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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용준 Apr 04. 2018

<세 번째 살인>배반의 사회학

믿음을 배반하는 사회로부터 방치된 진실에 관한 영화, <세 번째 살인>.

한 남자가 사람을 죽였다. 둔기로 머리를 가격하고 목을 졸라 죽인 뒤 시신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붙여 태웠다. 그가 죽인 건 자신을 고용한 공장주였다. 살인을 저지른 건 미스미 다카시(야쿠쇼 고지)라는 남자로 30년 전 사람을 죽인 전력이 있었다. 사형 선고가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결과가 훤히 보이는 이 사건의 변호를 맡은 건 시게마루(후쿠야마 마사하루), 죄의 유무보단 의뢰인의 승소만을 생각하는 변호사다. 미스미의 사형 선고를 막는 것이 그에게 있어서는 일종의 승소나 다름 없는 상황. 시게마루의 목표는 명확했다. 하지만 시게마루는 취조할 때마다 진술을 번복하는 미스미의 모호한 태도로부터 점점 의아함을 느끼게 된다. 게다가 미스미의 주변을 탐문하는 과정에서 어긋난 인과와 의아한 공백을 거듭 발견하며 미심쩍은 마음을 품던 시게마루는 미스미가 죽인 공장주의 딸 사키에(히로세 스즈)의 놀라운 증언과 함께 사건의 양상을 뒤집어보기 시작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신작 <세 번째 살인>은 평소 그의 필모그래피를 성실하게 따라온 관객 입장에선 기분 좋은 배반처럼 여겨질 작품이다. 미스터리와 법정 드라마의 미장센을 적극적으로 차용한 듯한 이번 작품은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만들어낸 첫 번째 상업 영화라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럼에도 냉소적인 거리감과 냉정한 시선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인장이 드러난다. 서로 입장 차이가 어긋난 가족들의 대화로부터 미세한 균열이 감지되고, 잘 정돈돼 있고 평온해 보이는 사회의 내면에서는 보이지 않는 불안이 미세하게 진동하는 것만 같다. 결국 그러한 균열과 진동을 건너 영화의 말미에 다다르면 우리가 믿고 있는 제도적 안정감은 인간의 믿음을 담보 삼아 지어낸 거짓말일지도 모른다는 궁극적 질문과 맞닥뜨리게 된다.



<세 번째 살인>은 직접적인 인물의 갈등과 충돌을 대결 구도로 그려 넣는다는 점에서도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전작들과는 조금 다른 면모를 지닌다. 특히 야쿠쇼 고지와 후쿠야마 마사하루가 거듭 대면하는 면회실 신은 서스펜스의 반복적인 리듬과 점층적인 고조를 이끌어낸다는 점에서도 이색적이다. 야쿠쇼 고지는 박력 있게 광기를 표현하는 것 같다가도 섬세하고 인자한 인상으로 진심을 설득한다. 대단한 진폭으로 영화를 흔드는 그의 연기는 이 작품이 의도한 혼란 그 자체를 야기시키는 진앙지나 다름없다. 그리고 맞은편에 자리한 후쿠야마 마사하루는 서서히 진동하는 인간의 나약한 심연을 성실하게 따라간다. 극의 미스터리를 가중시키고 본질적인 질문을 강화시키는 히로세 스즈의 존재감도 탁월하다.


<세 번째 살인>은 결국 인간의 불완전성과 사회의 부조리 사이에서 방황하는 진실에 관한 이야기다. “법에도 감정이 있다”는 변호사의 언어에서는 배신감이 전해지고, “당신 같은 변호사가 범인이 죄와 마주치는 걸 방해하는 겁니다”라는 검사의 언어에서는 무력감이 전이된다. 그런 감정을 따라 다다른 영화의 결말부는 개개인이 믿고 있는 이 사회의 합의와 약속이 최선의 판단을 이행하고 진실을 보존하는 데 유능하게 작동하고 있는지 의심조차 하지 않는 우리 개개인에게 던지는 타당한 물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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