서스9을 발표한다. 그리하여 다시 리플리컨트와 인간의 공존이 이뤄진다. 이 모든 과정은 <블레이드 러너 2049>와 함께 공개된 세 편의 단편 프리퀄을 통해 목격할 수 있는 내용이다.


기본적으로 <블레이드 러너 2049>는 <블레이드 러너>의 판본을 바탕으로 다시 설계한 작품처럼 보인다. 속편으로서 이야기를 이어받는 수준을 넘어 전편의 주요한 소재와 관계 구도를 새롭게 발전시켜 재가공한 유사 판본처럼 읽힌다는 의미다. 블레이드 러너는 퇴역 대상으로 지정된 리플리컨트 모델을 찾아내 폐기하는 특수 경찰을 의미한다. 2019년의 블레이드 러너 데커드(해리슨 포드)는 식민지 행성 개척에 동원된 리플리컨트 중 명령에 복종하지 않고 지구로 귀환해 잠적한 신형 모델 넥서스6 무리를 추적한다. 2049년의 블레이드 러너 K(라이언 고슬링)는 인류에 위협적인 존재로 판단되는 구형 모델 넥서스8을 찾아서 퇴역시키는 임무를 수행한다. 그리고 <블레이드 러너 2049>는 <블레이드 러너>의 말미에 남겨진 물음표를 이어받듯 시작된다.



<블레이드 러너> 후반부에서 데커드는 넥서스6의 마지막 생존 모델인 로이(룻거 하우어)를 추적해 제거하려 한다. 그 과정에서 죽을 위기에 처한 데커드를 구한 로이는 수명이 끝나가는 와중에 이렇게 말한다. “나는 너희 인간들이 상상도 못 할 것을 봤지.” 리플리컨트를 추적해가는 K의 모습으로 시작되는 <블레이드 러너 2049>에서 K에게 체포되길 거부하는 넥서스8 모델의 리플리컨트 사퍼 모튼(데이브 바티스타)은 이렇게 말한다. “너희 신모델들은 인간들 밑이나 닦아주지. 한 번도 기적을 본 적이 없으니까.” 이 대사는 K가 리플리컨트의 신모델임을 알려주는 정보로서 기능하는 동시에 <블레이드 러너 2049>가 <블레이드 러너>가 남긴 존재론적 물음에 관한 여운을 고스란히 이어받을 것임을 선언하는 바이기도 하다. 존재의 신비함과 존엄성을 사유하는 법을 잃어버린 이들에게 경종을 울리고자 격발되는 탄환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블레이드 러너>의 세계관에서 폐기 대상으로 지목된 리플리컨트 모델인 넥서스6와 넥서스8은 인간과 최고로 근접한 모델로 묘사된다. 인간처럼 느끼고 생각하며 한편으론 성장하고 성숙하는 존재임을 의미한다. 식민지 행성을 개척하는 과정에서 상상도 못 할 것을 보고 지구로 돌아온 로이나 기적을 봤다고 말하는 사퍼 모튼은 인간에 의해 생이 결정되는 것을 거부하는 존재가 된다. 결국 인간처럼 성장하고 진화하는 존재로서 삶을 갈망하게 된다. <블레이드 러너 2049>가 그리는 리플리컨트의 진화란 단순히 사유하는 존재로서의 영역에 국한하지 않는다. 한발 더 나아가 도입부부터 강력한 물음을 던진다. 예정된 임무를 수행한 K는 우연한 계기로 사퍼 모튼의 주거지 주변에 묻혀 있던 유골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유골이 출산한 흔적이 있는 여성의 것임을 알게 되는데, 놀랍게도 그 유골에서 식별 번호를 발견하게 된다. 리플리컨트의 자연 출산 가능성을 추정하게 된다. 이후 K는 유골의 주인공이 낳았을 것이라 추정되는 아이를 추적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그 과정에서 K는 자신의 임무가 자신의 꿈속에서 거듭 등장하는 어떤 기억과 깊은 연관이 있다고 의심하게 된다. 인간을 닮은 껍데기가 아닌, 인간처럼 태어난 영혼일지도 모른다는 흥분을 느낀다.


