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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용준 Apr 04. 2018

<빌리 진 킹: 세기의 대결>시대와 겨룬 여인

<빌리 진 킹: 세기의 대결>은 과거가 아닌 미래를 가리키는 영화다.

1973년 9월 20일, 휴스턴 애스트로돔에서 전 세계가 주목하는 테니스 경기가 열렸다. 경기장에 모인 관중 수만 무려 3만여 명에 달했다. 전 세계적으로 5000만 명이 이 경기를 관전했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녹화중계한 경기였다. 이 승부가 전 세계의 이목을 끈 건 10만 달러에 달하는 거액의 상금 때문만은 아니었다. 여성의 열등함을 주장하는 남자와 실력으로 이를 반증하려는 여자의 테니스 성 대결이었기 때문이다. 당대 최고의 여성 테니스 선수로 꼽혔던 빌리 진 킹과 당시엔 은퇴한 뒤였으나 현역 시절 최고의 실력을 자랑했던 남성 테니스 선수로 테니스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된 바비 릭스가 바로 그 대결의 주인공이었다. 바비 릭스는 ‘여자 테니스 경기는 열등하다’고 주장함으로써 이 대결을 성사시켰다. 하지만 바비 릭스와 처음으로 대결한 것은 빌리 진 킹이 아니라 빌리 진 킹의 라이벌로 언급됐던 마거릿 코트였다.


첫 번째 성 대결을 두고 대부분의 관계자들은 마거릿 코트의 우세를 점쳤다. 은퇴한 50대 남자가 30세인 현역 여성 선수를 이기긴 어려울 것이라 여겼다. 경기는 5월 13일 어머니날에 펼쳐졌다. 세간에선 이날의 경기를 두고 ‘어머니날의 학살’이라 불렀다. 바비 릭스가 완승을 거뒀기 때문이었다. 경기가 끝나자 중계진은 이렇게 말했다. “모성과 여성해방운동에 대한 승리인가요?” 이는 당시 활발하게 전개됐던 여성 인권 신장 운동에 대한 우회적인 비아냥처럼 들렸다. 이런 결과는 빌리 진 킹에게 네트를 넘어 날아드는 서브 공이나 다름없었다. 바비 릭스의 광대 짓에 놀아날 이유가 없었던 그녀는 가만히 서서 서브 포인트를 뺏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빌리 진 킹: 세기의 대결>(이하 <세기의 대결>)의 대사처럼 ‘교통사고처럼 운명이 빌리 진 킹을 덮쳤다’.



<세기의 대결>은 빌리 진 킹과 바비 릭스가 펼친 테니스 성 대결을 그린 영화다. 잘 알려진 대로 이 대결에서 빌리 진 킹은 3세트를 내리 따내며 완승을 거뒀다. <세기의 대결>이 영화화될 수 있었던 건 아마 그 덕분일 것이다. 그 성 대결에서 빌리 진 킹이 바비 릭스를 상대로 승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기의 대결>은 남성 우월주의자 바비 릭스를 꺾은 여성 빌리 진 킹의 영웅담으로 압축해 설명한 작품이 아니다. 영화는 1972년 US 오픈 여자 단식에서 우승하는 빌리 진 킹(엠마 스톤)의 모습을 비추며 시작된다. 그 뒤로 어두운 사무실 안에 자리한 한 남자의 모습을 비춘다. 그는 닉슨 대통령의 축하 전화를 받는 빌리 진 킹의 모습을 TV로 지켜보고 있다. 그리고 책상 아래에서 꺼내든 테니스 라켓을 들고 손으로 종이를 구긴 뒤 신중하게 휴지통을 겨냥해 튕겨본다. 하지만 종이는 휴지통을 빗나가 바닥에 떨어지고, 그 역시 고개를 떨군 채 한숨을 내쉰다. 그 남자가 바로 빌리 진 킹과 테니스 성 대결을 벌인 바비 릭스(스티브 커렐)다.


만약 <세기의 대결>이 빌리 진 킹의 승리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었다면 바비 릭스의 한숨을 보여줄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그저 여성 혐오로 점철된 폭언과 기행을 일삼는 모습을 맹렬하게 나열하고 그날의 경기를 뜨겁게 연출해내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세기의 대결>은 빌리 진 킹의 승리에 도취해 기획한 영화처럼 보이지 않는다. 영화에서 묘사하는 바비 릭스는 아내와 아이를 사랑하는 자상한 가장이지만 한편으론 무언가 억눌려 있다는 인상을 주는 사내다. 선수 시절부터 내기와 도박을 즐기기로 유명한 인물이었던 그는 영화 속에서 내기와 도박에 이골이 난 아내의 눈칫밥을 먹으며 산다. 그럼에도 아내 몰래 내기 테니스를 벌인 그는 경기에서 이긴 대가로 롤스로이스를 얻지만 그 덕에 집에서 쫓겨나게 된다. 심지어 도박 근절 모임에 나갔다가 되레 강력한 믿음을 설파한다. “왜 우리가 사랑하는 일을 끊어야 합니까?”


바비 릭스에게는 공인된 승부가 필요했다. 하지만 현역 선수가 아닌 이상 승리도 패배도 없는, 장인어른이 운영하는 회사 사무실에 출근하고 퇴근할 뿐이다. 종종 롤스로이스를 걸 정도로 부유한 노인들과 내기 테니스를 쳐보기도 하지만 도박에 넌더리를 내는 아내의 성화를 감당하기 어렵다. 그런 그에게 빌리 진 킹은 영감을 주는 대상이었다. 최고의 현역 여성 테니스 선수인 빌리 진 킹은 여성 차별이 관행처럼 굳어진 기존의 테니스계를 등지고 여성테니스협회 창설을 주도한 장본인이다. 현역에서 은퇴한 50대 남성에 불과한 바비 릭스는 테니스계의 최전선에서 여성 인권 신장을 주장하는 빌리 진 킹과의 대결을 성사시킬 조건을 찾아냈고, 전화를 걸었다. “나랑 경기합시다. 돼지 같은 남성 우월주의자 대 제모 안 하는 페미니스트. 아직 페미니스트 맞죠?” 바비 릭스는 알고 있었다. 남성 우월주의자를 자처하고 여성 혐오를 공언하면 세상의 이목을 끌 수 있는 시대라는 것을. 그렇게 되면 여성 인권 신장을 주창하는 최고의 여자 선수와 나란히 언급될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을. 그럼으로써 당대 최고의 여성 테니스 선수를 코트로 끌어내 승부를 겨룰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승부가 전 세계적인 이목을 끌 흥행 카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바비 릭스는 대단히 영악한 기회주의자였다. 하지만 <세기의 대결>은 바비 릭스를 손가락질하기 좋은 존재로 전락시키는 방식을 선택하지 않았다. 대신 그가 왜 여성 혐오를 선택해야 했는지, 여성 혐오를 선택해서 얻은 것이 무엇인지를 성실하게 살피고 따라잡는다. 반대로 빌리 진 킹을 시대적 투사로 추켜세우는 데 전력하기보단 그녀의 내면을 세심하게 들춘다. 빌리 진 킹은 테니스 선수로 활동하는 데 성심껏 조력해온 남편이 있었지만 미용실에서 만난 헤어 디자이너에게 이끌려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감정을 부정하기도 하지만 끝내 동성애자로서의 성 정체성을 받아들이게 된다. 여성 차별을 타파하고자 앞장선 아이콘으로서의 존재감을 수성해야 한다는 책임감 이면에는 사회적으로 터부시되는 동성애자로서의 정체성을 숨기고 전전긍긍했던 약자로서의 불안감이 자리한다. 결국 그런 내면적 고독과 사회적 피로를 끌어안고 바비 릭스와 맞서야 했던 빌리 진 킹의 승리는 그만큼 고되고 값진 것이었다. 한편 아내와 가족을 사랑하는 남편이자 가장이지만 세상을 상대로 끝없이 승부를 벌이고 싶어서 남성 우월주의자를 자처하고 연기한 바비 릭스의 이중성은 빌리 진 킹의 이중성과 대치되면서도 어울려 공명한다. 그럼으로써 각기 다른 방향에 놓여 있는 두 인물의 개인사를 따라가다 보면 뫼비우스의 띠처럼 엮여 들어가는 두 인물의 운명적인 서사로 귀착되는 흥미가 유발된다. 이는 실제 인물에 밀착하듯 연기해낸 엠마 스톤과 스티브 커렐의 가공할 만한 기여도 덕분이기도 하다.