사실 <블레이드 러너>는 보이지 않는 과녁을 향해 당기는 방아쇠처럼 느껴지는 작품이다. 영화가 품은 물음은 깊은 사유를 요구할 순 있어도 명확한 답을 바라는 것 같진 않다. 어둡고 음울한 시대상을 그리지만 인류의 현실에는 딱히 관심도, 감정도 없어 보인다는 점에서는 적극적으로 허무주의를 껴안은 작품처럼 보이기도 한다. 딱히 인류에 대한 애정이 없어 보인다는 점에서 더욱 비관적인 감상을 부추긴다. 오히려 리플리컨트에 대한 애정이 커 보인다. <블레이드 러너>에서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캐릭터가 데커드가 아닌 로이라는 점은 중요한 단서다. 물론 데커드가 인간인지 리플리컨트인지, 이에 대한 의문은 2049년의 세계관에서도 명확하게 해소되는 것 같진 않지만 인간이라 추정되는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느끼지 못하는 건 애초에 해당 캐릭터에게 별다른 흥미를 느낄 구석을 마련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블레이드 러너 2049>의 K는 데커드와 달리 연민을 자아내는 인물이다. 관객의 마음을 동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블레이드 러너>의 데커드가 리플리컨트를 쫓는 임무를 기계적으로 수행해나가는 블레이드 러너였던 것과 달리 <블레이드 러너 2049>는 K의 사적인 일상을 두루 살피고 그의 외로움을 짐작하게 만든다. 인간에게 철저하게 복종하도록 프로그래밍된 리플리컨트인 K에게는 명확한 이름도 없다. K가 유일하게 마음을 열고 대화하는 건 인공지능 스피커의 진화형으로 보이는 홀로그램 서비스로 구현되는 조이(아나 디 아르마스)다. 서로를 깊게 애모하는 두 존재의 교감은 <블레이드 러너 2049>의 세계관에 연민과 애수의 감정을 이입하도록 이끈다. 그리고 이 작품이 로맨틱한 감상을 유도하는 건 전작에서 간과된 자질을 발굴하고 적극적으로 확장해낸 결과이기도 하다. <블레이드 러너 2049>는 <블레이드 러너>에서 데커드와 레이첼(숀 영)이 도망간 이후의 상황을 추적하는 이야기다. 자신이 제거해야 하는 리플리컨트였던 레이첼과 사랑에 빠진 데커드가 결행한 사랑의 도피가 <블레이드 러너>의 결말이었다. 그런 면에서 <블레이드 러너 2049>는 <블레이드 러너>에 잠재된 로맨틱한 유전자를 타고난 속편인 셈이다.


한편 드니 빌뇌브의 <블레이드 러너 2049>와 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는 감각적인 자극이 다른 영화처럼 느껴진다. 특히 사운드 전략의 차이가 두드러지는데 신시사이저의 기계적인 사운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반젤리스의 전위적인 스코어가 <블레이드 러너>라는 가상 세계를 영화 밖의 현실과 적극적으로 분리해내는 데 일조하며 감상을 지배한다면, 한스 짐머가 조율해낸 <블레이드 러너 2049>의 사운드는 타악기의 울림으로 현실 감각을 일깨우고 전반적인 극의 흐름을 보다 안정적으로 보조하는 데 치중한 인상이다. 그런 면에서 <블레이드 러너 2049>는 <블레이드 러너>가 그려낸 미래상을 계승하면서도 전작과 달리 감정 이입을 꾀하고 인간성의 회복과 치유를 처방하며 마침표를 찍는 작품이란 점에서 또 다른 기질을 타고난 후손처럼 보인다. 어떤 의미에선 선대가 해결하지 못한 물음 사이에서 나름의 정답을 찾기 위해 분투한 후대의 답변처럼 보이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두 작품이 그린 미래 도시에서 가장 불투명한 존재는 리플리컨트가 아닌 인간이다. 덕분에 영화의 결말에서 인간의 존재감이 지워져도 사랑은 존재할 수 있다는 역설에 힘이 실린다. 인간의 부재야말로 완전한 휴머니즘을 완성하는 필요조건일지도 모른다는 허무가 전해진다. 그것이 의외로 쓸쓸하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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