영화를 보고 나면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실제 인물들을 얼마나 사실적으로 영화에 반영했을까? 영화가 혹시 바비 릭스라는 인물을 지나치게 미화한 건 아닐까? <세기의 대결> 각본가는 <127시간>과 <슬럼독 밀리어네어> 각본을 쓴 사이먼 보포이다. 그는 빌리 진 킹과 긴 시간 마라톤 인터뷰를 하며 이야기의 틀을 잡고 캐릭터의 디테일을 잡아나갔다. 그리고 빌리 진 킹은 바비 릭스를 깊이 이해하는 사람이었다. 빌리 진 킹은 1973년 테니스 성 대결 이후 바비 릭스와 가까운 사이가 됐다. 훗날 바비 릭스가 전립선암을 앓던 당시엔 빌리 진 킹이 종종 그를 방문하거나 통화를 했는데 바비 릭스는 죽기 전날 밤에도 빌리 진 킹과 통화를 했다고 한다. 빌리 진 킹은 바비 릭스에 대해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여권 신장에 큰 도움을 줬다”고 소회했다. 그리고 완성된 영화를 본 뒤, 바비 릭스를 연기한 스티브 커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스티브 커렐이 바비의 이면에 있는 진실성을 정확하게 포착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세기의 대결>이 바비 릭스를 지나치게 미화한 영화는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세기의 대결>은 빌리 진 킹의 업적을 조명하는 동시에 바비 릭스의 인간적 내면에 주목하고자 만든 작품일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일단 바비 릭스는 1973년도 미국 사회에서의 남성은 여성 혐오를 공표하는 것만으로도 어떤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낸 역설적 사례다. 그리고 영화는 자칭 남성 우월주의자였던 바비 릭스를 스크린에 세워 넣음으로써 그 시대에 공기처럼 자리했던 여성 혐오주의자들의 다양한 민낯을 살필 기회를 확보한다. 빌리 진 킹의 승리가 지닌 의미는 패색이 짙은 바비 릭스를 보고 표정이 굳어가는 남성들의 얼굴을 통해 명확해진다. 그리고 영화의 클라이맥스라 할 수 있는, 후반부 10분가량을 할애한 경기 장면은 관객에게 1973년 9월 20일 휴스턴 애스트로돔의 객석에 앉아 있는 듯한 체험을 안겨주는 방식으로 재연됐다.

<세기의 대결>을 공동 연출한 부부 감독인 발레리 페리스와 조너선 데이턴은 빌리 진 킹과 바비 릭스의 대결을 실제 경기처럼 보이도록 만드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테니스 경기를 중계하는 카메라의 구도와 앵글을 참고해 진짜 경기를 보는 듯한 현장감을 전달했고, 두 배우에게 능숙하게 랠리가 이어질 수 있도록 테니스 실력을 연마하길 주문했다. 이유는 명확했다. 여성을 무시했던 남성의 혐오를 실력으로 이겨낸 여성 빌리 진 킹이 등장한 1973년의 역사를 사실적으로 목격하게 만들고 이것이 2017년에도 유효한 울림으로 전달되길 바랐던 것이다.


결국 빌리 진 킹에게 압도당하는 바비 릭스의 모습을 무력하게 지켜보는 남성들의 굳은 얼굴 위로 빙긋이 미소 짓는 여성의 모습을 비춤으로써 시대의 변화를 간단명료하게 감지시킨다. “세상이 변했어. 자기가 방금 세상을 바꿨거든.” 결말부의 대사처럼, 빌리 진 킹의 승리는 동시대 여성들에게 차별에 맞설 수 있는 용기를 불어넣고 세상의 변화를 촉발시켰다. 물론 그 이후로도 여성에 대한, 더 나아가 소수자를 향한 차별과 혐오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빌리 진 킹의 승리는 그로부터 2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세상이 더 나아졌다는 믿음과 더 나아질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약속한다. 결국 <세기의 대결>은 과거를 돌아보는 영화가 아니라 미래를 가리키는 영화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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